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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 있어서의 적절한 거리두기


변호사 연수교육에서 선배변호사님으로부터 “증명책임에 관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판사님의 고개가 이쪽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할 때, 그 시선을 따라가다 머문 쪽을 바라 봐라. 일종의 핑퐁게임과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심판을 보는 판사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라는 취지였습니다.

사건 수임부터 진행, 그리고 질문에 실시간 대응해야 하는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졌던 재판을 ‘게임에 비유하시다니, 저런 것이 내공인가’했던 경외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이후로도 재판을 갈 때마다 판사님의 시선처리를 쫓으며 흡사 신성한 경기를 대하는 관중의 마음을 갖게 되고, 판사님은 매우 엄중한 심판처럼 보이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끔 판사님이 심판 아닌 공격수가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하심을 목도하게 되기도 합니다.

지방사건의 첫 기일이었습니다. 그 재판부는 행정사건을 다루는 합의부였는데, 재판장님은 시작할 때 원고석에 한 번, 그다음엔 우측의 전자소송 화면에 한 번, 다시 원고석을 향하여 한 번, 마지막엔 좌측 달력 쪽에 한 번, 마지막엔 “이만 마칩니다. 다음 사건은 ~”을 반복하셨습니다.

행정재판의 특성상 원피고가 대립되어 있더라도 대개 피고가 큰 기관인 경우가 많아 양측의 날선 공방이 오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법대에 설치된 투명 가림막과 판사님들의 마스크 때문인지 아니면 비슷한 진행이 반복되기에 재판이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는 생각이 든 것인지, 그날따라 유난히 재판장님은 경기의 심판 아닌 공격수인 것처럼 시선처리며 질문이나 지적을 인상 깊게 적재적소에 꽂아 넣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피고석의 소송수행자는 서 있다가 앉고 다시 일어서 몇 걸음 떼어 방청석에 들러 주섬주섬 기록을 바꿔들고 피고석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판사님의 현란한 공격을 더 돋보이게 해 주는 팀플레이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치 판사님과 피고의 팀플레이에 당해내지 못하는 원고석의 선수들이 줄줄이 갈아치워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는데, 슬슬 제 사건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팀플레이의 흐름을 깬 건 제 사건이 진행되기 20분 전쯤 진행된 사건의 당사자, 백발의 할아버지셨습니다.

이전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판사님께서 전자소송 화면을 보고 설명한 후 원고석의 그 할아버지를 쳐다보자, 할아버지는 작정하고 단독플레이를 시작하셨습니다.

내용을 들어 보니, 할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기관의 처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는데, 두괄식으로 “피고가 잘못했는데, 왜 나에게만 질문을 하느냐, 이게 재판이냐”로 화두를 던지신 후 “내가 6·25에 참전하고 와서~”부터 읊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법정 안의 관중, 아니 방청석의 사람들은 제각각 동상이몽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우선 ‘아, 내 사건 언제 시작하지...’의 심정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재판장님은 경기, 아니 재판의 흐름이 깨진 것이 적잖이 안타까우신 것에 더해 드리블하던 공이라도 뺏긴 것처럼 탄식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이고 아부지...”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시대에 굳이 한가지 좋은 점을 떠올려 본다면 마스크 속에선 다소 편안한 표정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 순간에 재판장님의 탄식은 마스크를 넘어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습니다. 그걸 듣고 어렴풋이 관중의 마인드에서 곧 원고석에 들어설 선수의 마음으로 바뀌었던 것도 뒤늦게 고백합니다.

피고 소송수행자 역시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니, 아부지라니... 기피신청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피고 소송수행자의 목소리도 연달아 마스크를 넘었습니다. “재판장니임!”

‘이것은 법정에서의 스포츠였다가 예능인 것인가,이 분위기 어쩔거야’라는 생각을 하던 중 재판장님의 다소 상기된 대사가 이어졌습니다. “마스크 벗으시면 안 됩니다!” 재판장님의 이전까지의 세련된 공격과 달리 마음의 소리에 이은 격앙된 경고에 백발의 할아버지는 머쓱해지셨는지 한 마디를 더 던지셨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얘기하면 내 얘기도 들어줄까 해서...”

그 순간에도 바로 다음 사건이 제 사건이 아니었음을 다행스럽게 여겼던 것도 뒤늦게 고백합니다. 기분 탓인지 제 사건의 진행에서는 이전 사건들에서 있었던 리드미컬한 재판장님의 플레이는 볼 수 없었습니다.

법정을 나서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다른 사건을 엿보며 방청석에 자리한다 하더라도 그 마음가짐이 내 사건에까지 이어지면 안 된다는 것, 재판부에 대한 존경심과 법정에서의 겸손하고 점잖은 마음가짐이 기본 소양이기는 하나 당사자의 진정성에 버금가는 공격성(?)을 갖추지 않으면, 언제든 관중으로 전락하여 심판인 재판장님의 현란한 플레이를 구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 등등이 그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화두인 지금, 변호사인 저는 한 발자국 더 가까이, 재판장님은 원래의 자리에 적절히, 각자의 자리에 맞게끔 있는지 매의 눈으로 다시금 돌아봐야겠습니다.
 

오지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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