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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상상의 세계』


올해 2월 말 프리먼 다이슨이라는 물리학자가 세상을 떠났다. 양자전기역학의 기반을 다진 논문의 저자로 평가받았지만, 정작 그는 이단아적인 삶을 살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박사학위조차 따지 않았으나, 평생을 연구에 몰두했고, 비록 가르치는 것은 싫어했지만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대중 서적의 저자였다. 오늘 소개할 책은 그가 1997년에 출간한 『상상의 세계』라는 책이다. 거의 한 세대 이전의 과학적 내용을 담은 것이지만, 지금도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올해 노벨상을 받은 ‘유전자 가위’는 유전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한편 이 기술이 가지는 윤리적 문제는 늘 지적되어왔다. 가정적으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인간의 배아에 적용하면, 예전 영화 <가타카>와 같은 우성 형질의 유전자로 구성된 인간과 기술이 적용되지 못한 인간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거기에는 언제나 부(富)의 문제가 개입된다.

약 25년 전에 쓰인 이 책에서 저자는 설계프로그램인 CAD-CAM의 사용의 편리성을 언급하면서 “CAD-CAM 대신에 우리는 CAS-CAR(Computer Aid Selection & Computer Aid Reproduction)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CAS-CAR 소프트웨어로 우선 애완 동물의 색 배합과 행동을 프로그램화하고 그 프로그램을 인공수정 실험소에 보낼 것이다. 12주 뒤에 애완 동물이 태어나고 그 동물의 품질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보장할 것이다.”라고 한 강연회에서 발언을 했다가 청중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비난에 담긴 내용을 이해한다. 이 주제에 관한 그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후손들이 개와 고양이를 설계할 수 있다면, 다음 단계에는 자신들의 아이를 설계하기 위해 CAS-CAR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후손들은 그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그 결과에 대해 주의 깊게 생각해야만 한다.”

책의 서두 부분에 등장하는 다음 두 문장은 이 책이 시대를 지나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도 종교의 힘에 버금가는 힘을 얻었을 때, 때때로 잔인하고 타락했다.” 그리고, “과학과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 가운데 하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앞서 언급한 유전공학 기술과 이미 90년 말에 도래하기 시작한 정보화시대, 그리고 신경공학이 미래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 보고 있다. 그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아래의 인용구로 압축된다:

“과학의 발전이 부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불평등을 강화하거나 또는 더 직접적으로 인간 삶의 파멸을 촉진시킨다면, 그 과학은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하디’라는 유명한 수학자의 말을 인용한 위 문장은, 읽는 순간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로 이상하다. 그러나 다이슨은 과학기술의 중립성을 언급한다. 핵분열의 발견과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폭탄’과 ‘에너지 생산’의 양 갈래 길을 제시한다.

하디의 인용구는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주제이다. 다이슨은 과학이 초래할 악의 근원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든다. 이 책이 발간된 지 약 30년이 지난 요즘에는 새로운 과학기술, AI가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우리 직역 역시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얘기는 멀게 느껴지지만 가히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유전자 가위만큼이나 섬뜩하다.
 


다이슨이 경계하는 것은 이렇듯 과학기술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심화시키고, 급기야 DNA 구성까지 차이를 지게 하며, 과학기술로 인해 생계를 유지할 기회가 줄어들고 박탈된다면 과학이 이끈 변화가 오히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회적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 역시 이와 같은 과학과 윤리의 간극에 관해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해 결국 윤리적 진보만이 과학의 발달로 야기된 폐해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하나, 과학자의 입장에서 다이슨은 ‘오히려 윤리가 과학의 시녀가 되어 유전공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인위적 개선을 정당화한 윤리적 기초를 찾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는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윤리적 진보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저자가 말미에서 언급하는 윤리적 진보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다이슨의 결론이 어떤 것이든 이 책은 최근 비약적 발전을 보이는 AI 기술, 유전공학 기술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염두에 두고 아직도 유효한 고민들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책에서, 과학기술 발전은 그 원동력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는데, 나폴레옹식과 톨스토이식이라는 다소 독특한 분류를 통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부분도 상당히 흥미롭다. 평상시에 들추던 책을 벗어나 한 번 다른 길로의 독서 산책을 권해 드린다.

임제혁 변호사
● 법무법인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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