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우리들의 평범한 성장기 <보이후드>

_______2020년도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얼룩진 올 한 해는 유독 집콕하면서 넷플릭스로 시간을 보낸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넷플릭스 마니아가 아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연히 발견한 영화 중 끝까지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어 소개해 볼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40대 중반인 필자의 경우 아직은 나이 드는 것에 무감각한 편이고, 가정과 직장에서 너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터라 정년퇴직만이 내가 살 길이라고 생각하며 세월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이 가는 것을 아쉬워할 것이다. 그러면서 지나간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 우리 인생에서 하루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내 주변 사람들 아니 세계인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번 영화는 이런 뜬금 없는 물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영화이다.

_______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보는 내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한 영화였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 성인이 된 시절 모두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리도 닮은 배우를 캐스팅했을까’하며 신기해 했는데, 나중에 여운이 남아 영화를 검색하면서 보통 영화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스쿨 오브 락>,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2014년작 영화로 6살 소년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12년간의 시간을 실제 시간에 맞게 조금씩 촬영하여 촬영 기간이 무려 12년에 달하는 영화였다. 동시에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본에 따른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인생의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통해 시간들이 모여 우리들 삶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탐구한 작품으로 12년 동안 같은 배우들과 함께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이야기다. 2014년 개봉되어 제64회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하였고, 영화 평점 9.4점을 받아 북미 평가단에게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대부> 등 고전 걸작의 평점을 뛰어넘는 평가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당시 기자, 평론가들 사이에서 평균 평점 9.5점으로 극찬을 받았다.

_______영화 줄거리를 보자. 한 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되어갈까? 여섯 살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와 그의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싱글 맘인 ‘올리비아(패트리시아 아퀘트)’와 미국 텍사스에 살고 있다. 이혼한 아빠인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메이슨’과 ‘사만다’를 데리고 캠핑을 가거나, 야구장에 데려가며 친구처럼 놀아 주곤 하지만 함께 살 형편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엄마의 직장 때문에 자주 낯선 도시로 이사를 다녀야 하는 메이슨은 외로운 나날을 보내며 점차 성장해 간다. 엄마는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한 일념으로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엄마는 거기서 만난 대학 교수이자 이혼남인 빌과 친해지면서 재혼을 한다. 빌의 아이들인 민디, 랜디 남매와 한 가족이 된 메이슨과 사만다는 서로 친형제 이상으로 잘 지내는 사이가 되지만, 가족이 된 지 2, 3년쯤 지났을 무렵 빌이 알코올 중독에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엄마는 결국 메이슨과 사만다를 데리고 도망쳐 나와 다른 지역에서 새 삶을 살기에 이른다. 새로운 곳에서 엄마는 바라던 대학 교수가 되어 생활이 나아지고 주인공 메이슨도 차츰 더 성장하여 여자친구도 사귀고 자신의 진로도 고민하는 사춘기 청소년이 된다. 그러던 중 엄마는 퇴역 군인 출신의 늦깎이 대학생 제자와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되지만,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어렵게 구한 집값이 폭락하자 엄마의 세 번째 남편도 알코올 중독에 걸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결국 둘은 이혼하게 된다. 그 사이 친아버지는 재혼을 하여 자식을 낳았고, 사만다는 대학에 들어갔다. 만 16살이 된 메이슨은 사진에 흥미를 느끼면서 진로를 사진예술로 정하기로 하는데, 아버지의 새 가족과 만난 자리에서 16살 생일을 맞이하여 성경과, 정장, 엽총을 선물 받는다. 또 아버지와 함께 그간의 일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 드디어 만 18세가 되어 메이슨이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 기숙사로 떠나는 날, 어머니는 “자식을 둘 낳아 대학 보내놓고 이제는 죽을 일만 남은 것 같다.”라며 혼자 자식 둘을 키우며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자조 섞인 한탄을 한다. 메이슨은 그런 어머니를 위로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새 룸메이트 닉과 닉의 여자친구 바브, 그리고 그녀의 룸메이트 니콜을 포함해 넷은 근처 산에 하이킹을 가서는 환각성 음료를 나눠먹으며 젊은 대학생 새내기로서 힘껏 부푼 미래를 꿈꾸게 된다. 그러면서 메이슨은 호감을 가지게 된 니콜과 함께 언덕에 앉아 멋진 자연 절경을 바라보며, 니콜이 “지금 이 순간을 잡으라(Seize the moment)”라고 말하자 이에 대해, 반대로 “순간이 지금 우리를 붙잡는다(The moment seizes us)”라는 의미 있는 말을 한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보며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_______결말은 조금 허망하였지만 나중에 메이슨이 남긴 말에서 나는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이 영화는 12년 동안 같은 배우로 영화를 찍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대단하게 다가오는데,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중에서도, 특정한 시기만 다루고 싶지 않았던 감독은 12년의 기간 동안 가상 인물의 어린 시절 전체를 조금씩 촬영하기로 결심한다. 단, 그 12년 동안 캐스팅 배우를 바꾸지 않는 방법으로 말이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영화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주인공 ‘메이슨’을 연기할 소년으로 엘라 콜트레인을 캐스팅했고, 메이슨의 누나 ‘사만다’ 역할은 자신의 친 딸 로렐라이 링클레이터에게 맡겼다. 배우 패트리샤 아퀘트가 아이들의 엄마 ‘올리비아’ 역할을, 감독과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을 함께한 에단 호크도 아빠로 참여했다. 이들은 2002년부터 12년 동안 매년 여름마다 함께 모여서 15분 분량의 장면을 찍으며 하나의 영화를 완성해 나갔다. 그 시간 동안 세상은 계속해서 변해갔고, 각 시기를 상징하는 아이템들이 영화 속에 하나하나 담기게 된다.
 


