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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환 전 대법관 인터뷰

참여정부 당시 이른바 독수리 5남매(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이상 임용 순)가 대법관으로 임명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판결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퇴장한 후에 등장한 대법원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선배법조인의 조언에서는 그중에서도 ‘진보의 아이콘’, ‘순진한 원칙론자’로 불린 박시환 전 대법관을 찾아 고언을 듣고자 하였다.
 

Q 안녕하세요 대법관님. 서울지방변호사회보의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법관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따스한 판결을 내려주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과거 인천지방법원에서의 민주화 시위 대학생들 무죄사건은 물론이고 병역법 위헌 제청 등이 대표적인데요, 지금의 사회에는 어떠한 비전이나 가치를 제시해 주실 수 있을지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비전이나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이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법이란 세상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함께 살다 보면 분쟁이나 마찰 등 비정상적인 상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반준칙이 법이라고 봅니다. 법은 그 내용면에서는 형평과 정의에 맞도록, 또 절차상으로는 평화롭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해 주는 일반준칙이라고 보는데, 법의 기능에 대하여 사람들이 그러한 신뢰를 가지게 된다면,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분쟁은 법에 맡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변호사들은 세상에 이러한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 즉 전도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법조인은 우리 사회에 평화와 행복의 가치를 실현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런 법의 이념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작동하게 해야 합니다. 현재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법인 다수결 원칙을 따른다고 할 때, 다수자 또는 지배층이 취하는 가치는 이미 규범화되어 있습니다. 다수자 또는 지배층은 굳이 애써서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더라도 다수결에 의하여 이미 규범화 되어 있는 제반 준칙을 통하여 자기들의 몫을 잘 찾아갑니다. 물론 이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며 부정할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에 비해 소수자, 약자들에게는 다수결에 의하여는 그들의 몫에 해당하는 혜택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률가들은 그러한 소수자, 약자들의 그늘지고 소외된 영역을 눈여겨보면서 보강해 줘야 합니다. 최소한 ‘제 몫’은 찾을 수 있도록 일부러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같은 이들에 대하여는 다수자들이 자기의 입장을 조금 양보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이해해 주려고 해야 합니다. 다수결의 전제가 다양성의 존중입니다. 법률가들은 그 사회의 여러 다양한 입장을 골고루 설명해 주고 대변해서, 다수자는 물론 소수자 모두가 자신들의 입장과 생각을 납득시킬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 입장이 나타나고 충돌할 때, 지배적 입장에 있는 다수자들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로부터 그들의 아픔과 하소연을 어느 정도 들어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왜’ 그러는지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법률가는 기본적으로 듣는 것을 잘해야 하며, 소수자, 약자의 입장에 서서 주류적 흐름에도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공안사건 등 상당한 부담이 되는 사건의 영장을 기각하려고 할 때, 밤늦은 시간에 그 기각결정의 근거가 될 만한 이론을 이리저리 찾다가 어느 자료에서 근거가 될 한 줄의 문장을 발견했을 때,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한줄기 등불을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법률가들은 어두운 세상에서 길을 찾아 줄 이러한 한줄기 등불을 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대법관님의 말씀을 들으니 교과서나 당위로서만 접근하였던 개념을 조금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변호사회의 인터뷰인 만큼 변호사에 관한 질문도 드리고 싶은데요, 오랜 기간 동안 재판을 하시면서 어떠한 스타일의 변호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는지(긍정적 또는 부정적도 좋습니다) 궁금합니다.

네, 아무래도 ‘열심히’ 하는 변호사가 인상에 남는데요(웃음), 남들은 잘 모를 것 같아도 재판을 해 보면 그 변호사가 그 사건에서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집중하는지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사자와 사건을 위하여 감동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보이는 변호사가 있지요. 법리를 정치하게 전개하고, 사실관계 파악에서 남들이 놓치는 디테일한 부분을 잘 잡아내는 방식으로 열심히 하는 변호사님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나쁜 측면으로 너무 열심히 하는 변호사, 즉 당사자의 이익이나 승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제반 소송상 규정은 물론 우리 법정에 형성되어 있는 바람직한 관례나 일반적으로 지켜져 오는 예의를 벗어나서 과도한 행동을 하는 변호사가 안 좋아 보였습니다.

