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법정풍경
보이는 대로 쓰고 계신가요

 

“보이는 대로 쓰면 된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가 해준 얘기를 최근 한 판사를 통해 들었습니다. 공판에 현출된 증거들에 의해서만 사건을 판단한다는 뜻이겠지요. 법정 밖에서 국민을 재판관으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하는 기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입니다. 독자에게는 저희가 쓰는 기사가 공소장이 되고, 때론 변론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사를 정리할 때 책임감은 기자 10년 차인 지금도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변호사가 변론요지를 쓸 때 느끼는 부담감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담과 조사로 얻은 정보를 법리에 맞춰 재구성할 때 보이는 대로 쓰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쓴 대로 보이게 하는 것이 맞는지 헷갈릴 것도 같습니다. 2020년 마지막 ‘법정 풍경’을 빌려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많은 기자와 변호사가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은 문제를 던져봅니다.

거액의 펀드 사기사건과 관련 기록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언급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펀드 불법 운용 사실이 확인돼 판매사로부터 고발당할 위기에 처하자, 운용사 대표는 참모와 비밀공간에서 대응 전략을 논의합니다. 자기 대신 죄를 자백하기로 결심한 참모가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는 시간과 형량을 얼추 계산해 보고하자, 대표는 어디서 들었는지 특별사면 가능성까지 거론합니다.

운용사 대표의 말입니다. “A 변호사가 이야기하기론 검찰 기소 단계에서 돈을 얼마를 쓰든 줄여야 한다. 1심에서 줄이고 2심에서 줄이고…”, “A 변호사는 ‘절대 구속 안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A 변호사가 잡은 포인트는 배임횡령은 자산가치를 채워나가 지우고 시간 끌어 주는 거…”

복잡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이들이 세웠던 계획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펀드를 모집할 때 원래 투자하기로 한 곳이 아닌 엉뚱한 사모사채에 투자했습니다. 펀드 환매 요청이 들어오면 사채를 동원하거나 다른 펀드 자금으로 메꾸는 ‘펀드 돌려막기’를 해서 문제가 터진 것입니다.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일부 사업들에서 자금을 확보해 피해 금액을 최소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형량을 줄여 나가자는 얘기입니다.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피해자이자 고발인이 될 수도 있는 판매사와 ‘모종의 합의’가 필요한 상황. 이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은 B 변호사였습니다. 운용사 대표는 “판매사와의 관계가 되게 중요하다. B변호사가 판매사를 설득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계획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구속될 리 없다고 호언했던 변호사 말과 달리 운용사 대표와 참모는 구속됐고, 참모는 대표와 모의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대표가 구속되기 전 두 달간 쓴 변호사 비용이 무려 10억 원에 달한다는 게 참모의 주장입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른바 ‘주범 바꿔치기’ 시나리오에 B 변호사가 개입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자신이 대표의 ‘대역’을 맡아 대신 죄를 덮어쓰기로 했다는 참모의 말이 사실이라면 수사기관이나 피해자가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변호사들이 관여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솔직히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권력이 아닌 약자 편에서 일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기자에게 힌트를 주는 변호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약자에 누명을 씌워 책임을 회피하려는 권력자의 제안에는 타협하지 않는 ‘어 퓨 굿맨’이 제 머릿속 변호사 상이니까요.

그러다 요즘 변호사와 기자가 주인공인 한 드라마에 눈길이 갔습니다. 변호사가 기자에게 “정의로 돈을 벌자”라며 기자, 변호사, 장의사의 공통점을 얘기합니다. 모두 타인이 불행해야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겁니다. 기분은 찜찜했지만 달리 변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특히 법조 출입을 하면서 인터뷰나 미담, 기획 기사보다 드라마 속 변호사가 한 얘기처럼 ‘(누군가) 죽고 다치고 사건사고가 나고 분쟁이 터져야’ 썼던 기사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변호사는 장의사 아버지가 남긴 말인 ‘남들 불행으로 먹고 살수록 정성을 다혀야 혀’라는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약자를 외면하지 않습니다(물론 변호사는 피해자뿐 아니라 피의자나 피고인을 위해서도 존재해야 합니다).

모두 보이는 대로 쓰고 계신가요? 그런데 혹시 바라보는 방향에 의뢰인만 있고 진실은 없거나, 누군가 들려주는 얘기만으로 사실을 재구성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이 약자가 아닌 강자라면, 피해자의 눈물은 의식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자의 직업에 처음 입문할 때 품었던 마음, ‘사명과 책임’을 다시 떠올려야 하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동진 동아일보 기자

신동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