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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재생한 23분의 동영상


2020. 9. 10. 서울행정법원은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를 보던 중 조현병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고 임세원 교수님에 대한 의사자 인정 거부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유족께서는 “어린 두 아들이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가슴에 새길 수 있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소송대리인에게 전했다.

1년 전, 소장을 접수했을 당시 뉴스에서는 “도망가!”라고 외친 정도로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댓글 중에는 ‘슬프다고 의사자 지정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내용도 있었다.

소송의 출발부터 편견과 싸워야 했다. 편견과 싸워 이기는 방법이 무엇일까... 당시 고인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이를 법원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18. 12. 31. 임세원 교수님이 강북삼성병원에서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에서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CCTV 동영상의 재생시간은 단 11초였지만, 그 11초 안에 담긴 교수님의 모습은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매우 다양하고 복잡했다. 몇 번이고 CCTV 동영상을 돌려 보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모습들이 있었다. 고인이 되신 피해자께 왜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런 행동을 하셔야만 했는지 물을 수 없었기에 의문을 풀 길은 많지 않았다.

의문을 풀기 위해 사건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고인께서 왜 그 11초 동안 전속으로 달려 도망가지 않았던 것인지, 왜 멈춰 서서 어디론가 손짓행위를 해야만 했던 것인지, 왜 그쪽으로 달려가야만 했는지 등 풀지 못한 숙제들을 안고 사건 현장에 찾아갔다.

사건 현장에는 많은 것들이 눈에 보였다. 1,200쪽이 넘는 살인사건 형사기록에 나타나지 않던 병원과 내부 진료실의 구조, CCTV 동영상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현장에서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고인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었던 다른 방식의 대처, 즉 쉽게 범죄행위로부터 벗어나 탈출할 수 있었던 다양한 경우의 수를 알 수 있었다. 소송대리인으로서는 이를 염두에 둔 채 사건을 재연하고자 하였고, 비로소 교수님께서 왜 쉽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을 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고인은 11초의 CCTV 동영상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던 다른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들에게 대피 지시를 하면서, 적어도 3초 동안 자신 스스로 위험을 회피하거나 생명에 대한 위협을 감소시키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해가 가중되는 것을 무릅쓰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실제 존재하는 사실관계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1분짜리 단신에 담긴 내용보다 더 풍부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편견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이 내용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여러 방안을 고민한 끝에 ‘비교 동영상’을 촬영하여 제출하기로 마음먹었다. ▲ 고인이 CCTV에서 보인 장면을 그대로 재연하는 동영상과, ▲ 고인이 타인에게 위해를 알리지 않은 채 자신만 살기로 마음먹고 그대로 전속력으로 외부로 탈출하는 가상의 대안 동영상을 촬영하여, 재판부가 이를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결과는 효과적이었다. 제3회 변론기일에서, 재판장께서는 촬영한 동영상을 법정에서 직접 재생하자고 하셨다. 23분의 동영상에는 기존 CCTV 동영상 증거, 형사기록 등에서는 알 수 없었던 병원의 구조, 진료실 구조, 비상 탈출 루트,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비교 동영상이 모두 담겨 있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동영상을 끝까지 시청하신 재판부께서는 “현장검증보다도 더 생생한 동영상 증거를 잘 보았다”라고 언급하셨고, 판결문에는 비교 동영상을 설명하는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인용될 수 있었다.

소송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편견과 싸워서 이기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소송대리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싸움은 재판에서 정확한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법정에서 재생하였던 23분의 동영상을 통해 사회에 임세원 교수님의 고결한 희생정신을 알릴 수 있어, 그리고 재판에서 이를 인정받게 되어 소송대리인으로서 감사하고, 감사했다.

김민후 변호사
● 법무법인(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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