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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_명가, 소피스트 그리고 변호사 / 김상정
 
한 예로, 차량 운전자가 야간에 불법주차되어 있던 차량을 미처 보지 못하고 그 차량의 후미를 추돌하는 사고들은 종종 발생하고, 이러한 경우 선처리 보험회사가 보험사고를 일괄적으로 모두 처리한 후 불법주차 차량 과실을 20∼30% 정도로 산정하여 해당 보험회사에 구상금으로 청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러나 불법주차 차량 운전자가 과실이 없다고 주장하면 부득이하게 소송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경우 대리하는 보험회사가 불법주차 차량을 부보(附保)하는 경우에는 불법주차와 교통사고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부존재한다고 주장하거나 상대방 운전자의 과실이 100%라고 주장하지만, 후미추돌 차량을 부보하는 경우에는 불법주차와 교통사고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예들은 비단 구상금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변호사가 항상 원고 또는 피고만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겠다.
 
 
중국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대부까지 올랐던 등석(鄧析)은 제자백가 중의 하나인 ‘명가(名家)’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이위편(離謂篇)에는 등석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유강에 물이 불어 정나라의 어떤 부자(富者)가 급류에 휘말려 빠져 죽는 일이 발생했다. 유족들이 시체를 찾지 못하였으나, 한 사공이 강 하류에서 부자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공은 시체의 화려한 옷과 장신구들을 보고서 큰 부자임을 직감하였고, 많은 보상을 받고자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유족들과 그 식솔들은 시체를 찾기 위해 난리가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자의 집에서 보낸 사람들이 시체를 건진 사공을 만나게 되었다. 사공은 지나치게 많은 금은보화를 요구했다. 유족들은 협상을 시도해 보았으나 막무가내였다. 유족들은 상의 끝에 하인을 시켜 등석을 찾아가서 조언을 듣기로 했다.  
 
 
"선생님, 저희 주인님께서 물에 빠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시체를 물에서 건진 사공은 그 대가로 엄청난 금은보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기다리시게나. 그 사공이 당신 주인의 시체를 팔 수 있는 곳은 당신네 주인집뿐이지 않소이까. 기다리면 사공이 알아서 값을 내릴 것이외다."
 
"마냥 기다리면 시체가 계속 부패할 텐데요."
 
"그러니 기다리시라 하는 것이네. 시체가 부패하면 할수록 시체의 값이 내려갈 거니까."
 
 
 
이런 얘기를 전해들은 유족들은 등석의 조언대로 별다른 협상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자 사공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에는 사공 쪽에서 등석을 찾아갔다.
 
 
 
"선생님, 제가 어떤 부자의 시체를 건졌는데, 유족들에게 좀 많은 돈을 요구했더니 아예 시체를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다리시게. 그 유족들이 시체를 찾아서 장례를 치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러려면 자네에게서 시체를 찾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러니 기다리면 값이 올라갈 것이오."
 
"그냥 두면 시체가 부패할 텐데요."
 
"그럴수록 기다리면 되는 것이오. 시체가 부패할수록 급해지는 건 그 유족들일 테니 자네는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될 거네."
 
 

 

 
등석에 대한 일화는 여기까지이고, 위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위 일화가 명가 사상가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글들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만 보더라도, 등석의 위와 같은 논리는 말이 안 되는 주장, 즉 궤변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는 모양이다. 등석은 변론이나 조언을 해 주면서 그 대가를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위 일화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등석은 조언의 대가 명목으로 유족들과 사공으로부터 각각 금전적인 이득을 취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등석의 위 일화는 더 부정적으로 취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명가의 사상가들과 유사한 경향의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에도 있었다. 진리의 상대성을 근거로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변론술을 연구하던 소피스트(Sophist)라고 불렸던 교사 집단의 철학자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명가의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소피스트의 철학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궤변가(詭辯家)’라고 비판받은 이후 근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철학역사에서조차 제외되는 취급을 받아 왔고, ‘Sophist’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궤변론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맹렬히 비판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명가의 사상가와 소피스트의 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변론에 능숙하였고, 그러한 변론방법이 타인으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의구심만 불러일으킨다고 하여 다른 사상가들 내지 철학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 왔다. 아마도 지나치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변호사의 가장 고유한 업무영역은 소송대리업무, 즉 송무(訟務)일 것이고, 송무의 중심은 바로 변론이라고 할 것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대리하여 송무를 하면서 ‘크게 이기기 위해서, 또는 적게 지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피해자를 대리하여 가해자의 책임을 추궁할 때도 있고 가해자를 대리하여 정당한 책임범위를 다툴 때도 있어 같은 현상에 대해서 상반되는 주장들을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변호사는 법령과 판례, 하다못해 신의칙에 근거한 “변호사다운” 서면이나 구두변론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할 것이고, 근거를 제시함이 없이 단순한 임기응변에만 능하게 되면 명가나 소피스트와 같이 ‘말만 번지르르하게만 할 줄 아는’ 궤변론자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명가나 소피스트에 대한 세상의 비판적인 시각은 변호사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본인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송대리인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줄 의무까지 부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본인소송이 발생하게 된다. 변호사가 이러한 본인소송의 상대방 소송대리인으로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본인은 무엇을 어떻게 주장?입증해야 하는지 몰라 무턱대고 억울함만 호소하고, 그러다 보니 변론기일이 공전(空轉)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변호사가 진행하는 소송은 본인소송에 비하여 서면이든 구두변론이든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확한 근거 없이 막연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은 곧 변호사로서 기본적인 소양 자체가 아직은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러한 변호사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필자 역시 그러한 부류의 변호사에 해당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극소수의 변호사들로 인하여 우리네 변호사들 전체가 명가나 소피스트처럼 궤변론자의 집단, 또는 ‘일은 제대로 안 하면서 돈만 밝히는 집단’으로 취급되어 맹비난을 받을 수도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변호사는 변호사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변호사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가 변호사일 수 있는 것이고, 일반인들도 변호사를 변호사로 대우해 주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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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정 변호사 
사법시험 제50회(연수원 40기)
법무법인 인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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