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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_자기를 버릴 수 있는 지도자 / 백승재
최근 한국을 다녀가신 프란체스코 교황님께 많은 분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낮은 자세에서 보여 주시는 높은 사랑과 실천하시는 모습에서 그동안 저희 지도자들에게서 받지 못했던 위로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누군가 지도자는 ‘지도’와 ‘자’를 가진 자라고 얘기했습니다. 조직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하고, 가는 도중에 무엇을 만날지 등을 미리 알고 대비하게끔하는 ‘지도’, 다시 말해 비전을 가진 자이면서, ‘자’, 즉 원칙을 갖고 동일한 잣대로 공평무사하게 처리하는 자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런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통솔력(統?力)입니다. ‘통치의 기술’과 ‘솔선수범하는 자세’입니다. 저급한 지도자들은 군림하면서 규제와 억압의 통제(統制)에만 신경쓰고, 중급의 지도자는 군림하되 인과 덕으로 다스리는 통치(統治)기술로만 조직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지도자는 어렵고 힘든 일을 몸소 맡아 솔선수범(?先垂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라고 합니다. 요새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명량>이라는 영화가 1,500만 명을 넘어서 한국 영화의 신기록을 계속 갱신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떠나, 세월호 참사에서 본 우리 정부와 지도자들의 무능과 무원칙, 그리고 무책임한 모습에 절망한 우리 국민들은 단 12척으로, 그것도 이순신 장군이 타고 있는 대장선을 제외하고는 다른 11척은 두려움에 떨면서 대장선 뒤로 빠지는 상황에서 330척의 적선을 맞아, 혼자서 맨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독전하는 지휘자의 솔선하며 책임지는 모습에 열광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지도자는 누구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고 먼저 행동하는 자라는 것을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전용기가 아닌 전세기의 일반 비즈니스석을 이용하시고, 방문국가에서 제작되는 가장 작은 차를 원하시며, 전 세계 누구보다도 인종, 성별, 종교, 등 모든 대립하는 세력 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셨기에 그만큼 생명의 위협에 직면하신 분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과 만나시고자 방탄차도 마다하고 직접 군중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런 부드럽고 포용적인 면과 함께 불의에는 강력하게 맞서시는 강직함도 보여주셨습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신부님들을 고문하고 살해하자 이들과 맞서 싸우시며, 살인을 일삼는 마피아의 본거지에 가서 마피아는 악이므로 파문한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이분의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아마도 이분이 교황이 되시면서 청빈과 가난의 성자 프란체스코를 선택하신 것처럼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가짐이 없으셔서 그러실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 전에 쓰신 글을 보면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매일 세수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고 멋을 내어 보는 이 몸뚱아리를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육신을 위해 돈, 시간 열정, 정성을 쏟아서 ‘예뻐져라, 병들지 마라, 늙지 마라, 죽지 마라’고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 바람과 달리 살찌고, 야위고, 병들고 노쇠하여 결국 죽는다. 아내도 자녀도 내 것이 있는가? 내 바람대로 되는 것이 있는가?” 하시며 “피할 수 없으면 껴안아서 내 체온으로 녹이고, 누가 해도 할 일이라면 미적대지 말고 지금 당장 내가 하자.”고 권하셨습니다. 또한 “운다고, 짜증낸다고, 싸워서라도 일이 풀린다면 그리 하겠다. 그러나 모든 일은 순리가 있다. 내가 조금 양보한 자리, 조금 배려한 자리, 조금 낮춰 놓은 자리, 그래서 생긴 여유와 인심이 나보다 더 불우한 이웃과 생명체들의 희망공간이 된다. 세상은 정말 고마움과 감사함의 연속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내가 있고,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인간은 그 가짐의 습관으로 자기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이루고 지키려고 하면서 다름을 만들고, 돈, 가족, 명예, 사랑, 생명 그 어느 것이라도 잃을까봐 두려움을 갖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버릴 수 있을 때 이순신 장군 말씀처럼 죽기를 각오하면 살 수 있는 용기(生卽死 死卽生)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무엇이든지 너무 많은 이 시대, 있음보다는 없음을,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택하시고, 자기를 버릴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없어져야 비로소 이해와 관용, 협력이 이뤄지며, 용기와 사랑이 생기니까요. 
 
 
수정됨_백승재사진.jpg

 
백승재 변호사 
사법시험 제41회(연수원 31기)
EY한영 법무담당 상무, 한국사내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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