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들과 며느리는 여러분과 같은 변호사입니다. 저는 이 친구들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부모가 되어 장성한 아들 부부와 같이 살 수 있는 것은 노년의 큰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평생 부모로서 느낀 자식 걱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농담처럼 던진 "고시공부 할 때가 오히려 삶의 질이 나았던 것 같다."는 말이 가끔 떠오릅니다. 시험에 붙었으니 하는 배부른 소리겠다 싶으면서도, 지금도 만만치 않게 힘든 삶을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놀라기도 합니다. 아들 부부는 애가 하나 있지만,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합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엄마 아빠를 찾는 손자 녀석을 보는 것이 마음 아프게 다가오지요. 주말에는 주중에 쌓인 피로 때문인지 놀러 나갈 생각은커녕 케이블 방송에서 수차례 틀어주는 영화를 또 보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는 주말에 집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발을 질질 끌면서 회사에 나가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운동화는 신지 않아서 신발장에서 삭고 있는 것 같고, 일요일 밤이 되면 뭔가 엄습해 오는 듯한 표정들입니다
어떻게 바꿔 보겠다고 자기계발서도 사 보고, 헬스도 끊어 보고, 모임에도 나가 보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쳐버린 개인을 탓하기 전에 지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는 것이지요.
구조를 바꾸는 것은 개인들이 모인 연대입니다.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개인들이 모이면 구조도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희생을 할 각오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며느리가 아기를 낳고 3개월 만에 다시 회사에 나가더군요. 그 정도 휴직기간이면 업계에서는 최선의 보장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젊은 변호사들도 나중에 법인의 대표가 되면 이것을 반복할 것입니까?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른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여러분의 몫입니다. 육아휴직을 6개월로 늘리고 휴직자에 대하여 일부 삭감된 급여 부분이 업무가 가중된 다른 변호사들에게 돌아가면 휴직자도 마음의 불편함이 덜할 것이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육아휴직을 부러운 특권으로 느끼는 괴리감을 덜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표 역시 배려와 효율성 보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겠지요. 이는 아쉽게도 국가가 도와줄 부분을 내부적으로 해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작은 구조들이 바뀌면서 국가의 복지구조, 사회구조도 바뀌게 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변호사 부부를 둔 아비로서 젊은 변호사 여러분들이 자신이 속한 시스템의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런 시각을 서로 나누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전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