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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성인지 감수성


2010년에 변호사가 됐으니 변호사 업무를 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 지났습니다. 11년의 변호사 경력 중 7할은 여성단체와 연계해서 피해자 측 변호사로, 2013년부터는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2015년부터는 아동학대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주로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지원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피해자를 위한 법률지원만 했던 건 아닙니다. 가끔은 선별하여 성폭력 피고인을 변호하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수백 명의 피해자를 조력하면서 접한 다양한 사건들과 판결문이 축적되어 있었기에 잘못이 있어서 유죄가 나올게 뻔한 사건임에도 혐의를 다투는 피고인에게는 일찌감치 자백을 하도록 권유했고, 자백하지 않겠다고 하면 선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99% 양형만을 다퉜기 때문에 변호를 함에 있어서 크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성폭력 피고인을 위해 무죄 변론을 하는 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피고인은 대학 동기의 지인이었습니다. 동기의 부탁이기에 부인하는 성폭력 사건임에도 일단 만나서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의 피고인이 그렇듯이 피고인은 ‘억울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수사기록을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하며 돌려보냈습니다. 수사기록을 보니 다행히 사건의 전 과정이 녹화된 CCTV 파일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피고인은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간대별로 아르바이트생이 있는데 피해자는 그중 낮 시간대 아르바이트생이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피해자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되고 나서 처음으로 근무하는 날이었습니다. 첫날이기 때문에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각종 물건들의 위치, 고객의 주문 응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포스기계에 입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커피를 만드는 방법, 커피머신 사용법 등을 설명했습니다. 주문을 받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주문을 포스에 잘못 입력하는 실수를 했고, 당황하는 피해자에게 피고인이 검지를 뺀 나머지 손가락 4개를 붙여 피해자의 어깻죽지 끝부분을 가볍게 두드립니다. 괜찮다고 격려하며 다시 포스 사용법을 설명합니다. 또 다른 상황은 피고인이 냉장고에 어떤 물건들이 저장되어 있는지 피해자에게 알려주기 위해 소형냉장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피해자가 마침 그 앞에 서 있어서 손으로 피해자의 팔꿈치를 살짝 밀었습니다. 피해자가 한발짝 자리를 이동하자 피고인은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이것이 이 사건 강제추행의 공소사실입니다. 다른 상황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피해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이 부분은 생략합니다. 피고인은 당시 했던 행동들에 대해 인정하고, 피해자도 그 당시 상황을 인정합니다. 문제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했던 그 행동들이 강제추행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습니다. 강제추행은 법문언상으로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자’라고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강제추행은 폭행행위가 곧 추행행위에 해당하는 ‘기습추행’인 경우가 많아서 판결은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로 유무죄를 판단하곤 합니다.

CCTV를 계속 돌려봤습니다. 그동안 접했던 강제추행 사건과 확실히 달랐고, 그 즈음 이슈가 되었던 곰탕집사건과도 달랐습니다. 부족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을 있는 힘껏 끌어올려 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남녀 간 신체접촉금지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 과정에서 저를 포함한 누구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있을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등 돌리고 있는 다른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불러 돌아보게도 하지만 가까이 있으면 어깨를 두드려 돌아보게도 하고, 어떤 일로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에게 말로 “힘내~”라고 격려하기도 하지만 어깨나 등을 토닥이기도 하며,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문 앞에 다른 사람이 서 있으면 말로 “비켜주세요! ”라고 할 수 있지만, 말하는 대신 손으로 몸을 밀쳐서 비키라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행동들이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기분이 나쁘다고 하여 그것들이 모두 추행인 것은 아니므로, 피고인의 행동은 사회상규에 의해 허용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무죄 변론을 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남녀의 성역할·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인식을 전환하고, 타인의 동의 없이 신체를 접촉하는 것은 잘못이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등의 젠더 감수성,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통해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에 맞춰 성폭력 판결도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과정에서, 특히 강제추행의 경우에 불법인 강제추행과 사회상규로서 허용되는 사람 간의 접촉의 한계를 정해 주는 것은 판결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성폭력 무죄 변론을 하게 된 데에는 내심 그 한계를 지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렇게 판단한 제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가요....
연차가 쌓이면 사건을 대하는 마음도 편해지고 정답이 보일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변호사인 것 같습니다.

김영미 변호사
●법무법인 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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