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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_ 제6편 중동아프리카는 내 마당 -UAE 이외 출장국가들을 다니면서 배우고 느낀 점 02/ 김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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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의 이란 재제가 지난 35년간 이란의 목을 죄고 있지만,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으로서의 이란은 미국과 유럽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며, 인구 8천만 이상의 국토 내에서 농수축산품 자급자족이 가능한 대국이다.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종교지도자 집단은 독재 이상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기관 역시 종교 지도자를 비롯한 소수의 인원들이 독점하고 있다. 
대국의 면모만큼이나 이란 사람들은 똑똑하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테헤란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비자를 받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빨리 나가는 것은 아예 포기상태다. 입국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자 창구에 직원이 한 명뿐이다. 시스템을 보자면 답답하기 그지 없지만, 일을 처리하는 직원의 업무능력이나 태도는 다른 어느 아랍 국가의 직원보다도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  35년째 이어져 오는 재제와 정부의 통제에 많은 이란인들이 해외로 나갔으며, 국내에 있는 국민들도 불만이 턱밑까지 차오른 것 같다. 출장 중 만난 회사 직원에게 이란에서 술을 먹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이란 사람들 중 90% 이상이 술을 마신다고 하고, 술을 공급하는 암시장도 매우 큰 시장이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수차례 이란을 방문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긴 역사와 정치 현실이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려던 나를 위압한다. 원화 결제 시스템 운용, 채권 담보를 위한 부동산 저당, 채권을 자본금으로 전환하는 생산지 전략 등을 연구했지만, 이란법제에 대해서 아직은 잘 모른다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이라크(에르빌):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난 비옥한 초승달 지역
방탄차를 타고 방탄조끼를 입고 정부로부터 여행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라크를 방문한 것은 행운이었다. 바그다드는 조금 위험하지만, 작년에 방문한 에르빌은 안전한 곳이었다. 최근에 폭탄 테러가 한 번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싹 했지만 당시에는 방탄차나 방탄조끼를 입을 필요도 없었다.  공항 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에르빌 방문 중 현지 변호사와 면담을 하면서 일장 연설을 듣고 나니, 이라크가 정말로 복 받은 지역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라크는 수메르 문명,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고대 바빌론 제국 등 역사와 전통의 부국이었다.  하지만 석유 자원의 개발은 부족을 나누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골을 깊게 하고, 열강에 휘둘리는 정치 현실을 낳았다. 스스로를 지킬 만한 힘이 없었던 후세인은 테러리스트라는 누명을 쓰고 역사에서 지워져 갔다.  
백인들은 너무나도 오만했다. 패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국경 설정으로 국가, 지역, 인종 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라크의 경우에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열, 쿠르드족의 독립 요구, 주변국들의 이권 개입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불행한 지역 중의 한 곳이 되어 버렸다. 
 
 
 쿠웨이트: 석유를 통한 흥망
인구 6백만의 작은 나라이지만 석유 자원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왕정을 유지하고 있다. 아랍의 봄 때에 봉기의 기운이 있었지만, 수니파 왕정의 위기를 인지한 사우디 왕정이 군대를 지원해서 혁명의 불씨를 잠재웠다. 쿠웨이트에서 발주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현지 변호사를 통해 듣고 나니 우리에게는 좋은 시장이고 내가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정부는 개혁을 통해 발전을 한다기보다는 왕정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변화를 수용하고 왕족 또는 귀족의 부를 창출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을 쓴다.  매우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이고, 법제 역시 상당히 허술한 편이다. 로펌 면담을 위해 찾은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재떨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터키(이스탄불): 동서양 문명과 종교의 교차점 보스포러스 해협
오스만 투르크의 찬란했던 역사만큼이나 잘 보존되고 있는 이스탄불 주변의 유적지들과 모스크들.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 역사에 오스만 투르크가 세계를 지배하던 역사를 덧입히다 보니, 유럽에서 발견하는 전형적인 성당이나 교회가 아닌 모스크 양식이 접목된, 야릇하지만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성당이나 모스크들이 인상적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국민들은 유럽의 일원이 되고 싶어한다.  
이스탄불 변호사협회를 방문했을 때 적잖이 놀랬던 것은, 대한변호사협회나 서울지방변호사회와는 달리 시설이나 규모가 너무 초라했다는 것이다. 인구 8천만 명의 대국이고, 인구 2천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스탄불에 있는 변호사협회의 예산이 거의 없다니. 한국 변호사단체와 교류하고자 하지만 예산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했던 일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고,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해협에 흐르는 역사만 잔상으로 남아있다. 
 
 
 이집트(카이로): 이집트를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농담을 한다. 이집트가 융성했던 것은 나일강의 범람 때문이었고, 관계사업을 하면서부터 이집트는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인구 8천 5백만 명의 인류 문명 발상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태양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던 고대 강국이 그리스, 로마, 투르크의 지배를 받고, 근대에 와서도 프랑스, 영국 등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독립을 한 이후에 중동의 맹주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나라. 무바라크의 독재 이후 정체된 국가, 아랍의 봄을 타고 무바라크가 물러났으나, 무르시 정권은 또다시 2013년 군사정권의 쿠데타에 무너지고 말았다.  
중동지역의 법을 수출하고 법관과 정치인을 주변국으로 배출했던 나라, 지금도 법 자체는 잘 정비가 되어 있고 언제든 정비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변호사만 약 50만 명에 달하는 나라, 훌륭한 위인 역시 많이 배출된 나라이다. 그런데 지금은 법집행의 투명성이 너무 떨어지고, 부패 때문에 사법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재판을 하면 몇 년이고 끝이 안 나는, 국민들이 어떻게든 떠나고 싶어 하는 그런 나라가 되어 버렸다. 
 
 
 남아공(요하네스버그): 아프리카너의 남아공
부족형태의 전형적인 아프리카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50년 이상의 유럽인들의 정복 및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으로 외관상 유럽과 유사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시내를 지나면서 암스테르담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인구의 대부분은 흑인(9:1)이나 경제는 백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 백인 중에는 스스로를 남아공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아프리카너(더치어를 쓰는 유럽에서 초기 이주하여 정착한 세력)”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넬슨 만델라의 동상 앞에서 그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멋진 변호사, 27년을 복역한 정치범, 아프리카 그리고 흑인들의 대통령이었던 그의 얼굴이 인고의 세월도 아름다웠다는 듯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프랑스(파리): 세계는 파리로 통했었다.
프랑스 파리 시내는 200년 전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물들로 빼곡하다. 놀라운 것은 200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너무나도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각국을 돌아다녀 보지만 프랑스식 건물을 흉내 내는 수준 이상은 없다. 그리고 현존하는 건물들을 보더라도 200년 전 파리의 건물보다 못하다. 예술과 철학이 사회의 기반이고, 명품과 관광으로 수입을 올리는 나라. 
하지만 모든 것의 출발은 제국주의 수탈이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프랑스는 사업하기 가장 힘든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고, 노동유연성이 가장 떨어진다. 기본권의 발상지라고 하는 자존감으로 버티고 있지만, 오래 못 갈 것 같다. 동력이 없다.   
 
 
 
젊은 시절에 오지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축복이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그들의 역사, 문화, 사회, 경제, 종교를 공부하고 그 사람들의 인생을 경험한 것은 행운이자 행복이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사람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오지를 즐기는 청년 변호사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수정됨_서울변협 방문 사진.jpg
 
 
   김현종 변호사
사법시험 제49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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