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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인문학두드림_사지(死地)에 선 인간 이순신, 마침내 선조를 파직하다
사지(死地)에 선 인간 이순신, 마침내 선조를 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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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풍문이 매끄럽게 들릴 때가 있다. 선무1등공신이고 대광보국숭록대부이며, 의정부좌의정 겸 덕풍부원군이고 행자헌대부이며,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충청전라경상삼도수군통제사이고 영의정인 충무공 성웅(聖雄) 이순신이라고 해도, 신하로서 감히 선조대왕을 끌어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황, 이이, 이항복, 이덕형, 류성룡, 이산해를 요리(?)한 정객(政客) 선조대왕에게 반기를 든다니 말이다. 
하지만 역모의 기미는 뚜렷했다. 조정이 보기에 전라도 지역의 민심을 얻고 수백 척의 배를 거느린 이순신은 역모를 획책하고도 남았다. 당시 이순신에게는 바다도 적(敵)이요, 민심도 적이요, 왜군도 적이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모함과 투서도 적이었다. 그 후 이순신은 조선 역사상 최초로 무관출신으로서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으나 오만한 인격 스스로가 저지른 허위보고로 침몰했다. 

이순신은 파직되어 무관(無官)이 되었다. 뭐 억울한 사정이 많았으리라. 십만 왜군을 앞에 둔 적전내홍은 철저한 파워게임을 통해 “나는 왕, 너는 말단 군인”을 명확히 알게 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제 비루한 신하 이순신은 죽을 곳을 피하게 해 준(免死) 선조대왕의 은덕을 갚기 위해 곽재우처럼 숨어 버리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조정의 신임을 새로 받은 통제사 원균은 이순신의 지난 잘못을 상세히 보고하여 ‘순신이 죽을 짓을 했다’는 조정의 판단을 적극 지지했다.
역사가 이쯤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이후의 역사는 더욱 변화무쌍해진다. 수군을 전부 떠맡은 원균이 거제 칠천도에서 수만의 조선 수군과 함께 몰살당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불안감이 도성을 뒤덮었고, 왜군이 뱃길로 한성에 당도한다는 소문도 퍼졌다. 위기를 실감한 선조대왕이 구세주(救世主) 이순신에게 남긴 글은 절절하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尙何言哉 尙何言哉(상하언재 상하언재). 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이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기복수직교서起復授職敎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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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직시킨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수직교서


이순신은 어찌해야 했을까. 몸도 아프고 어머니도 돌아가셨는데, 굳이 전장에 나설 필요가 있었을까. 면사(免死, 죽음만은 내리지 않음)의 은혜를 입은 마당이니 다시 한번 물에 나가 볼 생각도 있었을까. 아무튼 이 위인의 심리를 쉽게 알기는 곤란하다. 병사도 없는 삼도(三道)의 수군 전부를 맡기시는 선조대왕의 교활한 교지가 촌구석 마을에까지 당도한 것이다.
‘임금아, 어쩌라는 겁니까.’ 이제 이순신은 지켜야 할 명예도 없었을 게다. 뭐 이미 불충한 신하이자 허위보고와 동료모함을 일삼는 군인의 대명사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바다에 가는 것도 사지(死地)고, 또다시 관직에서 모함을 받는 것도 사지(死地)고, 왜군과 직면하는 것도 사지(死地)인데 굳이 이름뿐인 통제사를 받을 이유가 뭐였던가. 병사와 배도 없는 삼도수군통제사라...

그런데 이순신은 그 관직을 받기로 한다. 그 후의 역사는 영화 <명량>에 나오듯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그대로다. 땅끝 바닷물이 우는 길목(명량)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수군을 멋지게 복구한 후, 관음포(남해 노량) 등지에서 왜군을 쥐 잡듯 쫓아 수만 명을 수장시킨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물론 그 이면에는 철저히 부수고 철저히 죽이는 참혹한 복수가 깔려있다.
그런데 이순신은 왜 복직했을까. 그리고 누구에게 그리 철저하게 복수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순신 최후의 전투,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은 선조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걸까. 잡아 죽여야 마땅했던 역신(逆臣) 이순신이 대첩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순간 선조는 민심을 잃었고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는 임금 자격이 없는 임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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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지는 남해 노량의 바다


짙은 핏빛 노을이 지는 노량(관음포)에서 쉼 없이 포를 날리던 전신(戰神) 이순신은 그제야 홀가분하게 사지(死地)를 떠나면서 어떤 말을 남겼을까. 그가 평생토록 진정 죽이고 싶었던 단 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었을 게다. 

“님하. 님하. 고귀한 당신이 원하던 대로 역도(逆徒) 순신은 세상을 하직하노라. 임금하. 당신은 여태껏 무슨 자격으로 임금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이제 당신에게 죽음을 면하게免死 하는 대신 엄히 파직罷職하고자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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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변호사
사법시험 제45회(연수원 35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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