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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의 환상인가 스토커의 망상인가 :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Lawmantic Classic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그 이름만 들어보면 요정들의 노래가 가득한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곡일 것 같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작곡가의 정신세계가 몹시 궁금해진다.

환상 교향곡은 총 5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악장 꿈과 열정(Reveries Passions)에서는 어느 젊은 예술가의 외로움과 짝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상념이 그려지다가, 2악장 무도회(Un bal)에 들어서서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설렘이 절절하게 넘쳐흐른다. 그리고 3악장 전원풍경(Scene aux Champs)에서는 사랑에 빠진 젊은 예술가의 마음과 불안이 교차하는 선율이 가득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4악장부터 상상치도 못할 스토리로 치닫는데, 4악장은 제목부터 ‘단두대의 행진(La marche au supplice)’이다. 젊은 예술가는 연인으로부터 거절당하고 아편으로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치사량에 못 미쳐 죽지는 못하고 약에 취해 환상을 보게 된다(즉, 환상 교향곡에서의 ‘환상’은 일명 남자주인공이 아편으로 “뿅 간”상태에서 보는 기괴한 이야기였던 것). 환상 속에서 젊은 예술가가 짝사랑하던 여성이 어장관리하는 모습에 분개하여 그녀를 살해하고 단두대에서 사형당한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인 5악장 마녀들의 밤의 향연의 꿈(Songe d’une nuit du Sabbat-Ronde du Sabbat)에서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어 죽은 젊은 예술가의 장례식에 악마와 마녀들이 다 함께 춤을 추며 광기 어린 파티를 벌이는 모습이 그려지며 이 교향곡은 끝을 맺는다.

끝내 환상 교향곡은, 한 젊은 예술가가 짝사랑에 실패해서 아편을 먹고 사랑하던 여자를 죽이고 자신도 단두대에서 사형당한 뒤에 그 타락한 영혼이 마녀들의 손에 떨어지는 환상을 보았다는 의미에서 ‘환상’ 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꼴이다.
 


베를리오즈....도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베를리오즈는 그가 20대 무명 작곡가 시절 오필리어와 줄리엣을 연기하던 인기 절정의 여배우 헤리엇 스미드슨이라는 여배우에게 푹 빠지고 마는데 그는 사생팬을 넘어 스토커처럼 그녀를 쫓아다녔다. 베를리오즈는 그녀에게 열정적으로 편지 공세를 펼쳤음은 물론,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빚을 내어 대연주회를 감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베를리오즈 따위는 알아채지 못했다.

베를리오즈는 헤리엇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자 종종 머리를 쥐어뜯고 풀밭을 뒹굴기도 하고 갑자기 잠적을 하는 등 해괴한 짓을 하여 멘델스존, 쇼팽과 같은 친구들을 걱정시켰음은 물론, 헤리엇 스미드슨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다른 남자배우의 품에 안기면 공연장에서 소리를 지르는 등 실성한 사람처럼 굴었고, 이에 헤리엇은 하인들에게 그의 편지를 전달하지 말라고까지 하였다고 한다. 베를리오즈가 광기나 다름없는 짝사랑의 열기에 취해 헤리엇을 찬양하며 스토킹하던 시기에 작곡한 부분이 환상 교향곡의 1악장부터 3악장이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풍문으로 자신의 여자친구도 아닌 헤리엇이 다른 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뒤 분노에 가득 차서는 환상 교향곡의 4악장과 5악장에서 여주인공이 살해되도록 스토리를 꾸미고, 남자주인공의 영혼을 마녀의 손에 떨어뜨려 버린다.

베를리오즈가 한 짓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스토커가 된 과대망상가 사생팬이 자신이 좋아하던 연예인이 열애설이 났다는 이유로 그 연예인을 마녀에 빗대며 처참히 살해당하는 스토리의 팬픽을 써서 온갖 게시판에 게재하며 낭독회까지 여는 꼴이다.

만약 현대사회였다면 베를리오즈는 높은 확률로 경찰에 신고되어 최소한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라도 처벌받고 접근금지가처분도 당했겠지만, 짝사랑을 빙자한 스토킹 범죄에 한없이 관대하던 과거의 한 여배우는스토커의 범행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환상 교향곡’은 베를리오즈의 짝사랑 실패 경험을 ‘승화’한 아름다운 낭만시대의 작품이라고 쉽게 평가하지만, 베를리오즈의 광기 어린 스토킹 스토리를 알고 듣는다면 환상 교향곡은 이미 그로테스크했던 4악장과 5악장보다도 1악장부터 3악장을 아름답게만 들을 수 없게 된다.

베를리오즈의 이러한 광기 어린 연애사를 오늘 처음 알게 된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다시 한 번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늘은 젊은 예술가의 혼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5악장에서 울리는 장례식 종소리가 스토킹의 피해자 헤리엇이 스토킹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종소리로 들릴지도 모르니까.

박선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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