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원고 C의 주장 요지
C는 2007년 3월경 모 주식투자 설명회에서 유명인인 A의 매니저 B를 알게 되었다. C는 같은 해 4월 초경 B의 소개로 A의 집 근처에서 A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A는 C에게 주식전문가인 D에게 주식투자를 의뢰하려고 하는데 일시적으로 현금이 없어서 그러니 2억 원을 빌려 주면 일주일 안으로 갚겠다는 취지로 부탁을 하였고, C는 이를 승낙하여 A에게 2억 원을 송금하였으므로 A는 C에게 2억 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
의뢰인 A의 주장
B의 주선으로 C를 만나게 된 것은 맞다. 그 자리에서 C는 A에게 “예전에는 주식전문가 D가 자신(C)의 주식을 관리해 주어 큰 이익을 보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주식을 관리해 주지 않고 있다. A는 유명인이니 A가 D에게 부탁하면, D가 자신의 능력을 홍보하기 위해 A의 주식계좌를 운용하여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2억 원을 당신 계좌로 보낼 테니 D에게는 당신(A)이 주식계좌를 맡기는 것으로 하라. 이익이 나면 절반 정도씩 나누어 가지자.”는 제안을 하여 그 제안을 승낙하고 2억 원을 계좌이체 받았을 뿐 C로부터 2억 원을 차용한 사실이 없다.
관련 형사사건의 경과
C는 A의 명예에 타격을 주어 2억 원을 받아내려는 의도로 2008년 12월경 A와 B를 ‘변제의사나 능력 없이 2억 원을 차용하고서 갚지 않고 있으니 사기죄로 처벌해 달라’는 취지로 고소하였으나, 검사는 C의 무고 혐의를 인지하여 기소하였고,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었다. C는 항소하였고, 항소심은 ‘C가 A 명의의 증권계좌를 빌리기로 하여 2억 원을 증여 또는 투자하였다기보다는 A에게 2억 원을 대여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하였고, 대법원 역시 같은 이유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여 C에 대한 무죄가 확정되었다. 위 형사사건에서 B는 A가 C로부터 2억 원을 계좌이체 받은 직후 A 명의의 증권계좌를 개설하였고, D가 지시하는 대로 증권계좌에 2억 원을 입금한 뒤 증권계좌를 통해 추가로 2억 원을 대출 받았으며, 원금 2억 원과 대출금의 합계 4억 원을 D가 운용하였는데, C는 D가 주식을 사고파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면 더 큰 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여 B를 통해 A의 증권계좌번호, 비밀번호, HTS(인터넷 홈트레이딩시스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보안카드를 교부받아 증권계좌 거래 내역을 조회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항소심과 대법원은 B가 증권사로부터 발급받은 공인인증서를 C로 하여금 사용하게 해 주었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어 C가 A의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없었으므로 B의 위와 같은 주장은 거짓이라는 점을 주된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한편, D가 A의 계좌를 운용하던 중 D의 주가 조작이 발각되어 D는 구속 기소되었고, A는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민사소송 경과
C에게는 ① A의 계좌에 2억 원을 입금한 내역과 ② ‘C가 A에게 2억 원을 대여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대법원판결이 있었으므로 C가 유리한 입장이었다(법관들이 관련 판결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더군다나 이 사건의 경우 그 관련 판결이 대법원판결이 아닌가). 우리 법인에서는 그동안 B의 주장에 근거하여 C가 D의 거래를 모방하기 위해 A의 거래내역을 조회하였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C의 주식거래종목과 거래내역을 조회하는 한편, A의 주식계좌 HTS에 접속한 IP의 주소를 파악하여 C가 C의 집에서 A의 주식계좌 HTS에 접속하였는지를 조회하였다. 그런데 C가 A의 거래내역과 같은 주식종목을 같은 날 매수하고 같은 날 매도하는 등 일부 모방을 엿볼 만한 거래가 발견되었을 뿐 IP조회는 실패하게 되었다(유동IP의 경우, IP조회를 통해 접속장소를 특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대로 가면 A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대법원판결의 오류
기록을 검토하던 중 형사판결의 이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오류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증권사로부터 발급받은 공인인증서를 원고로 하여금 사용하게 해 주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어 C가 A의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없었으므로 B의 위와 같은 주장은 거짓이라는 점’은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일반 은행거래와 달리 증권계좌의 경우 HTS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공인인증서 없이도 주식거래 내역의 조회는 가능하고, 실제 주식거래를 체결할 때에만 공인인증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민사소송에서 입증한 후 재판부를 설득하여 C의 계좌 여러 개를 추가로 조회를 하였다. 추가 조회 결과 C가 A에게 송금한 2억 원은 자신의 동서의 계좌로부터 입금되었고, 자신의 계좌에 단 17분만 머무르고 바로 A에게 송금되었다는 사실 등이 확인되었다. 법원은 원, 피고에 대한 당사자 본인신문도 채택하였다.
승패를 갈랐던 당사자 본인신문
본인신문에서는 ① A가 자신의 동서로부터 2억 원을 빌려 C에게 송금하였다는 점, ② 타인으로부터 빌린 돈을 다시 피고에게 송금하면서 차용증, 현금보관증 등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 ③ C는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2007년경에도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등 돈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고, A에게 2억 원을 송금할 무렵 가족의 법률문제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률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변호사와 상담하는 등 법률 문외한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A에게 2억 원을 빌려 주면서 차용증, 현금보관증 등을 작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고를 사기죄로 고소하기 전까지 내용증명을 통해 변제를 촉구하는 등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였다는 점, ④ C는 A에게 송금한 돈이 D에게 건너가 주식투자금으로 쓰이는 줄 알았고, D가 주가를 조작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관련 주식이 일제히 폭락한 것을 잘 알았는데도, 2008년 12월경 A를 사기죄로 고소할 무렵까지 변제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는 점, ⑤ A는 주가조작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도 여러 번 TV에 출연했기 때문에 C로서는 언제든지 A를 찾아가 변제를 독촉할 수 있었는데도 전혀 변제를 요청한 사실이 없었던 점 등이 밝혀졌다. 법원도 위와 같은 사실을 근거로 C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위 판결은 확정되었다.
사건의 의의
실체적 진실 발견이 형사소송법 대원칙 중 하나이지만, 때로 그 진실이 법원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외면받은 진실을 다시 법원으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는 것, 그것이 변호사의 책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사건이었다.
윤규상 변호사
사법시험 제49회(연수원 39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