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인문학두드림
변호사에게도 스승이 필요한가?

“스승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 영향이 어디에서 멈추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학생들은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사를 받아들인다.” 이는 교육철학자 헨리 애덤스가 남긴 명언이다.

필자는 1987년 봄 사법연수원생 시절에 변호사실무수습을 나가서 잊지 못할 스승을 만났다. 당시 실무 지도관으로 지정된 그분(일단 그분으로 칭한다)을 뵈러 덕수궁 정문 옆 빌딩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분의 첫인상은 과묵하고 엄숙한 편이었다. “앞으로 계속 나올건가?” 약간은 퉁명스런 질문이 날아왔다. 아마도 당시 연수생들이 대부분 판검사를 꿈꾸면서 변호사실무수습은 대충 때우고 마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게 물으셨던 것 같다. 그때부터 몇 달간 그분과 한방에서 같이 지냈다. 낡아서 삐꺼덕거리는 책상과 의자, 자욱한 담배연기, 켜켜이 쌓여있는 소송기록들이 어우러진 작은 방에서 치열한 실무수습이 시작되었다.

# 장면 1

그분은 첫날부터 소송기록을 듬뿍 안겨주시면서 준비서면을 쓰라고 하셨다. 눈이 아프도록 기록을 보고 각종 서면의 초안을 작성해서 드리면, 빨간 볼펜으로 이리저리 고쳐 주시고는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매일 일찍 출근해서 정신없이 타자기 자판을 두들기다가 혼자 도시락 점심을 먹고 별이 뜨면 퇴근했다. 밥을 사 주시거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시는 법도 없었다. 마치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횡단하는 순례길 같은 나날들이었다. 근처 사무실의 다른 동기 연수생들은 자신의 지도관들이 두둑이 용돈도 주고 저녁에 술도 사준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고달픈 시간들 속에 보람도 있었지만 조금은 서운했다.

# 장면 2

그분을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대개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분 앞에서 울기도 하고, 하소연을 길게 늘어놓기도 하고, 변호사선임비용이 부족하다고 애걸복걸하기도 했다. 필자는 등 뒤의 소파에서 오갔던 대화들을 아련히 기억한다. 그분은 약자들에게는 마치 동네 형님이나 아저씨처럼 다정하게 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엔 잘 차려입은 어떤 의뢰인이 들어와서 뭔가 나직이 얘기를 했는데, 그분이 갑자기 대노하여 호통을 쳤다. “판사에게 뇌물을 주라고요? 감히 내게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그 의뢰인은 곧바로 쫓겨났다. ‘돈을 벌 생각이 전혀 없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장면 3

변호사실과 직원들이 사용하는 방은 얇은 베니어판 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무장과 여직원 그리고 운전기사가 있었는데, 그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벽을 통해 들릴 때가 있었다. 그분이 출타하여 필자 혼자 있을 때에는 직원들이 조금은 자유롭게 대화를 했는데, 그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존귀한 어른이 곁에 있는 것처럼 극진히 받드는 얘기들이었다. 주인이 없는 자리에서 직원들이 어찌 저리 주인을 칭송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 장면 4

힘들었던 수습기간이 끝나기 직전 그분께서 갑자기 부부 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남산 기슭의 호텔 식당에서 그분과 사모님께서 우리 내외에게 근사한 음식을 대접해 주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자네가 법조초년생이라 일부러 엄하게 대했네. 작은 이익이나 칭찬에 마음 흔들리지 않고 일에 매진하는 겸허한 자세를 배우도록 밥 한 끼도 같이 먹지 않고 그냥 지켜보았네. 그동안 미안했고 고마웠네.” 그분은 멀리서 보면 엄숙했으나 가까이서 보면 참으로 따뜻한 분이었다. 그분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몸 바쳐 살아오신 인생 역정을 들으면서 진정으로 감동했고 많이 부끄러웠다.

# 장면 5

그로부터 약 1년 후 필자가 법관으로 임용되어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다. 그분께서 다짜고짜 물으셨다. “달걀에 바늘을 꽂았다가 빼면 그 달걀은 성한 것인가 상한 것인가?” 느닷없는 선문답(禪問答)에 당황했다. “바늘에 한 번 오염된 것이라 상한 것입니다.” 그분이 비로소 온화하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판사가 되어 단 한 번이라도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말고 올곧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었다. 시대의 어둠을 밝힌 드높은 선비이자 썩지 않은 양심으로 불의와 싸
워 오신 스승의 준엄한 채찍이요, 제자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이었다.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 장면 6

그분께서 갑작스레 타계하신 후 긴 세월이 흘렀다. 필자가 어느 지방법원의 지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그분의 여동생 부부가 찾아왔다. 초면이었다. 여러 동생들이 그분의 행적을 더듬어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가 과거 몇몇 지인들에게 그분에 대한 추억을 얘기한 것이 동생들 귀에 들어간 것 같았다. 필자의 회고담에 초로의 여동생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가슴이 뭉클했다.

너무나 일찍 스승을 잃고 그리움과 아쉬움 속에서 살았다. 그래도 그분의 영향은 필자의 삶에 영원히 남아있다. 다만, 송구한 것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보은(報恩)을 하기는커녕 그저 못나고 부끄러운 제자에 그친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비루(鄙陋)하게 살지 않은 것은 그분의 가르침 덕분이다. 바로 ‘그분’은 마음깊이 존경하는 고(故) 황인철(黃仁喆)변호사님이다. 변호사에게도 스승이 필요한 법이다.

황적화 변호사
● 법무법인 허브

황적화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