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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봐야 아는 일, 시간이 지나야 아는 일

몇 년 전 국회에서 일을 하던 때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한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할머니는 과거에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렸고 조사를 받던 중 맞은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편찮으셨다. 할머니는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법을 바꿔 달라며 국회에 수시로 찾아오셨다. 할머니의 요구에는 다른 피해자 유족의 권리를 제한해야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답을 드리고 싶었기에 가능한 부분에서 개정안 초안을 만들었다. 초안 내용을 설명드리고자 할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설명도 하고 설득도 했지만 잘 통하지 않았고, 그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셔서 화를 내셨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나는 할머니께 법을 그런 식으로 바꿀 수는 없다고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 눈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셨다.

당시에는 선의를 부정당한 서글픔, 도우려 나선 사람을 공격하는 할머니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이 몰려왔다. 원하는 걸 제대로 들어줄 것이 아니면 나서지나 말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분의 눈에 나는 얼마나 냉정하고 재수 없는 변호사로 보였을지, 할머니가 그동안 숱하게 부딪히며 좌절했을, 답답하고 높은 벽처럼 느껴졌을 국가 조직이 바로 당시의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력감도 느꼈다.

다시 몇 년이 지나 다른 피해자단체를 지원하는 일을 하며 트라우마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다. 어설픈 선의를 가졌던 나에게 할머니가 한 행동은 폭력 피해자로서 보일 수 있는 트라우마 반응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할머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 느꼈던 많은 슬픈 감정들도 조금은 놓아 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시간이 흘러 이해가 될 때가 있다. 과거의 부족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어떤 경험을 하거나, 비슷한 일을 직·간접적으로 겪었을 때 특히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겪어 봐야 안다’는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정작 비슷한 일을 겪고 난 후, 시간이 지나 무언가를 깨닫게 된 후에는 늘 뒤늦은 반성과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마사 누스바움은『시적 정의』에서 “우리는 문학을 통해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간접 경험할 수 있으며, 그전까지 알지 못했던 현실을 상상하고, 연민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상, 연민, 공감의 힘이야말로 법조인에게 필요하다고 말이다.

할머니가 피해를 입었을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나는 그 시대로 돌아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고, 당연히 그분의 서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일을 하며 만나게 되는 많은 피해자들의 사연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던 예전의 경험과 다시 몇 년이 흘러 할머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적어도 그 이후에 폭력 피해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경험과 아픔을 이해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분들의 경험과 아픔을 상상하고, 연민하고,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억울함을 사회적 언어로 토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법적 언어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말이다. 그분들과 꼭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더라도, 시간이 한참 지나 뒤늦게 알게 되기 전에 그래야만 했음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긴 했지만 말이다.

김인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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