 

 

Q 로스쿨 석좌교수로 벌써 여러 해 지내셨습니다.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로부터 매우 인기가 많으시다고 들었는데요, 구체적으로 학교에서는 어떠한 강의나 연구를 하셨
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대법관들이 퇴임하고 학교에 가는 경우 명예교수나 석좌교수로 가는데, 저는 애초부터 전임교원인 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판사를 오래 하였지만 어떤 연구를 한 것은 별로 없었기에, 대법원에서 관여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법적 논리 등을 키울 수 있도록 전원합의체 판결을 읽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법학전문대학원은 워낙 공부할 내용이 많아서 부족한 강의시간에 쫓겨 법조인의 철학이나 자세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특히 도중에 민사소송법 과목까지 맡게 된 이후로는 민사소송법 일반이론에 보태어 변호사시험용 사례풀이 등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강의 도중 가끔씩 관련된 대법원에서의 일화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 주려고 노력하였지만 많이 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 번은 종강하는 날 마지막 5분의 시간을 내어 이런 이야기를 해 준 것이 기억납니다. “여러분들, 가지고 있는 법전을 흔들어 보세요. 피가 뚝뚝 떨어집니다. 법전에 들어있는 법조문, 법원칙 하나하나가 그냥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흐른 뒤에야 어렵게 어렵게 그 조문과 원칙이 법전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조문과 원칙이 없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흘린 눈물과 피와 고통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 조문 하나하나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실무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많은 사건들 모두가 우리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들이지만, 그 외에도 존엄사, 성전환, 양심적 병역거부, 종교교육, 사상과 표현의 자유 같은 것도 우리 삶과 일정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사건인데, 시간 관계상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없어 못내 아쉬움이 있습니다.

Q 공익활동을 위해 설립한 사단법인 ‘옳음’ 이사장을 맡기로 하신 것은 눈에 띄는 일인데요, 사단법인 옳음에 합류하시게 된계기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앞으로 옳음에서 어떤 활동을 예상하고 있으신지요?

옳음에 합류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상황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에요(웃음). 일단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전임교수로 있다 보니 정년이 적용되게 되었는데, 정년퇴임을 한 이후로는 비전임 석좌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은퇴 후에도 강의를 하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일반 변호사 생활보다는 공익적 활동이 낫지 않겠나 생각을 하는, 이런 와중에 ‘옳음’이라는 공익사단법인을 만드는데 이사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해 왔어요. 그동안 대형로펌들이 해 왔던 공익법인을 중간 규모의 로펌이 왜 하려고 하는지 물어보았더니, 그냥 일반 사건만 하는 변호사에 만족하지 않고 공익에 대한 활동도 하는 제대로 된 법무법인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해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에 사단법인 옳음의 이사장직을 맡고 동시에 법조 선배로서 법무법인YK에 고문 역할로 도와주기로 하고 공익적 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고문이라고 하지만 주로 법인의 공익활동에 관하여 고문 활동을 하고 후배변호사에 대하여 선배법조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언 정도에 그치기로 하고, 일반 개업변호사처럼 사건 처리에 관여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변호사 개업신고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형로펌의 공익법인과는 다른 중형로펌의 공익법인이라는 특성을 살려 인적·물적, 재정적 여건에 맞추어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공익활동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일반적인 소외계층, 취약계층을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법무법인YK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물권·군인권·노동인권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자 합니다.

Q 젊은 변호사들이 당장 생계가 어려워지다 보니 공익에 대한 열망이 있어도 쉽사리 뛰어들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법관님께서 생각하실 때 젊은 변호사들에게 해 주실 수 있는 희망적인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즈음 확실히 변호사의 제반 업무 상황이 안 좋으니까, 변호사라는 자격과 직업을 안정된 직업과 수입, 사회적 지위 등을 보장받는 전문직의 하나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변호사의 일과 공익 등 좋은 일을 동시에 하여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변호사의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인권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은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여 배우자가 막노동, 파출부 등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변호사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변호사 업무 중 송무 영역은 이미 명절날의 고속도로와 같이 진입하려는 사람이 많은 반면에, 그 외의 험한 샛길을 찾으면 의외로 찾는 사람이 적어 막히지 않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인하대학교만 하여도, 교직원과 학생 수가 수천수만 명이 되고 한 해 예산이 수백억 원이나 되어 상근 법률전문가가 여러 명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상근 변호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법률전문가가 파고 들어가 모든 분야에서 법의 정신, 법치주의가 스며들도록 일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머지않아 5~10년 이내에는 모든 분야에서 변호사를 더 많이 활용해야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변호사님들이 사회 곳곳에 법의 정신, 법의 이념이스며들 수 있도록, 세상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일하고 계실 것이라고 믿고있습니다.

인터뷰/정리 : 곽준영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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