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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평등에 관하여로버트 달의 마지막 저서

 

정치적 평등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자들은 정치권력의 평등이 ‘추첨’을 통한 공직자 선출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1) 만일 공직을 추첨으로 선출한다면 공직자가 되는 일에 재능이나 가문, 재산 같은 것들이 하는 역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선거’를 통해서 관리를 선출한다면 전술한 것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선거를 민주주의 원리로 보지 않고 귀족주의 원리로 보았다.

현대 민주주의자들은 ‘선거’라는 제도를 채택하되 재산 같은 것이 역할을 하지 않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려 한다. 재산을 평등하게 하면 선거 제도의 비민주성을 시정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민주적 평등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재산이 평등하더라도 능력에서의 차이는 여전히 남게 되는데 현대의 정치 철학자들은 대부분 정치권력에서 능력의 차이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 같은 대표적인 민주주의적 자유주의자도 일인 일표 원칙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는데, 일인 일표 원칙 자체도 선거권의 평등은 될지언정 진정한 의미의 정치권력 평등을 실현하지는 못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경제에 대한 정체(政體)는 재산의 평등에 관하여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그 위상이 정해진다. 우측으로는 개인의 재산권을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국가의 인위적 분배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입장, 좌측으로는 국가권력을 통해서 모든 재산을 평등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고 그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전자는 평등보다는 소유권으로서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개인의 절대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 측면에서의 평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현대 정치사상은 자유와 평등이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것을 전제로 이론을 구성하게 된다.

정치적 평등이란 꼭 추구해야만 하는 목표인가?

정치적 평등은 우리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목표는 아닐까? 따라서 우리는 좀 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다른 목표나 이상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제한된 인간적 한계 안에서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에 대하여 민주주의를 평생의 연구 주제로 삼아온 노학자 로버트 달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정치적 평등을 포함해서 평등을 요구하는 힘들이 다양한 제도와 관습, 실천을 통해 전보다 훨씬 더 강화되어왔음을 다음과 같이 실증적으로 설명한다.2) ① 교의를 통해 정당화되어지는 특권화 → ② 엘리트 지배에 대한 하층 계급의 회의주의 → ③ 좀 더 호의적인 조건 → ④ 변화에 대한 압력의 증가 → ⑤ 지배 계층 내부에서의 지지→ ⑥ 피지배 계층의 성취

다만 저자는 이러한 정치적 평등의 강화를 단순한 낙관론이나 결정론의 입장에서만 보고 있지는 아니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본주의가 시민 개개인의 의식과 문화에 스며들어 만들어낸 소비주의 문화를 극복하고, 이를 대체할 시민권 문화를 강조한다. 달은 초창기 C. W. Mills와 같은 엘리트 민주주의 연구에 도전하면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주창하였고, 추후『경제민주주의』,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미국 헌법은 얼마나 민주적인가』 등의 저서를 발표하며 초기의 다원주의적 입장을 일부 수정한다.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자본주의 현실 밖에서 문제를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자본주의 시장 경제 내지 시장 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이자 개혁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한 본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저자의 민주주의론은 결코 특별한 인간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보통의 평범한 인간의 실제 모습에 그 연원을 둔다. 그는 이를 “내가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믿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인생 초기에 보통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로버트 달은 12살 때부터 불법 아동노동으로 파트타임 부두 노동자 일을 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하였다)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충분히 현명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항상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치적 평등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사람들을 추동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성은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그것은 선한 목적을 위해 효과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분명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을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내가 이미 말했던, 동정심이나 시기, 분노, 증오와 같은 정서 내지 감정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추구하는 도덕적 목표나 윤리적 목표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열정에 의해 추동된다.”

이는 결국 정치적 평등의 추구란 모든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며, 보통 시민들의 현실에 기초를 둔 로버트 달의 정치적 이상을 함축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의 생각에 가장 영향을 줬던 대가들은 내가 동의하는 인물들이 아니었다.…플라톤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의 비전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플라톤의 비전에 이의를 제기하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큰 규모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를 확장하면서도 여전히 소규모의 데모스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 평생 나를 매료시킨 문제였다. ……나는 마르크스에게 빚진 것이 많지만, 단 한 번도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적은 없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끝이 없음을 보여 준다.”(책 148~149면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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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후마니타스, 2004, 26~27면
2) 로버트 달,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후마니타스, 2011, 제2장 정치적 평등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목표인가? 이하 참조

곽준영 변호사
●법무법인(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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