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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온정과 정의에 대한 단상

필자가 대학 시절 법철학 강의를 들으며 제일 자주 접했던 단어가 ‘정의’라는 명사였던 것 같고, 그 단어를 접할 때마다 깊은 철학과 역사가 담긴 것 같아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하여, 법학을 공부하는 제 자신이 이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었습니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군법무관이 되어 군검사로서 처음으로 실제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마침내 ‘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사건 하나하나에 열정을 다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래서 당시 필자에게 ‘사건의 경중’ 또는 ‘경미한 사건’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 개업을 한 지 5년이 되었는데, 1년 전 한 사건을 의뢰받아 변호하면서 ‘법의 온정 또는 관용’과 ‘정의’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던 사건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그때의 소회를 간단하게나마 적어보고자 합니다.

2019년 초경 필자는 현역 대위 신분인 젊은 장교가 억울하게 절도범으로 몰렸다며 변호를 요청하기에 만나 그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유학까지 마치고 막 군에 복귀한 전도유망한 젊은 장교였는데, 진급을 앞두고 진급에 도움이 되는 어학 점수를 취득하기 위해 주말을 이용하여 인근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독서실에서 1일 500원의 이용료를 내고 어학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건 당일도 토요일이어서 같은 독서실에 가게 되었고, 마침 그날 오후 시골에서 모친이 상경하기로 한 날이어서 모친이 기차역에 도착하면 모시러 나가야 했으므로 휴대폰 충전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급히 숙소에서 나오다 보니 충전기 챙기는 걸 잊고 독서실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단 독서실 자리를 잡으려고 독서실에 들어갔는데, 주말이어서 그런지 입구에 사용료를 수납하며 관리하는 관리자 외에 아무도 없었고, 자리를 찾으려고 독서실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빈 책상 위에 충전기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서실에서 빌려주는 공용 충전기를 누가 사용한 후 반납하지 않고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퇴실한 것으로 생각하여 가져가 사용한 후 반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휴대폰을 충전하며 어학 공부를 하다가 모친으로부터 역에 도착하였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역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충전기를 반납하지 않고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채 독서실을 나와 모친을 마중하러 갔습니다. 그 후 그는 모친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시 독서실에 갈 수 없었고 충전기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은 채 그다음 날인 일요일에 다시 독서실에 가서 전날과 같이 어학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경찰관이 오더니 그를 독서실 밖으로 불러냈고, 그 이유를 물으니 어제 그가 사용했던 충전기의 주인이 절도를 당했다며 신고를 하여 CCTV를 확인한 결과, 그를 범인으로 인지하였으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경찰관의 말을 들은 그는 아연실색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피해자를 만나 오해를 풀고 싶다고 애원하였지만 그 경찰관은 신고가 들어왔으므로 입건 조사가 불가피하고 피해자와의 면담은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며 일단 경찰서로 가자는 말만 되풀이하였고, 그 후 신분이 군인임을 안 경찰관은 억울한 사정은 관할권이 있는 군 헌병수사관에게 말하라며 사건을 입건하여 헌병대에 송치하였습니다. 그 후 그 장교는 피해자와 만나 서로 오해를 풀었고, 피해자도 사정을 모른 채 독서실에 좀도둑이 있나 해서 경찰에 신고하였던 것인데 일이 너무나 커져서 오히려 미안하다며 그러한 내용이 담긴 사실확인서까지 작성해 주었습니다.

한편, 그 사건은 군 헌병대 수사를 거쳐 군검사에게 송치되었고, 헌병대 조사를 통해 억울함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낀 그 장교는 그제서야 변호인을 선임하기로 하고 필자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사건을 의뢰받은 필자는 피의자에게 절도의 고의가 없거나 최소한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던 것이므로 절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군검사도 법률가로서 당연히 같은 판단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조사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막상 조사에 참여해 보니 군검사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 즉 ‘충전기를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유기하였다면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될 수 있다’는 논리를 언급하며 사정은 이해하나 법리적으로는 유죄라는 판단 의견을 보였고, 실제 처분도 기소유예의 결정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기소유예의 불기소처분은 검사가 정상을 참작하여 선처를 베푼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장교에게 기소유예의 처분은 그에 부수하여 따르는 징계처분까지 합하여 군 생활 내내 따라다니는 불명예일 뿐만 아니라, 진급에도 엄청난 장애요소로 작용하므로 사실상 장교로서 더 이상 복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불이익을 잘 알기에 내심 무혐의를 자신했던 필자로서는 당황스러운 결과였고, 당시 담당 군검사는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입대한 젊은 법무관으로서 처음 법무관으로 군검사를 하던 때의 필자처럼 정의감에 넘쳐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판단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를 비난할 수는 없었지만, 필자의 마음 한켠에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위 사건의 충전기는 그 사건 독서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독서실에는 상시 비치되어 있거나 대여해 주는 것으로서 화폐가치로 환산한다 하더라도 불과 몇 천 원에 불과한 중고 충전기였다는 점에서, 설사 그 장교가 실수로 그 충전기를 가져다 썼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와 대면하여 “자리에 있었다면 말씀드리고 빌려 썼을 텐데 아무도 없어서 허락도 없이 사용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과연 그래도 피해자가 그를 절도범으로 신고하였을 것인가 또는 신고하였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대면하여 사정을 이야기하였을 때 피해자가 처벌해 달라고 하였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당시 경찰관이 그를 입건하고 군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찬사를 보낼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지 참으로 의문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필자는 그 장교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되었고, 헌법재판소는 심리 끝에 필자의 의견과 같이 무혐의로 판단함으로써 장장 1년간의 변호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 사건에 대하여 무혐의 판단을 하였지만, 결정문을 읽으면서 필자는 재판관들의 고심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러한 판단이 오로지 법리에만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의 온정’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정의’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수 있다는 혜안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동일한 일상의 반복이 변호사들의 숙명이지만, 오늘도 그러한 혜안을 지닌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내일의 재판을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류희삼 변호사
●법무법인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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