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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탐방_ 산악인 엄홍길 대장 인터뷰

산악인 엄홍길 대장 인터뷰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8천 미터 14좌(座)에 이어 8천 미터급 위성봉(衛星峰) 알룽캉과 로체샤르도 완등하면서 16좌에 오른 세계 최초의 산악인이 되었다. 이를 위해 1985년부터 22년 동안 38번의 도전을 쉬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후배 6명과 셰르파 4명을 잃었다. 엄홍길 대장은 이제 희생으로 자신을 도와준 산악인과 셰르파들의 유족을 돕고 그를 받아준 산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엄홍길휴먼재단’을 세워 ‘나눔’이라는 ‘17좌’의 더 큰 등정을 시작하였다. 남산 인근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산과 인생 얘기를 들었다.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저희 ‘엄홍길휴먼재단’에서 히말라야 오지 마을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있어서 네팔에 자주 오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벌써 11번째 학교를 짓기로 되어 있어 착공식에 갈 예정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밀린 재단 일도 처리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북구 청소년 희망원정대’를 만들어 주로 중학생들과 등반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자연을 통해 스스로 깨닫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985년부터 2007년 5월 31일 로체샤르 정상에 올라설 때까지 38번의 고산 등반을 하는 동안 실패와 성공, 좌절과 극복, 고통과 희생 등 다른 누구보다도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것은 다 겪었을 것 같은데 그간의 감회를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지금 이렇게 서울지방변호사회보 인터뷰를 하는 이런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16좌 목표를 앞두고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때 진짜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히말라야 산의 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너에게 삶의 기회를 줄 테니 내려가서 절대 우리를 모른 척 하면 안 된다.”


어떤 것은 알면 알수록 더 깊은 것을 깨닫게 되지만, 자연에 도전하면서 그 세계를 알면 알수록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8천 미터라는 곳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고도입니다. 산악인들은 ‘죽음의 지대’라고 표현하고 히말라야 사람들은 ‘신들의 영역’이라고도 합니다. 베이스캠프 빙하 위에서 텐트 치고 앉아 있으면 정상 부분의 바람소리가 베이스캠프까지 들리는데, 초음속제트기 소리와 맞먹는 바람소리만 들어도 공포에 질려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이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췄고, 팀워크가 완벽하더라도 정상에 가고 또 거기서 살아서 내려온다는 것은 산이 선택하는 일입니다. 


저는 제 나이에 비해 배 이상의 죽음을 겪었습니다. 히말라야 8천 미터를 38번을 가서 16번 성공을 하고, 그 과정에서 10명이나 되는 동료를 잃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살아남은 게 말이 안 됩니다. 히말라야가 살려 보내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려고 해서 살 수 있었던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분명히 살아서 내려가야 한다. 저를 살려 보내 준다면 모르는 척하지 않겠습니다. 저 혼자만의 꿈을 이루지 않고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나누면서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산 아래의 사람들이 보이고 어린이들이 보이고, “이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일은 교육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산은 스승과 같은 존재로서 저를 이끕니다. 16좌를 도전했을 때는 이전의 삶이고, 현재 살아있는 한없는 고마움으로 또 다른 새로운 인생, 제 인생의 ‘17좌’를 도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제가 16좌를 완등했듯이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 16개 학교를 짓는 겁니다. 옛날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 목숨을 잃은 셰르파가 자신의 고향에 학교가 없는 것에 늘 가슴 아파했던 것에 저도 늘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었지요. 그래서 교실, 화장실, 컴퓨터실, 도서실, 양호실도 짓고, 학교 준공식이나 기공식 때는 의료봉사도 병행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부 NGO단체에서도 학교를 지었지만 짓고 끝나는 게 문제입니다. 사후관리가 안 되다 보니 폐교가 되겠죠. 그래서 저희는 학교 옆에 마을회관을 짓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게 되고, 학교도 관리가 되니까요. 대개 산간 오지마을인 데다 트럭도 갈 수 없어 자재 운송비가 건축비만큼 소요되고, 건물을 짓는 사람들도 고산병에 시달려야 하는 등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보였던 학교설립이 벌써 11번째 학교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어려운 고산 등정을 하면서 산에 오를 때 남다른 마음가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가짐입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산을 올라야 하고, 절대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고 항상 겸손해야 하며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늘 명심합니다. 행동만 앞서서는 절대 안 되고,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초심의 마음이 어떤 상황에서도 종착지점까지 변하면 안 됩니다. 


8천 미터 정상을 가기 위해 초심을 갖고 시작합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기 시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집니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일이 잘 진행되어 빨리 올라가게 되면 ‘지난번에는 이 산에서 내가 왜 고전하고 실패했을까?’ 하며 마음이 해이해지고 긴장을 늦춥니다. 그럼 그 다음부터는 욕심을 부리면서 굉장히 힘든 구간에서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고가 날 위험이나 요인들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진해 나갑니다. 그러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서 속수무책으로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큰 문제가 아닌데 눈덩이처럼 커져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지막 종착점에 도달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더라도 대처를 하게 됩니다. 예상을 했으니까요. 유비무환의 자세를 가지면 대안책을 계속 생각하게 되니 문제가 닥쳤을 때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 자체가 시작부터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신중하고 겸손하게 모든 것을 순리에 따르는 자세는 8천 미터 산에 오르는 일뿐 아니라 인생의 산을 오를 때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자기 일 또는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은 많지만 매번 목숨을 내놓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대장님은 죽을 수도 있는 일을 앞에 놓고 계속 산에 올랐습니다.
 

