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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여동진 대표 인터뷰


Q. 간판은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건네는 첫인사입니다. 이번 12월호 인물 탐방에는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다가 간판으로 월 매출 8억 원을 올리고 TV, 인터넷, 유튜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주식회사 플레져 여동진 대표님을 모셨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플레져의 리더를 맡고 있는 여동진입니다. 저희 플레져는 인테리어/익스테리어/디자인간판/유튜브/틱톡 등을 하는 버라이어티 회사입니다.

우선 메인 업무는 인테리어와 간판이고요. 재미 삼아 찍었던 영상들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어서 웹드라마라는 장르로 유튜브랑 틱톡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저도 유튜브를 통해서 ‘서민갑부’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는데요, 색다른 간판 제작으로 이미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모두 유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색적인 간판 제작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친구에게 선물해 준 간판으로 시작된 사업이었어요. 그때는 돈도 없었고 ‘친구에게 개업 선물로 뭘 줄 수 있을까, 내 능력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 하다가 ‘간판이라는 것을 만들어주자’라는 생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선물을 주게 되었던 것이 소개를 받고 또 소개를 받게 되면서 사업이 되었습니다.

Q. 광고대행사를 하다가 접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 간판을 시작하실 때까지 꽤 공백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간판이라는 약간은 진부해 보이는 아이템에 도전하게 된 과정을 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공백기는 없었어요(웃음). 광고대행사를 개업했다가 수주는 없고, 직원들은 하나씩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저 혼자 남아 있었던 때였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돈도 없었고 빚만 있었던 상태에서 개업하는 친구에게 선물할 수 있는 건 정성 들여 만든 간판뿐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제 눈에 간판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왜 다 똑같은 간판들뿐일까? 업종들이 다 다르고 인테리어도 다 다른데 간판은 왜 다 똑같아야 할까? 내가 만드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간판을 만들어 보자’ 라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철제로 만든 철 부식이 된 간판을 만들어 보자며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씩 유명해졌어요. 사실 제가 간판을 만들어 드린 곳이 유명해지면서 저도 덩달아 유명해진 케이스인 것도 없지 않습니다(웃음).

우연히 제가 만들어 드린 곳들이 핫플레이스가 되었고,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 사람들이 찍어 올려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Q. 현재 플레져의 월 매출이 10억을 넘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간판 제작으로 이 정도의 월 매출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떤 비결이 있으신 건지요?

비결이라기보다도 저희는 첫째를 신의, 두 번째로는 신뢰, 세 번째는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신의가 없고, 신뢰성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저희 회사의 사훈이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사람은 저희 회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회사 사람들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클라이언트에게도 해당됩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저희의 이런 코드와 맞지 않으면 정중하게 거절을 합니다. 매출액을 점차 늘려가려고 매년 목표를 수정하며 성장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런 사고가 매출 향상에 기여가 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Q. 지금은 간판에서 시작한 것이 실외 조형물, 인테리어 영역까지 사업이 확장되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하실 계획이신지요?

저희 플레져 그룹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고 하잖아요(웃음). 연 매출 300억이 되어서 코스닥시장에 상장사도 되고 싶고요. 지금은 미국에 플레져 USA를 오픈했지만, 중국에서도 플레져 CHINA를 개업해서 중국 시장에 먼저 진출하고 싶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수익을 돈으로 가져오지 않고 물건으로 교환하여, 한국으로 수입해서 플레져 마켓을 만들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팔 수 있는 사업도 하고 싶습니다. 또 저희가 만들어 드린 유명한 요식업 프랜차이즈들도 많은데, ‘플레져 푸드’라고 하여 요식업 브랜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너무 많은데, 그러기엔 아직은 인원이 부족하여 천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Q. 플레져에서 간판 제작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요?

간판으로 얘기하자면, 청와대 현판을 저희가 제작하였고요, 전 세계로 수출하는 한글을 가르치는 세종학당 간판을 저희가 만들어서 전 세계 학당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인천관광공사 로고도 저희가 제작하였고요. 유한양행, SBS, 조선일보, 롯데, 메가박스, 에버랜드, 신라호텔 등 대기업들을 비롯하여 8년 동안 3천 개 정도의 간판을 제작하고 달았던 것 같습니다. 모두 다 기억에 남습니다.

Q. 실례가 안 된다면 현재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을 텐데, 이런 도전을 하고 성공을 하기까지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실패담이나 성공담을 들려주신다면요?

81년생 41살입니다. 저는 첫 사업을 군대 제대 후 3백만원으로 트럭만 사서 제가 직접 다 만들어 파는 푸드트럭을 25살에 시작하였습니다. 장사가 안 된 것은 아니지만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고, 그 이후 스포츠마케팅이라는 것을 해 보기 위해서 강원랜드를 지점으로 스키캠프, 워크샵, 고등학교 수학여행 등을 기획하는 회사도 했었는데, 제법 매출은 좋았지만 향후 스포츠시장이 성장보다는 침체할 것 같아 다른 일을 찾아보던 중 광고대행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광고대행사에서 대기업들과 일을 하면서 디자인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고, 새로운 걸 만든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성취감도 높았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다가 이제는 ‘내가 광고대행사를 차려보자’라며 시작하였는데 영업실력 부족으로 매출이 저조해 망했죠(웃음).

침체기에 우연히 손을 댄 간판 만들기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업계에서도 주로 간판재료로 쓰는 플라스틱이 아닌 부식 시킨 철이나 조개껍질, 구슬 등 새로운 소재로 제작한 저의 간판이 신선했었나 봅니다.

Q. 대표님의 현재 목표는 어떤 것인가요?

제가 처음 간판으로 시작해서 인테리어에 손을 대기 시작할 때 첫 번째 목표가 연 매출 100억이었거든요. 이제 첫 번째 목표는 달성했고, 이다음 목표는 월 매출 300억이 되어서 자인 회사로서는 국내 두 번째로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 큰 목표는 ‘저희 회사를 탄탄하고 멋진 회사로 만들어 보자’라는 것이고요. 돈도 잘 벌고 일하는 재미도 있고 우리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런 회사를 직원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자는 것’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성공하잖아요. 저희도 간판을 아름답게 바꾸고 싶어 하는 욕구를 발전시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 싶습니다.

Q. 요즈음 변호사시장이 예전에 비해 꽤 어려워진 건 알고 계실 니다. 변호사로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는 저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님들에게 대표님의 스토리가 자극과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회원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도 최근에는 변호사 사무실 간판 제작을 몇 건 하면서 호사님들의 세계를 살짝 엿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변호사’ 하면 예전에는 아주 멋진 직업, 남을 대변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주로 있었는데, 지금은 변호사님들이 아져서 그런 건지 일반적인 회사원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이쪽 업무는 전혀 모르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해도 된다면, 아무리 포화상태라도 일이 몰리는 곳은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승소율이 높다든지 정말 친절하다든지...의뢰인들이 법적인 지식은 없을지라도 사람이 눈치라는 게 있잖아요. 변호사에게 을 맡겨 보았던 사람들이 ‘이 변호사님이 정말 나에게 신경써 주는구나’, ‘또 찾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자신에게 른 일이 생겼을 때 또 다시 찾는다거나, 아니면 다른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소개를 해 주는 선순환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변호사 사무실은 대부분 분위기가 딱딱한 것 같은데, 카페 같은 변호사 사무실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정관념과 틀을 깨는 사고를 가지신 변호사님과 작업을 함께 해 보고 싶습니다(웃음).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님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 인터뷰/정리 : 심형훈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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