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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_제8편 재스민 혁명으로 변화하는 튀니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법인 중에 거의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된 튀니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유럽에 가까운, 상당히 개방된 국가였다. 국제 공항이 아담한 것을 보니 국제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이지만, 다른 중동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정비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튀니지라는 나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카르타고·페니키아 역사의 무대이고 로마의 지중해 농업 식민지였으나 한니발 장군의 반란으로 로마 황제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황폐화 시켰던 곳, 7세기 이후 아랍인의 공격으로 이슬람화되고 16세기 말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의해 정복되었다가 1881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이래 1956년 독립하기까지 역사적인 강국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암울한 역사를 지닌 튀니지. 하비브 부르기바 초대 대통령 및 그가 이끄는 ‘네오데스투르당’의 일당제 정치가 국가의 초석을 다졌으나 31년간 존속된 일당 독재국가 튀니지는 1987년 11월 총리 Z.E.A. 벤 알리의 무혈 쿠데타로 일단락 되었다. 벤 알리는 대통령 취임 후 민주화 및 자유화 정책을 펼쳐 국가 발전의 기틀을 다졌으나 정권의 장기화(4선)는 독재를 낳았고, 2011년 1월 14일 독재 정권에 반발하는 세력들이 시민 혁명(재스민 혁명)을 일으켜 벤 알리는 축출되었다. 현재는 몬세프 마르주키가 2011년 12월 12일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임시정부를 이끌고 있다. 한국의 근대사와도 사뭇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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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까지의 튀니지는 관광자원을 이용하여 많은 유럽인들로부터 휴양지로 각광을 받아왔다. 유럽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고 안전하며 비행기로 1~3시간이면 유럽 어디서든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중해 연안 천혜의 관광자원(기후, 햇빛, 해변, 사막 등)과 오랜 문화 유산, 그리고 잘 발달된 도로망은 여타 아랍국가와는 다른 개방정책을 펼침으로써 북아프리카, 중동 국가 중 최대의 관광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튀니지에서 촉발된 재스민 혁명(아랍의 봄) 이후 서방 언론은 튀니지 역시 아랍국가 중의 하나로 위험한 국가라는 인상을 남기려 하였고, 그 영향으로 튀니지의 관광산업은 거의 몰락에 가까운 수준으로 후퇴하였다. 수도 튀니스의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외국인 숫자가 그리 많지 않고, 관광 수요가 크지 않다 보니 호텔이나 리조트 역시 낡아도 개보수를 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이에 더해 과거에는 아프리카 개발은행이 상주하는 등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로서 역할을 했으나 아이보리 코스트 내전이 안정화 되면서 원래 소재지인 아이보리 코스트로의 재이전 결정이 났다. 리비아 내전으로 자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불안한 리비아의 부호 및 백만 명 이상의 리비아인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튀니지에서 거주 및 투자를 하면서 소비를 이끄는 이외에는 현실적인 경기부양책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튀니스 신시가지 “LAC(호수)” 지역 개발을 위해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우디 자본을 유치했다고 하니, 튀니지가 주류에 비교적 너그러운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니파 이슬람정권의 영향력이 상당함과 여타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힘든 튀니지의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출장 목적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벤 알리의 축출에 따른 속칭 ‘반국가행위자의 처벌 및 자산 몰수에 관한 특례법’의 공표로 임대 중인 건물의 소유권이 국가로 몰수되는 바람에 차임을 어떻게 지불할 것인지, 보증금은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법원에서 선임한 재산관리인이 해당 부동산 소유주를 무서워하여 관리인으로서의 직무를 해태하고 있는데도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현지 로펌과의 면담을 통해 해결하기는 했지만, 웃지 못할 현실이다.
운이 좋아서인지 많은 현지 변호사와 면담을 할 수 있었고, 각 면담을 통해 튀니지라는 나라의 특성과 가능성을 보았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튀니지인들이 스스로를 한니발의 후예이자 상인이고 유럽 수준의 역량을 가진 민족/국가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원 측면에서는 리비아나 알제리와 비교하지 못할 만큼 미약하나, 의약 및 고부가가치 사업에 관심이 많고, 정부에서도 의무교육에 심혈을 기울기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단기적으로 관광산업을 비롯한 경제 회복의 기미는 찾기 어렵고 인구 천만 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고 정교분리의 정체를 운영할 수 있다는 확신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아랍어, 불어, 영어 모두 유창함), 문화(아랍문화이지만 서양화 됨), 역사(지중해 및 아랍역사권) 등 여러 측면에서 레바논 사람들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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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국가를 방문할 때와 마찬가지로 튀니지 변호사협회를 방문했고, 협회장 및 임원들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도 협의 했다. 전체 변호사 수가 약 9천 명으로 그 중 절반이 튀니지에 소재한다. 법과대학 4년(현재 3년)을 수료하면 Bar 시험을 치를 수 있고, 합격한 인원은 법무부 산하의 연수원(변호사협회와 협력)에서 2년 교육을 받아 변호사로 등록할 수 있다고 한다. 2008년까지는 법학석사 이상의 인원에 대해서는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였지만 지금은 Bar 시험을 합격해야만 변호사가 될 수 있다. 다만, 판사와 검사는 별도의 시험을 통해 확보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의 변호사가 프랑스/튀니지 자격을 보유하고 있고, 상호 간 자격을 보유하지 않은 경우라도 case 별로 상대국 법정에서 변론이 가능(법원의 승인 전제)하다고 한다.

재스민 혁명에 대한 분석이 다양하지만, 튀니지를 다녀온 이후 나에게 다가오는 확신은, 이 혁명은 종교나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종교 세력에 의해 촉발 전개된 것이 아니라, 20% 이상의 청장년층 실업이 잉태한 가난 및 배고픔이 이 혁명의 본질이었고, 튀니지는 그 혁명의 본질을 이해하고 종교와는 분리된 사회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혁명 결과 운영되어 온 제헌의회(의석의 70% 이상이 온건개혁파)가 올해 1월 헌법을 통과시켰고, 10월 총선 및 11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튀니지가 특별한 사회불안 없이 성공적인 선거를 치러낸다면 중동?북아프리카 국가 중 민주주의가 안착하는 최초의 국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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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에서 알제리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
김현종 변호사
사법시험 제47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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