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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를 두고 두 번 찾아온 의뢰인

2020년 여름 휴정기를 맞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른한 오후에 동료변호사로부터 글을 써 보라는 청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머뭇거리자 동료변호사가 ‘어째 변호사가 기억에 남는 소송도 없냐’는 핀잔을 하였고, 그것을 못 참고 덥석 쓰겠다고 하여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소송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찾아온 의뢰인 - 항고사건 의뢰

2017년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에 저의 사무실로 지방의 작은 도시에 사는 아주머니 세 분이 두 개의 보따리에 기록을 나눠서 들고 찾아오셨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찾아왔노라고 하면서, ‘조합장이 괘씸한데 처벌을 받지 않게 되었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사건의 경위를 요약하면, 저를 찾아온 의뢰인들과 의뢰인들이 고소한 피고소인은 지방 소도시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 사이로, 피고소인의 주도로 각자 출자하여 절임배추 등을 생산하는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피고소인이 대표이사가 되어 법인을 운영하였는데, 법인에 수익이 발생하자 대표이사인 피고소인이 법인의 수익금을 업무상 횡령하기 시작했고, 이를 알게 된 의뢰인들은 피고소인을 고소하였는데, 그 즈음에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너무 억울하다며 저를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의뢰인들로부터 사건의 내용을 듣고, 검사의 처분에 관한 항고를 제기하여 다시 재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을 드리고, 의뢰인들이 가지고 온 수사 기록, 법인 계좌 거래내역, 법인 정산서, 3 ~ 4년치 법인 회계자료 등을 분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료들을 검토할수록 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의 업무상 횡령 사실이 조금씩 드러났고, 이를 토대로 항고장을 작성하여 접수하였습니다. 몇 달 후 의뢰인들로부터 들뜬 목소리로 ‘재수사 명령’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저 또한 검찰 항고사건에서 인용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아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앞으로 이런저런 절차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 드리고 전화를 끊었고, 이 사건은 제 기억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두 번째 찾아온 의뢰인 - 민사 항소심 의뢰

올해 2월경 쓸데없이 바쁘기만 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에(아직 코로나19가 대유행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위 의뢰인들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내용인즉, 검찰 항고에 따른 재수사 명령에 의해 피고소인 대표이사는 기소되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는데, 의뢰인들이 피고소인을 상대로 낸 조합 해산에 따른 잔여재산분배청구소송(민사소송)에서는 자신들이 청구한 금액의 5% 정도만 인정되는 판결문을 받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민사 항소심을 맡아달라고 찾아온 것입니다. 물론 이번에도 보따리 두 개에 민사 기록을 나누어 담아 오셨습니다. 저를 다시 찾아온 의뢰인을 보고 ‘일이 꼬인 후에만 나를 찾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역시 의뢰인이 나를 알아주는구나!’ 라는 뿌듯함이 더 컸던 탓에 즐겁게 맞이하였습니다.

항소이유서를 작성하기 위해 민사 1심 기록과 판결문을 검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검토해 보니, 1심 판결은 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인 피고의 형사판결문에서 인정된 업무상 횡령 금액만을 조합의 잔여재산분배 대상으로 인정하고, 이를 의뢰인(원고별) 1/n으로 하여 분할해 준 것이었습니다. 이에 항소이유서에 ‘절임배추 등을 생산하는 영농조합법인의 성격상 겨울 시즌에 많은 양을 납품하고, 납품대금은 다음 해 5 ~ 8월경에 입금되는데, 2015 ~ 2016년 겨울 시즌에 납품된 절임배추 등의 납품대금이 조합 해산 이후에 입금되었다는 이유로, 1심 판결문은 물론 피고의 업무상 횡령 금액에도 포함되지 않았고 따라서 항소심에서 위 부분을 포함해서 다시 정산해야 한다. 그러려면, 영농조합법인의 5개 계좌 및 피고의 계좌를 일정 기간 이후부터 다시 사실조회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그런데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고 약 한 달 후에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소취하 여부’에 관한 확인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에 의뢰인들에게 물어보니, “피고가 항소이유서를 받아 보고, 먼저 연락을 해와 1심 판결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줄 테니 소취하 해 달라고 해서, 합의금을 받고 소취하 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항소이유서만 받아 보고, 피고(피항소인)가 합의를 요청하여 항소심 1회 기일이 잡히기도 전에 합의하고 소취하로 종결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건이 끝난 후 변호사를 다시 찾아오는 의뢰인은 많지 않고, 다시 오더라도 간혹 다른 이유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사건은 의뢰인들이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시차를 두고 찾아와 결국 좋은 결과까지 얻게 된 것으로, 저 또한 자긍심을 갖게 된 사건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백종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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