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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변호사생활

 

항상 진심으로 환자들을 대하고 보살피는 율제병원 소아외과 교수 안정원.
그는 어느 날 어린 환자의 보호자에게 “가망이 없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레지던트 장겨울을 보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왜 의사들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직 모릅니다. 더 지켜봐야 합니다. 이렇게 애매한 말만 하는 줄 알아요? 의사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하거든. 말을 조심해야 하니까. 의사가 환자에게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에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 하나밖에 없어요.”

99학번 동갑내기 의사들의 이야기로 최근 큰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이다. 생명의 화급을 다투는 일은 아니지만 변호사를 찾아오는 분들 역시 그 간절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 “승소할 수 있지요?” “정말 억울합니다. 혹시라도 감옥에 가게 되는 건 아니지요?” 참 난감하다. 왠지 “좋은 결과 있을 거니까 안심하세요.”라고 말해 줘야 의뢰인이 만족할 것 같다. 하지만 잘못되면 그 뒷감당은 어찌 하나. 안 그러면 변호사가 자신감이 없어 보일까 걱정도 된다. 진정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말은 무엇일까?

간담췌외과 교수 이익준. 서울의대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 최고의 수술 실력, 유쾌한데다 따뜻한 인성까지 겸비한 소위 ‘사기캐릭터’다. 그런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업의 본질’이다. “간 이식 인디케이션이 뭐야?”라는 질문에 의대생 인턴이 의외로 척척 대답하자 익준은 흡족해 하며 이렇게 말한다.

“의사는 공부 많이 해야 돼. 환자한테 친절하다고 환자가 살진 않아.”

새내기 변호사 시절 한 선배변호사로부터 “가장 훌륭한 변호사는 소송에서 잘 이겨주는 변호사가 아니라, 소송에서 져도 의뢰인이 또 찾아오게 만드는 친절한 변호사”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우스갯소리 아닌가. 의뢰인에게 훌륭한 변호사는 당연히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변호사,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는 변호사가 아닐까. 그렇다면 의뢰인은 그런 변호사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

“이 일이 힘은 드는데 금세 익숙해져. 근데 익숙해질게 따로 있지 우리 일은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신경외과 교수 채송화가 스스로를 다잡으며 후배 레지던트 안치홍에게 말하는 대목도 큰 울림을 주었다. 이제 알 거 다 안다고 자신만만해 하지만 그만큼 방심하거나 실수하기도 쉬운, 7년 차 변호사로서의 마음가짐도 다시 돌아보게된다.

그런데 사실 나를 가장 큰 상념에 빠지게 만든 것은 전혀 의외의 장면이었다. 누가 봐도 완벽한 만능맨 교수 이익준이 새벽까지 큰 수술을 마치고 지쳐서 들어온 어느 날, 채송화가 이런 말을 건넨다.

“익준아, 넌 요새 널 위해 뭘 해 주니?”

꼭 나한테 묻는 말 같아 한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직업적인 성공, 승부욕, 주변 사람들의 시선. 그따위 겉만 번지르르한 것들이 오랜 기간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았었나. 하기 싫거나 나에게 맞지도 않는 일들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하고 싶은 거, 나 스스로를 아껴주는 방법을 아예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김재형 변호사
●법무법인 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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