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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발견

2015년 어느 여름날. 동생과 함께 한적한 골목길을 걸었다. 천경자 그림에서 옮겨 온듯한 색감의 꽃으로 가득한 실크 원단을 그림처럼 벽면에 설치한 의류매장에 눈길이 머물렀다. 쇼윈도에 전시된 원피스가 없었다면, 갤러리인 줄로만 알았을 터였다.

그렇게 우연히 들어간 A 브랜드 매장은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여성복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나는 평소엔 손이 가지 않았던 레이스 원피스 한 벌과 여느 쇼핑 때와 마찬가지로 법정에 입고 갈 “검은색 슈트” 한 벌을 샀다.

적당히 세련되고 날렵한 느낌을 주는 A 브랜드 슈트를 입고 의뢰인을 만나거나 재판에 나가면 괜한 자신감이 생겼고, 자칫 화려해지기 쉬운 레이스 소재의 원피스도 묘하게 차분한 느낌을 주어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로 옷을 사야 한다면 한적한 골목길 끝에 있는 A 브랜드 매장으로 향하였고, 덕분에 쇼핑 시간은 매장을 둘러볼 20분이면 충분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나서일까. A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디자인 카피 문제로 고민이 많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시엔 “A 브랜드가 유명해 져서 그런가 보다”라는 말로 디자이너를 위로하고 넘겼지만, 나 역시 A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서인지 디자이너 못지않게 해당 이슈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

당시엔 지식재산권사건을 처리해 본 실무 경험이 없었던 터라, 관련 법률과 판례를 정리하면서,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주관하는 지식재산권 연수원 강의를 틈틈이 수강했다. A 브랜드에 발생한 이슈를 중심으로 공부하다 보니 더욱 현장감 있게 받아들이면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A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 가면서 A 브랜드의 디자인에 대한 침해행위는 점점 늘어갔다. ‘자체 제작 상품’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판매된 침해제품 중 상당수는 A 브랜드 제품의 전체적인 형태를 그대로 모방한 데드카피(dead copy)였다. A 브랜드 고유의 감성이 깃든 새로운 디자인을 창작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과 시간, 비용 등을 투입한 디자이너는 한순간에 자신의 성과물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러나 디자이너를 더욱 좌절하게 만든 것은 침해자들의 태도였다. A 브랜드 디자이너가 원하는 것은 모방제품의 판매 중단과 침해자의 사과였을 뿐인데도, 침해자들 중 상당수는 “단지 모티브를 얻었을 뿐이다.”, “유행하는 형태일 뿐이므로 도용이 아니다.”, “다 그렇게 한다. 업계 관행인데 왜 나만 문제 삼느냐?”, “법대로 할 테면 해 보아라.”라는 태도를 일관하며 판매를 계속했다.

결국 A 브랜드 디자이너는 자신부터라도 업계 관행을 바꿔 보겠다며 나와 함께 민형사상 절차를 진행하였고, 그렇게 난 처음으로 지식재산권사건을 수행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 경험해 보는 분야의 사건이라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지식재산연수원 강의를 통해 얻게 된 실무팁은 사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결국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임을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매 시즌 A 브랜드의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위와 유사한 형태의 침해사례가 발생하고 있고, 덕분에(?) 난 의류디자인에 관한 분쟁사건을 여러 건 처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의류디자인 관련 분쟁해결에 대한 자신감도 늘어가고 있다.

최근 전문분야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전문성을 쌓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동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 고민에 별다른 답을 찾지 못하였다면 주위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하면서 공부해 보자. 나의 경우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동시에 전문성 확립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박수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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