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 나의 첫 인연은 1999년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한국지부에서 개최한 인권캠프에서다. 임 소장은 1997년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창립하였고, 2003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내에 성적 소수자 그룹을 만들었으며, 당시 인권캠프에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강의를 하러 왔다. 그의 거침없는 언변과 행보는 매력적이면서도 나의 고정관념과 부딪히는 부분도 있었다. 2000년 연예인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이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문제로 대두되면서 그와 더 가까워졌다. 그 당시 임 소장은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을 결성하였고, 임 소장과 함께 매우 힘들어 하던 홍석천 씨를 위로하고자 송두환 변호사님과 함께 홍석천 씨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후 한동안 사는 것이 바빠 임 소장을 보지 못한 사이 그는 동성애 성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과 동성애를 성적 선호도 장애로 분류하고 있는 징병 신체검사기준 등 동성애 차별을 이유로 병역거부를 하여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생활도 했고, 2009년 군인권센터를 설립하여 군인권 관련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고시생에서 변호사로 신분의 변화가 있었지만, 최초 내가 꿈꾸던 변호사가 되지는 못하였다는 부끄러움과 부채의식이 크다. 그래서 후원회원 가입도 했고, 자주는 어렵지만 가끔 만나 밥을 산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좋은 것은 임 소장도 많이 유연해지고 내가 임 소장에게 하는 구박과 돌직구 발언,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진심을 알기에 받아 줄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최근 윤일병 사건 이후 임소장은 500통이 넘는 문자를 제대로 확인도 못 할 정도로 바쁜 중에 추석 연휴 기간을 틈타 만날 수 있었고, 이하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Q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산 윤일병 사망 사건으로 군인권센터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윤일병 사건은 처음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요?
A 당시 저희 센터에서는 상관의 성추행 및 가혹행위로 고통받다 자살한 여군 오대위 사건을 지원하여 가해자 1심 재판을 진행하던 중 냉동만두를 먹다 사망하였다는 단신으로 보도된 윤일병 사건을 처음 접하고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그 직후 세월호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이에 대해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가 7월 초에 이 사건을 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공판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공소장을 입수하게 되었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Q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사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군인권센터가 어떻게 수사기록을 입수하고 공개하게 된 것인가요? 이러한 군인권센터의 행위가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일부 군법무관들을 비롯한 우려 및 비판의견도 존재합니다.
A 공판기록 열람등사권이 비록 피해자의 권리로 법률상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 윤일병 유가족들이 기록 열람 요청을 했을 때 군사법원은 유가족들에게 재판이 끝나고 보여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윤일병 유가족들에게 연락하여 공판기록 열람 여부 등을 확인해 본 결과 보지 못하였고 저희가 공소장 및 수사기록을 확보하면 기록을 보겠다는 유가족의 요청이 있었기에 이를 입수하여 검토하게 된 것입니다. 군인권센터가 윤일병 사건 관련 공소장 및 수사기록을 입수하여 살펴본 결과 공소사실이 “상해치사”로만 되어 있고, 성추행 혐의나 기타 가혹행위들도 누락되었고, 수사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하나 초동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특히 4월 6일 사건 발생 직후 수사를 바로 개시하지 않고 증거보전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망 다음날인 4월 7일 아침 가해자들은 모든 관련 증거를 은닉하고 없앴던 것입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록이나 공소장 입수경위나 피의사실공표와 관련된 절차적 적법성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군사법당국이 윤일병 유가족의 요청에 응하여 공소장과 공판기록을 제공하였다면 저희 군인권센터가 이 사건에 개입하거나 윤일병 가족을 만날 이유가 없었겠지요. 피해자 유가족들은 왜 군대에서 아들이 사망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라도 정확하게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윤일병이 이미 사망한 이후인 2014. 7. 29.경 군인권센터는 윤일병 가족을 처음 만났고, 저희가 입수한 공소장 및 수사기록을 보게 된 가족들은 크게 충격을 받고 분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아들이 잔인하게 사망하게 된 사실과 성추행 등 기타 모든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입니다. 저희 군인권센터 운영위원으로 계시는 변호사들은 언론 공개에 대해서는, 이미 기소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하에 긴급 브리핑을 통해 언론에 공표하게 되었습니다.