처음은 단지 저의 능력의 한계를 테스트해 보고 싶었고,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대한민국 산에서는 두려움과 막힘이 없었습니다. 저는 기술, 체력, 정신력 이 3박자를 다 갖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 이상의 욕구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거산이라는 히말라야를 도전하면서 갇혀 있는 한계를 넘고 싶었습니다. 히말라야에 처음 가서 실패하고 두 번째 실패하면서 동료를 잃었을 때 많은 후회와 함께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히말라야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장아장 기어 가다가, 조금 걸음마를 걸으면서 걷는 법을 알게 되었고, 8천 미터를 한단계한단계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도전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14좌를 오르겠다, 16좌를 오르겠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저는 단지 히말라야 산이 너무 좋고 하얀 산에 매력에 빠져서 도전할 뿐이었죠. 저는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제 삶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도전은 끝이 없고 무한합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산 정상에 섰을 때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안 갑니다. 
 

정상에 섰을 때 감동이야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산을 갈지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생과 사를 가르는 힘겨운 발걸음입니다. 8천 미터라는 자연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단지 경험이 많으면 어느 정도 부분은 예측을 할 수 있지만, 자연재해가 사전경고를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불안함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극복하고 죽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며 가는 것입니다.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정상에 섰을 때의 감동, 즉 인간의 한계의 최고 정점에 떠올라 맛보는 성취감이라는 것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집약되어 정점에 섰을 때 그 기쁨은 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등반과정에서 완전한 성취감을 10이라고 했을 때, 그 정상에서 10을 다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정상에서는 30~40%밖에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면 다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죠. 내려와서 베이스캠프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다시 내가 올랐던 히말라야를 쳐다볼 때, 그때 완벽한 100%의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로 정점에 올라섰을 때가 진정한 성공이 아니죠. 언젠가 내려와야 될 것 아닙니까. 내려오려면 하산을 잘해야 합니다. 히말라야에서 하산을 하다가 많이 죽거든요. 정상에서의 성취감은 짧습니다. 정상의 감동과 여운을 끝까지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완전한 성공일 것입니다. 

 

 

 등반할 때 동료나 셰르파의 죽음을 겪으면 모든 게 허무해지면서 다시 산에 오르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던 동료들이 어느 순간 눈앞에서 없어져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돌아오지 못할 때의 비통함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죠. 그 순간에는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고 그저 정신이 멍합니다. 어쨌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야 하기에 안전한 지대에 도착해서 그 상황을 떠올리면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운명이 뒤바뀌었어야 하는데, 내가 그렇게 되었어야 하는데’라는 엄청난 죄책감과 미안함, 다른 사람들이 슬픔을 같이 나눠줄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이 극복해야 됩니다. 


저는 위험한 상황들이 오면 먼저 간 동료들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이 순간 나를 위험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줘라. 너희들과 함께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오르는 것이다.’라며 오릅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쉽게 말해 정상을 가는 것만이,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꿈을 이뤄 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몫까지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태어난 것에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합니다.

 

 

 등반 팀이 등반하면서 대장으로서 어떻게 팀워크를 맞췄는지.
 

팀워크를 위해서 저는 사람의 됨됨이를 가장 신경 씁니다. 솔직히 기술, 체력은 다 비슷비슷 합니다. 그 정도 산을 갈 정도면 기술과 체력 없이는 안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현장에 가서 부딪혀 보면 진짜 극한 상황에서 나오는 인내력, 정신력, 자기극복 지수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좋은 환경 속에서는 단점을 보기 쉽지 않아요. 그곳은 환경 자체가 열악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점점 열악해지고, 결국 눈앞에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순간이 오면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는 합니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는 내면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그때 거기서 자신의 심성이 나옵니다. 겉면과 내면이 같은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원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의 됨됨이, 인간성을 봅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가면서 채워 나가고 가르쳐 주고 지시하면 됩니다. 그러면 조금 부족한 부분도 얼마든지 채울 수 있습니다. 

 

 

 

 

 

 

 어느 직역이나 마찬가지로 우리 변호사들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산에 오르는 과정을 비유하여 한 말씀 해 주신다면.


제 인생의 좌우명이 자승최강(自勝最强)입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죠. 결국 제가 8천 미터를 도전하면서 깨달은 것은 위대한 대자연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자연의 조그마한 변화에 인간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엄청난 자연을 극복하고 이겨낸다는 것은 제 자신이 자연을 이겨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제 자신을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눈사태나 낙석이 눈앞에 다가와도 그것은 순간적인 두려움이지 그것이 지속적이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은 산을 올라가고 끝나는 순간까지 문득문득 순간적으로 느껴지니 무서웠습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와의 싸움에서 내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삶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얼마나 잘 극복하고 슬기롭게 빨리 헤쳐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힘든 과정은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나갑니다. 인간에게 ‘희망’이란 가장 생명력 있는 존재입니다.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해 줍니다. 희망은 붙잡을 수 없는 것도 붙잡게 해 주고, 불가능한 일도 성취하게 해 주므로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목표를 향해서 도전하라.’  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인터뷰/정리 : 김진수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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