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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내려온다


음악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는 일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평소 판소리를 즐겨 듣지 않는 나로서는 겨우 귀를 스쳐 지나가듯 들어보았을 법한 구성진 가사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저 들리는 대로 검색창에 ‘법 내려온다’를 입력해 보고, ‘장림깊은 골’로 내려온 그것이 ‘범’이란 걸 알게 된 순간, 직업병으로 돌려버리기엔 나의 가사 이해력이 지나치게 부족했음을 새삼 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부끄러움을 위로할 변명거리 하나를 떠올려 본다. 이렇게 멋지고 재미있는 비트에 조선시대 수궁가(水宮歌)를 얹을 수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범 내려온다’와는 정반대인 나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바로 처음 법전을 접했을 때다. 법이 어렵다 어렵다 해도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규칙인데 그게 뭐 얼마나 어렵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민법전을 펼쳐본 순간, ‘무능력자’나 ‘사술’처럼 생전 처음 보는 말은 둘째치고, 알고 있는 말조차도 그 뜻으로 읽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일상에 관련되어 있는 규칙들, 내가 곤경에 처하면 찾아보게 될 책인데, 이렇게까지 어려운 말이 녹아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글이란 건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써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온 언론학도였던 터라, 전혀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만난 것 같은 기분까지 들기도 했다. 쉽다고 생각한 것을 아주 어렵게 접했을 때의 놀라움은, 어려운 것을 쉽게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는 그 결이 확연히 다르다. 업으로 삼기 위해 꾹꾹 참아 가며 갈고닦아 익히긴 했으나,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법에 대한 두려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며 지레 이해하길 포기했을 것이다. 손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다며 법을 평생 멀게만 생각했으리라.

그래서인지 법제처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 등을 통해 법전 속의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용어가 조금씩 정비되어가는 것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특히 요 근래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많은 회원분들이 대중에게 법을 알기 쉽게 전하는 양질의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더 편한 말로, 더 친숙한 모습으로 어려운 법을 풀어 설명하는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스스로를 자극하는 신선한 충격을 느낀다. 그야말로 그 높이 있던 법이 정말 ‘내려온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몇 백 년은 됐을 법한 노래에 젊은 세대가 다시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옛 음악에 세련된 색채를 입혀서일 뿐만은 아닐 것이다. ‘범’을 전하는 말과 이미지, 그 강렬함을 매개하는 수단이 아주 쉽게 귀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법’도 마찬가지이다. 더 쉽고 가깝게 전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이 계속된다면, 정말로 TV와 인터넷에서 ‘힙’한 비트가 어우러진 ‘법 내려온다’가 흘러내리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신상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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