Q 이번 사건을 통해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국민들은 어떻게 국가를 신뢰하여 자식을 군복무를 하도록 할 것인지, 국가가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불신과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윤일병 사건으로 인해 군사법절차의 공정성 등에 대한 국민적 공론화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A 네, 국민들이 검찰이나 경찰 등에 대한 불신이 있더라도 군사법절차에 대한 불신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군사법당국은 피해자 측에 공판기록 열람조차 허용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수사 및 기소, 공판절차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윤일병 유가족을 처음 만나고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수사기록을 입수하였던 시점은 이미 가해자들에 대한 공판이 3차례나 이루어지고 1주일 후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유가족과 저희 센터는 입수한 수사기록을 볼 때 절대 이대로 결심이 진행되면 안 되고 부실한 초동 수사에 의한 기소 즉, 성추행 등 다른 가혹행위나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기소가 이루어진 결심공판을 일단 저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절박함이 있어 이를 언론에 기자회견을 통해 알린 것입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죄를 적용해 달라는 유가족 측의 요청 등에 대해서는 살인에 대한 고의성은 엄격하게 보아야 하므로 이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무리한 개입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유가족 측에서는 수사기록 열람 이후 담당 검찰관에게 살인죄로 기소를 변경해 줄 수 없는지 수차례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요 목격자인 김일병 등이 가해자들의 성추행이나 기타 가혹행위 및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증언했었고, 이는 수사기록에도 이미 나와있었습니다. 결국 초동 수사가 엉망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군검찰관은 살인죄로 기소할 경우 무죄가 날 수 있고, 주범을 제외한 종범들의 형량이 낮아진다는 주장을 하면서 공소사실 변경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저희가 유가족 동석하에 검찰관과 통화한 자리에서도 담당 검찰관에게 주위적 공소사실을 살인죄로 예비적 공소사실을 상해치사로 변경하여 기소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지 물어 보았으나 역시 그 분은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Q 주범이 형량이 높아지면, 종범이 형량이 낮아진다는 주장은 형사법적 기본원리인 주범, 종범 이론에 비추어서 볼 때 상식에 맞지 않는 주장인 것 같은데요. 저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군사법원에 ‘형량 총량제’가 도입된 것도 아니고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A 그래서 저희가 이후 윤일병이 속한 부대 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소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 성추행의 추가 혐의가 있던 것을 알았느냐고 확인하자 몰랐다고 하였고, 군단장에게도 연락을 하여 이를 바로 잡아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보궐선거가 끝난 다음날 기자회견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한편, KBS 측에서 그 무렵 자체적으로 공소장을 입수하고 저희 센터로 연락이 왔고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저희는 당시 사단장과 군단장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기자회견 하루 전 특정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것도 부적절한 것 같아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다음 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살인죄로 공소장변경을 요구하였고, 이후 국방부는 공소장을 변경할 수 있다고 의사를 표명하였고 관할법원을 28사단에서 육군본부 3군 사령부로 이관하였습니다. 그리고 2차 언론브리핑을 통해 직접적 사인이 기도폐쇄가 아닌 구타에 의한 쇼크사와 더불어 이미 심정지, 호흡 및 맥박이 없는 상태에서 연천의료원에 도착한 것을 추가로 폭로하였습니다. 또한 3차 언론 브리핑을 통해 살인죄를 입증할 주요 목격자인 김일병의 진술을 폭로하였고, 아울러 유가족과 김일병의 만남을 군당국이 고의로 방해 한 것을 폭로하였습니다. 이후 9월 2일 육군본부 3군 사령부 검찰부는 살인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보아 공소장을 변경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Q 그러면 살인죄로 공소장변경이 이루어진 것인가요?
A 아직 공소장변경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9월 16일 오전 10시에 공판이 예정되어 있는데 군사법원이 살인죄로 공소사실을 변경은 하겠지만 반드시 살인죄 유죄가 선고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특히 국방부로 재판관할권을 이전하지 않은 것은 부실 수사와 기소, 공소제기의 책임자인 28사단 검찰관, 헌병대장, 사단장, 6군단 헌병대장, 군단장에 대한 수사를 계시하지 않기 위한 꼼수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3군사령부는 이를 수사할 수 있는 권한과 물리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육군 고등검찰부가 권한을 가지고 있음) 재판관할권이 국방부로 이전되는 순간 국방부 검찰단이 이들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법무관들은 실체적 진실보다 군의 위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밀리게 되면 수사와 기소, 재판을 경찰청, 대검찰청, 대법원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군대 인권을 다루는 비영리단체인 군인권센터를 꾸려가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재정을 비롯하여 후원회원 및 기타 현황은 어떤가요?
A 제가 군인권센터 창립을 준비한 것은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사업인 군인권실태조사연구원으로 참여한 후부터입니다. 이 때 육, 해, 공군, 해병대 등 약 60여 개 부대 및 2,000명의 장병들을 면담하였고, 함께 동숙을 하며 군대 실태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군대 내 구타 가혹행위, 진료권침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 문제를 전담하는 인권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2006년부터 준비해서 2009년 설립하여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후원회원은 400명 정도가 되어 최근 겨우 마이너스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상근자 2명, 비상근간사 1명, 인턴 1명이 전부여서 폭증하는 상담들을 감당하는 데 어려움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상근간사 1명을 더 채용하기 위한 공고를 했고, 기존 회원들께는 증액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추진 중인 사업은 입대 병사들에게 군인권카드를 배포하는 것과 더불어 전문상담원 양성과정을 통해 아미콜(군인의 전화) 개설과 함께 부설 군성폭력상담소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하는 사업을 군이 달가워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군대 내 인권침해를 상담하기 위해 저희 센터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아 “Army Call”이란 군대인권침해 민간상담전화를 운영하려 하는데 “Army call”사용이 군인복무규율 등에 위반되고 징계 회부된다는 내용과 더불어 이용하지 말 것을 교육하라는 공문을 전 부대에 발송하였습니다. 그리고 “Army Call”을 육군본부가 특허청에 상표권출원신청도 하였는데, 이에 대해 군인권센터는 이의신청을 하였고, 법무법인 원(담당 변호사 이유정, 유정희)에서 공익소송으로 지원해 주고 계십니다. 군대는 국민의 참여와 감시를 통해 변화할 수 있으므로, 우리 군을 건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많은 관심과 법률적 지원을 부탁합니다.
인터뷰/정리 : 이지은 본보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