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터뷰 선배법조인의 조언
이영희 변호사 인터뷰


Q.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졸업하고, 법무법인(유한) 바른에서 21년째 송무 업무에 임하고 있는 이영희 변호사입니다.

Q. 한 회사에서 20년 이상 재직하셨습니다. 이직을 고려해 본 적은 없으신지요?

저는 송무 변호사가 되고 싶었고, 입사할 당시 바른의 변호사님들 거의 대부분이 재조(在曺) 출신이기에 송무를 배우는 데 있어 저희 법인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바른의 공채 1기 변호사로 들어왔을 때 소속 변호사의 수가 많지 않다보니 저연차 때부터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했고, 파트너 변호사님들과 함께 의뢰인 미팅이나 법정에 참석하면서 사건을 선임할 때의 자세, 의뢰인을 대하는 태도, 사건전체의 전략과 방향을 세우는 과정, 증인 및 입증방법의 선정 노하우, 적대적 증인을 신문하는 기술, 소송이면에 존재하는 실체적 배경을 집어내는 방법 등 훌륭한 송무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연차 때에는 집에도 며칠씩 못 들어가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저에게 아주 큰 자산입니다. 바른의 변호사님들이 재조(在曺) 출신이 많다보니 서면 초안을 작성해서 드리면 빨간 펜 선생님처럼 깨알같이 수정해 가면서 가르쳐 주시곤 하셨는데, 무미건조했던 서면이 한 편의 논문으로 탈바꿈 하는 것을 종종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바른에 계신 선배변호사님들로부터 배워야 할 장점들이 많았고, 송무 변호사로 성장하기에는 바른 만큼 좋은 곳이 없는데,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겠어요(웃음).

Q. 군인이었던 부친께서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고교시절까지 강원도 화천에서 자랐습니다. 그 당시 또래 친구들에게는 법조인, 그것도 여성 법조인은 먼 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친께서는 신문에 여성 법조인들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스크랩을 해 주시면서 ‘너도 이렇게 될 수 있다. 이 사람들을 보면서 늘 노력해라.’라고 하셨고 늘 ‘꿈을 크게 가져라. 지금 네가 있는 곳에 눈높이를 맞추지 말고, 좀 더 원대하게 가져라. 그럼 설령 네가 꿈꾸던 곳까지는 못 가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아갈 수 있고 뭐라도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화천에서 공부 잘하는 선배들 다수는 강원대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서울로 상경해 법학과에 진학하였고, 법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Q. 변호사 2 ~ 3년 차 때 차정일 특검을 다녀오셨습니다.

당시 법인은 소속변호사가 2명뿐이라 특검에 소속변호사를 파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고(故) 정귀호 전 대법관님(2011년 작고)의 용단으로 파견을 갈 수 있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저희 법인에 소속변호사 파견을 요청했을 당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그런데 고(故) 정귀호 전 대법관님께서 ‘우리가 지금 당장 몇 개월 어려울지 몰라도 보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재조(在曺) 출신이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소속변호사들은 그렇지 않다. 후배 변호사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선배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특검에 파견하여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은 개인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법인에게도 큰 보탬이 되는 투자가 될 것이다’라고 구성원들을 설득하셨습니다. 저는 후배들을 위해 쉽지 않은 용단을 내려 주신 정귀호 전 대법관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Q. 특검 파견은 어떠셨나요?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특검 출범 당시에는 모두들 더 나올 것이 없는 사건이라고 전망하였으나, 국민들로부터 특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당시 차정일 특검께서 전략을 잘 세우셨습니다. 이전에는 파견 검사 및 검찰공무원을 검찰에서 선별해서 보내주는 식이었는데, 차정일 특검은 검찰에 수사를 잘하기로 소문난 인재들을 특정해서 파견요청을 하였습니다. 각 기관에서 파견된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로부터 계좌추적을 비롯하여 수사를 하는 기법, 사건에 대한 집념, 직업적 소명 등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도청 장치를 검사하고 중요한 대화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 이동하면서 나누는 등, 제가 겉으로 보는 세상과 그 이면의 세상이 많이 다르다는 점도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Q. 처음 법조인이 되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을 때 세상에 존재하는 만능 천재들을 모두 모아둔 곳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엄청난 분량의 판례를 읽으면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버거웠는데, 어떤 동기는 그 단계를 훨씬 뛰어 넘어 판례 평석을 하는 수준이었으며, 법률영역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노래, 악기 연주, 작곡 등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동기들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재능을 갖춘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고 동기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각자의 생각과 삶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했고, 천재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Q. 현재 업무에 임하는 데에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변화가 있을까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업무에 임하는 기본적인 자세에는 크게 변화는 없습니다. 단지 변화가 있다면 20년이란 시간을 통해 경륜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 변호사들이 동일한 기록을 검토한 후 토론을 해 보면 각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인데, 그 차이를 좁혀나가는 과정을 반복하고, 다양한 사건의 재판에서 승패를 통하여 몸소 체득한 경험들이 누적되면 어느 정도 경륜이 생기게 됩니다. 저희는 송무를 밥상을 차리는 일이라고 표현하는데, 밥상을 어떻게 차릴 것인지, 음식을 무엇부터 낼 것인지, 어떻게 배치하고 가감할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경륜이 쌓이면 기록 외적인 것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소송이라는 것은 의뢰인에게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그것이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된다면 가급적 현재 계류 중인 소송에서 일괄하여 정리될 수 있도록 합의 또는 조정을 제안하여 해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패소를 만회할 방법,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의뢰인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송무 변호사는 소송을 포함하여 의뢰인이 처한 제반 상황에서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 또는 가장 손해가 적은 방향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Q. 바른에서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제 개인적으로 무엇을 더 이루고 싶기 보다는 바른의 변호사님들과 함께 이루어 나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중국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과 관련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아직까지 법치주의가 확고히 확립되지 않았고, 각 지역적 변수가 많다 보니 다른 대형로펌들과 출발선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부분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중견기업들이 원만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중국내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철수가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계속해서 새로운 외국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저희 법인은 양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자 중국 공공외교 민간 싱크탱크인 차하얼(察哈尔)학회와 최근 MOU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 관해 바른의 변호사님들과 함께 꿈꾸고 있는 그림의 퍼즐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은퇴하기 전까지 다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웃음).
 