어린 메이슨은 소니 TV를 통해 일본 만화영화 드래곤볼 애니메이션을 보고, 엄마는 아이들이 자기 전에『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을 읽어준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은 어느새 해리 포터 시리즈 6편『혼혈왕자』 출간 기념 프로모션에 참석하기도 한다. 또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던 아빠는 시간이 지나 오바마의 선거 운동을 자발적으로 돕고 이 선거운동에 어린 메이슨과 사만다를 동원하기도 하는데, 영화 속에서 상대 후보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몰래 뽑고 거기에 오바마 팻말로 교체하도록 시키는 장면이 무척 재밌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매년 몰라보게 자랐다. 영화 속 메이슨과 사만다는 물론이고, 영화 바깥의 실제 엘라 콜트레인과 로렐라이 링클레이터도 그랬다. 두 주인공들은 영화 속 메이슨과 사만다와 함께 자랐을 것이다. 영화 초반, 놀고먹고 자는 것만으로 바쁘던 아이들은 어느새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어른이 되어 간다.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도 나이를 먹었다. 청춘 배우였던 에단 호크와 패트리샤 아퀘트는 12년이 흘러 중년 배우가 된 것이다(참고로 멋쟁이 에단호크는 12년 동안 많이 늙지도 않았다).
 


<보이후드>는 러닝타임 165분 사이에 12년의 시간을 담는다. 그러면서 별다른 극적인 사건은 거의 없고(있다면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3번씩이나 이혼한 엄마의 이혼사건들이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인 듯하지만, 대다수 미국 아이들이 그렇듯이 부모의 이혼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담담하게 넘긴다), 그저 담담히 그들의 주변 일상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에단 호크가 12년간의 영화 촬영 소감을 인터뷰한 글이 특히 마음에 다가온다. “우리 일상에도 깊은 감명을 주는 몇몇 순간들이 있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오랜 시간과 수천, 수만 가지 평범한 일상들이 없다면 그 한순간은 결코 특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시간’을 경험하게 해 준다.”

우리가 지금도 보내고 있는 1년 365일(8760시간, 525600분, 31536000초)은 작고 사소한 일상이 모여 이루어진다. 뒤돌아보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그 와중에 사람들과의 크고 작은 교류 속에 어느 특정한 시간이 강렬하게 남을 것이다. 영화 <보이후드>는 주인공 메이슨과 그 주변 사람들의 ‘시간’을 통해 결국 우리들의 짧지만, 긴 인생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임을 잔잔하게 말없이 확인해 준다.

성중탁 교수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성중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