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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먹그림

일렁인다. 4월의 따스한 봄 햇살에 그 모든 것이 아른거린다.
어디선가 포근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은 그 무언가를 싣고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 왔다.

거듭해서 해는 바뀌고 어느새 나 자신이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적지 않은
나이를 갖게 되어서일까. 살랑이며 다가오는 봄바람은 내가 지나온 날들과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덧 추운 겨울을 견딘 나무에는 움이 튼다.
2020년 올해도 어김없이 돌고도는 生이다.
영국 시인 T.S. Eliot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나의 삶과 일을 돌아보게 된다.
무심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놓치고 사는 것은 없을까.
늘 같은 시간을 보내는 듯하지만, 변호사로 일하면서 여러 사건을 접하고,
저마다 갖고 있는 남모를 사연과 아픔들을 알게 되면 항상 똑같지만은 않은 세월.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고민하다 보면 결코 녹록지 않은 변호사의 삶.

무료하고 지친 일상에서 작은 삶의 의미를 찾아 시작된 그림 여정.
문득 수묵담채화가 그려보고 싶어졌다.
먹을 물에 섞어 화선지나 한지에 선을 그으면 붓 끝으로 퍼지는 먹의 농담.
아름답다.

물 조절이 쉽지 않아서 먹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늘 예상한 대로 완벽할 필요는 없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래서 누구나 그린 그림에는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개성이 있다.
점점 먹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새하얀 종이에 어떻게 그릴 것인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본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어디까지 그릴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너무 잘 하려고 하면 오히려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백의 미를 살리기 위해 그림을 멈춰야 할 때도 고민해야 한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먹이 내가 생각한 선 밖을 넘어갔을 때
무조건 그림을 망친 것이 아니라 다른 느낌의 멋을 가진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내가 추구하는 한 가지 완벽한 정답지가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꼭 어떠한 삶만이 좋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인생에서 내가 항상 주인공일 필요도 없고, 가끔은 누군가를 위한 조연이
되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변호사의 일이란 것도 결국 누군가의 삶에서 조연을
하는 것 아니던가. 여러 삶의 이치를 그림을 통해서 새삼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욱 나를 낮추고 겸손해지는 법을 배운다.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그리려고 할 때 여전히 막막하고, 가끔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앞설 때도 있기는 하지만, 한국화 그림은 완벽하지 않아도
순간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실어 나를 드러내는 즐거운 놀이이다.
 

앞으로도 그저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가듯 그림도 그렇게
계속 그려나가고 싶다. 한 폭의 그림은 나를 정화하는 방법이랄까.

모든 것은 돌고 돌고 변한다. 영원할 것 같던 순간도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변화한다. 하지만 이정명의 소설『바람 속 화원』의
혜원 신윤복은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한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림은 내가 본 것, 보지 못한 것, 지나간 것,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아닐까. 난 한순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는 과정 속에 삶이
녹아든다고 믿는다.

나의 생은 개나리와 벚꽃 피는 화사한 봄을 지나 뜨거운 태양 아래 짙은 녹음을
자랑하는 여름을 지나가는 중일까. 그렇다면 더 뜨겁고 쿨하게 현재를 살아야
할 텐데. 나이가 듦에 따라 나의 생각도 나의 모습도, 나의 그림도 조금씩
변해가리라. 그것이 가을풍경처럼 다채롭게 물들고, 눈이 수북이 쌓인 깊은
산속 초가집처럼 쓸쓸한 듯하면서도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풍경 같은 그런
모습이기를 나는 소망한다.

이도희 변호사
●법무법인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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