법무법인(유) 바른 동남아시아팀


Q.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하시는지요?

종교가 기독교이다 보니, 기도를 통해 평안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또한 가급적 제가 처한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운동은 수영을 주로 합니다. 사건에 몰입하다 보면 24시간 팬이 돌아가듯 머리가 뜨거워지는데, 수영을 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Q. 변호사가 아닌 인간 이영희를 한마다로 표현한다면?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고,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보통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고, 은퇴 후 행복하게 살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것들이고, 매일 감사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내가 잘나서 이룬 것이 아니라, 아무 대가 없이 나를 도와주고 가르침을 준 분들과의 좋은 인연이 나를 여기까지 이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베풀어 주신 분들께 되돌려줄 수는 없겠지만, 저도 그 분들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Q.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변호사 3년차 때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본 경험 때문인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가족이 제 곁에 웃으면서 맞아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동생 둘도 변호사인데, 함께 출 · 퇴근을 해요. 주말에는 가족들이 다 같이 식사를 하고요.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토론하면서 어려운 답을 찾아갈 때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힘들 때 같이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Q. 다시 태어나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실 건가요?

그럴 것 같아요. 가족들이 저에게 생래적 변호사라고 하는데(웃음), 저는 송무가 적성에 잘 맞습니다. 일을 통해 의뢰인분들도 만나고, 사건에 따라 새로운 분야에 관해 많이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저연차 이영희 변호사를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인가요?

“너 잘 하고 있어. 네가 하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그대로 하면 돼,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매일 매일 지금처럼 성실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면 그 결과물이 주어질 거야”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새내기 변호사 시절에는 미숙하여 실수도 하고, 일처리가 늦어 야단을 맞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컸습니다. 그렇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실수를 거울삼아 차근차근 경험과 실력을 쌓아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두렵지만, 그 미래는 현재가 쌓여서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충실하면 그것이 쌓여 미래가 되는 것이므로, 미래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법조 후배들이 자신이 서 있는 출발선부터 좌절하고 주눅 드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저는 출발선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출발선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방향성을 잃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바른에 처음 입사했을 때 저를 포함해 변호사가 13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송무강자이고, 법원이나 검찰에서 유능하신 분들이 많이 합류하는 법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제가 연수원을 졸업할 당시에는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를 선호하지 않았는데, 제 동기들 중에는 혜안을 가지고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입사하여 그곳에서 전문성을 쌓아 그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로 성장한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목표하는 곳에 이르기 위해 꼭 지름길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가는 길이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지름길로 갔다면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는 까닭에 이 또한 의미 있는 길이 아닐까요. 지름길로 가든, 돌아가든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목표하는 곳에 도달하는 것이므로,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위원

황귀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