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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ㆍ군법원의 추억


추억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추억이라는 단어를 ‘과거의 기억 중에서 인상깊은 특히 행복한 순간’이라는 뜻으로 더 자주 사용합니다.
추억이라는 단어에 이러한 애틋한 뜻이 있어서인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그 제목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찌 살인에 추억을 붙여 미화(?)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시·군법원의 추억’이라는 이글의 제목도 사실은 긍정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지는 아니합니다.

시·군법원은 각급법원의설치와관할구역에관한법률 제2조 제2항에 근거하여 설치되며, 그 관할은 소가 3천만 원 이하의 소액심판사건, 화해·독촉 및 조정에 관한 사건, 2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나 과료에 처할 즉결심판사건, 협의이혼사건, 피보전액 3천만 원 이하의 가압류이의·취소사건, 기타 부수 신청사건 등이 됩니다. 아무래도 소가가 낮고 형사재판이 열리지 않다 보니,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시·군법원 근처에서 개업을 하거나 시·군법원사건을 다수 다루지는 아니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시·군법원의 사건들은 당사자 소송인 경우가 대다수이고, 조금 형편이 되시는 분들은 법무사분들의 대서(代書) 등을 통하여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군법원에서의 법정풍경은, 법정에서 상상되는 보통의 엄격한 분위기나 광경만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물 쏙 빠지는 슬픈 광경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생닭을 가져와 판사님께 고맙다고 하려는 사람을 보기도 했고, 도시 쪽에서는 수십 명이 도박죄로 줄줄이 즉심을 받는 모습도 보았으며, 재판정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경우도 가끔은 발생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재미있던 장면은, 원고가 피고에게 핏대를 세우며 재판장님께 소리치던 날이었습니다. “검사님!!! 지금 증인이 거짓말을 하잖아요!”라고 원고가 외치는 소리에, 재판장님은 혹시 자신이 검사였던 것은 아니었는지 혹시 피고가 증인이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한동안 하늘만 쳐다보며 웃지 않으려 노력하셨습니다·····. 물론 판사님의 호칭을 모르는 일 정도야 당연히 괜찮은 일이지만, 계속 불성실한 태도로 재판에 임하던 며느리가 80세 넘은 시어머니에게 욕설을 하던 날은 그렇게 점잖으시던 재판장님도 민원인 못지않은 불호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재판이 끝나고 제가 위 피고 80세 할머니를 집까지 태워드리게 되었는데, 법정에서의 약한 모습과는 다르게 180도 돌변하는 모습을 보이셔서 기절할 뻔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혹시 변호사가 선임되어 출석한 경우, 재판장님이 은근히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변론주의와 처분권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기 어려운 사건이 많다 보니, 변호사가 선임된 쪽에 정리를 요청하거나 석명을 구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저에게는 시·군법원의 추억이 과거의 기억 중에서 인상 깊은 ‘특히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있지만, 상대편 자료까지 정리해야 하는 경우의 변호사, 법정에서 욕설을 듣기도 하는 변호사, 소액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쟁점들이 즐비하거나 수임료를 현저히 뛰어넘는 속행이 발생하는 개업변호사의 경우에는 시·군법원의 추억이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군법원 재판이 가지는 특수성에 비추어, 서로가 조금은 절차에 협력하려는 마음으로 기일을 준비하는 것이 나 스스로의 여유를 돌보는 일이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시·군법원의 재판은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와서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풍경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실은 시·군법원의 법정이야말로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으로서 인간의 진심이 나타나는 장소가 아닐까도 합니다. 만약에 내가 왜 변호사가 되고자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고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시·군법원의 법정풍경을 보러 참석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 가면 저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수많은 의뢰인들과 사건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곽준영 변호사
●법무법인(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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