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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뒤에 뵙겠습니다

"4주 뒤에 뵙겠습니다"

법정물 TV 프로그램 중 가장 히트를 친 대사는 저 말이 아닐까요? 이혼 조정실을 배경으로 각종 이혼사건을 조망하던 <사랑과 전쟁>은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 같던 존재로 아주머니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저런 집구석이 어디 있냐’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감상평이었는데, 그때에는 저도 어렸으니 그 감상평에 큰 공감을 했지만, 막상 변호사가 되어 이혼사건들을 진행해 보니 <사랑과 전쟁> 뺨치는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분통이 터지기도 하고,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슬픈, 그런 사건이 바로 이혼사건입니다. 이는 이혼이라는 것이 결국 가족에서 시작되는 법적 문제이고, 그러한 일들이 내 가정뿐 아니라 내 주변의 가정에도 수시로 일어나는 분쟁에서 비롯된 법률분쟁이기에 변호사들 역시 감정이입이 크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혼 조정실에서의 모습들을 한번 나누어 보고 싶어 기억나는 몇 사건의 조정실에서의 모습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변호사가 진의를 몰랐던 그의 소송 

이혼소송을 제기했던 의뢰인은 부정행위의 증거로 상대방의 연습장을 가져오셨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상대방이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임용고시 준비를 도왔더니, 함께 스터디를 하던 남자와 부정행위를 하였다며, 자기는 고생만 했다며 억울함을 주장하셨습니다. 상대방의 연습장에는 상대방이 상간남에게 결혼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시험이 끝나면 이혼할 테니 나를 계속 만나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의외로 상대방은 순순히 부정행위를 인정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의뢰인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얼마든 위자료를 다 줄 테니 이혼에 응하겠다고 하는 모습은 순정만화 속의 여주인공 같아 왠지 제가 악역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저는 ‘사건이 오늘 끝나겠구나!’하는 안도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을 깬 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이혼할 수 없다는 의뢰인의 외침이었습니다. “이혼소송을 하면 네가 나한테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이혼할 수 없어!”라는 비명에 저도, 상대방도, 조정위원들도, 나중에 오신 조정장님도 너무 놀라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는, 공무원에게는 이혼 경력이 치명타일 거라 생각해 이렇게라도 하면 자신에게 상대방이 돌아오리라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어찌저찌 이혼은 성립되어 사건은 종결되었으나, 조정실을 나오자마자 다시 돌아와 달라며 상대방을 쫓아가려던 의뢰인을 겨우겨우 몸으로 막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의뢰인에게 저는 성공적인 변호사였을지, 아니면 자신의 진의를 캐치하지 못했던 변호사였을지 가끔 궁금합니다.

얼마까지 생각하셨어요?

이혼사건을 다루면서 가장 마음이 아플 때는 양육권과 양육비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이에게 당연히 쓰이는 돈으로서 지급되어야 하는 양육비를 상대 배우자에게 지급한다고 생각을 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를 씁니다. 상대방이 생활비를 터무니없이 많이 쓴다며 비하하기도 하고, 양육권을 자기가 가져오겠다고 억지 주장을 하기도 하고 말이죠. 이러한 양 당사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것은 조정위원들입니다. 어떤 조정위원을 만나는지에 따라서 양육비가 아이를 고려하여 정해지기도 하고, 단순히 어른들의 감정싸움의 결과로 남기도 합니다. 가장 황당했던 기억은 굉장히 심드렁한 태도로 ‘얼마까지 생각했냐’라던 한 조정위원이었습니다. 이른바 ‘용팔이’와 같은 멘트에 너무 황당해서 저도, 의뢰인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는데, 그 말에 신이 난 상대방은 ‘40만 원까지 생각했다.’ 라며 흥정을 시작했습니다. 양육비에 대해 매우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던 조정위원 덕분에 해당 사건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판결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훌륭한 조정위원 덕분에 결렬될 것 같던 양육비 조정이 성립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양 당사자의 의견을 한 번씩 확인하고, 양육비는 자녀들을 위하여 사용되는 돈이고 이것이 없을 경우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점을 주지시킨 뒤, 양 당사자들을 번갈아 불러 객관적인 경제상황, 아이들의 양육상황(현재 양육에 쓰이는 한 달 비용, 학원비는 얼마인지, 고액과외나 병원비와 같은 특별한 지출이 있는지 등)을 매우 세밀하기 살피며 당사자들의 의견 차이를 조율했습니다. 그 결과 의뢰인은 받고자 했던 양육비 액수를 모두 상대방으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조정위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양육비를 큰 지체 없이 지급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이혼 조정실의 조정위원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지요.

그냥 재결합하시면 안 될까요? 

특이한 의뢰인이었습니다. 남편분은 지방에, 의뢰인은 서울에 거주하는 분이었는데 남편이 지방에서 부정행위를 하여 이혼을 하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이가 겨우 2살 정도로 제대로 면접교섭이 이루어질까 걱정이 되는 사건이었는데, 이분들이 면접교섭과 관련된 교육을 받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는지 면접교섭에 관해서만큼은 굉장히 협조적인 분들이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남편분은 금요일 오후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아이를 데리고 본가에 가서 조부모들과 함께 아이를 보고,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다시 의뢰인의 집에 데려다주는 매우 모범적인 분들이었습니다. 면접교섭 수첩을 만들어 아이가 면접교섭하는 동안 이상은 없었는지 여부를 체크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모든 이혼사건을 통틀어 보아도 그만큼 모범적인 면접교섭 사례는 없었습니다. 조정기일이 잡히기까지는 소장 제출 후 약 6 ~ 7개월 정도 걸렸는데, 조정기일에도 함께 차를 타고 오실 정도로 이분들은 사이가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뢰인의 모습에 조정위원들은 물론이고 저까지 재결합을 하는 것은 어떠냐고 여쭈어보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두 분 다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그건 아니다.’라고 딱 잘라 거절한 뒤 서로를 보고 깔깔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유쾌한 조정도 이례적이었지요. 조정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두 분이 같이 해장국 드시러 가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가정법원을 나가는 그분들의 뒷모습을 보며, ‘모든 이혼사건의 면접교섭이 저렇게 진행되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더랍니다.

누군가에게는 막장드라마인,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끝날 것 같은 경험인 이혼사건. 그 누구에게도 사실은 명확한 승패가 없는 이혼사건. 오늘도 당사자분들의 원만한 이별을 돕고 계실 많은 변호사님들께 응원의 말씀을 전하며 부족한 글을 맺습니다.

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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