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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누스바움의 신작이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선 이 책을 읽고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책의 부제는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이었는데, 전작『혐오와 수치심』,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보여준 혐오에 대한 통찰을 사랑과 연민의 이름으로 어떻게 풀어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경제 침체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집어넣고 있다.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친구는커녕 가족조차 만나지 못하는 상황.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써서 표정을 볼 수 없고, 마주하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공포에 직면해 살아가고 있다. 이 시기에 느끼는 우울감, 심리적 어려움을 ‘코로나 블루’라 부르기도 하던데, 사실 그보다 더 많이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 공포, 분노, 그리고 혐오이다. 사람들은 잔뜩 화가 나 있고, 인터넷에는 온갖 혐오의 말들이 가득하다.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없는 자리를 인터넷상의 얼굴 없는 말들이 차지했고, 마치 그 말들이 지금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나라를, 특정 지역을, 종교를, 성별을, 그리고 연령대를 혐오한다. 혐오의 대상이 된 집단은 다시 다른 집단을 혐오한다. 감히,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감정이 혐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Monarchy of Fear(두려움의 군주제)』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두려움이 분노, 혐오, 시기와 같은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피며, 두려움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일정 부분 무력하며 타인에게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데,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신뢰해야만 실현 가능하다. 특히 타인을 지배해 노예로 삼는 절대왕정제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반인 ‘신뢰’는 ‘두려움’에 의해 손상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대체로 무지에서 비롯된, 모호한 수사를 먹고 자란 ‘무정형의 두려움’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대상을 공격적으로 타자화시키고 성급하거나 정당하지 않은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두려움은 또한 보복 감정, 응보적 분노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협력이 가장 필요한 순간, 분열을 초래한다.

“상호 의존과 평등을 중심으로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인간이 탄생과 함께 겪는 나르시시즘을 극복해야 한다. 타인을 노예로 삼으려는 욕망을 배려와 선한 의지로 대체하고 유아기적 공격성의 한계를 수용해야 한다. (중략) 두려움은 도덕적 관심의 표면 아래 도사리면서 민주주의의 안정을 위협한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상호 호혜를 받아들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책 93면 축약)

“사람들은 큰 불안을 느낄 때 취약한 집단을 비난하며 성급하게 희생양으로 삼는다. (중략) 혐오는 언제나 두려움을 유발하는 특정한 생각과 결합된다. 하지만 혐오가 두려움에 관한 것이며 구체적인 두려움들의 집합이 연료가 된다면, 다른 조건이 같을 때 불안정한 시기일수록 혐오 집단의 필요성이나 낙인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책 170면 축약)

두려움에 대한 이러한 통찰은 무엇보다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표출하고 있는 일련의 감정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콧물과 기침, 침방울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이 두려움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 대한 분노로, 나아가서는 방역 수칙을 어겨 집단 감염을 일으킨 대상들을 지역, 세대, 특정 종교 등으로 집단화해서 혐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두려움은 대부분 실체가 모호하고 위험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폭 넓고, 사려깊은, 공적 숙의로 걸러진 두려움’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충분히 숙의한 두려움은 실재하는 위험과 공포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유용한 생존 수단일 수 있지만, 성급하고 정당하지 않은 두려움은 사고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감정을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정확한 사실의 공개, 둘째, 그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 셋째, 시민으로서 반대 의견도 말할 수 있는 독립 정신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혐오와 같은 유독한 감정들, 두려움으로 인한 모든 감정을 뛰어넘어 모두를 위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혐오, 공포, 보복, 폭력에 대해 품위 있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이성적인 비판 정신,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사랑하는 마음, 희망을 가지고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상상력, 이 모든 것을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전작을 통해서도 예술과 인문학, 인류애와 사랑이 가진 희망과 가능성을 이야기해 왔고,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철학, 인문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수사들이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사랑은 행동 양식의 가장 큰 바탕이 되는 지향점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정작 나라는 한 사람은 얼마나 혐오에 우아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려움의 실체를 좀 더 생각하고, 불필요한 분노를 자제하고, 모호한 수사에 휘둘리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눈을 흐리게 하는 두려움을 걷고 나면 타인에 대한 연민, 사랑, 신뢰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리라.

김인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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