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법률판례 판례 평석
무권한자가 타인명의의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체결한 전자대출약정의 효력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다257395 판결


01 사안과 쟁점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사기단이 피해자들로부터 취업 알선 명목으로 취득한 개인정보 및 계좌번호 등 금융정보를 이용해 임의로 피해자들의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은 다음, 이를 기화로 대부업자들과 피해자들 명의로 전자대출약정을 체결한 후 대출금을 편취한 데 대해, 피해자인 원고들이 대출약정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대부업자인 피고들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한 사안으로, 당해 전자대출약정이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기본법(이하 ‘전자문서법’이라 함) 제7조 제2항 제2호에서 정하고 있는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나아가 이를 전제로 원고들에게 대출금채무를 귀속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02 판결 요지

대법원은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 제11조, 구 전자서명법 제3조 제2항, 제18조의2의 내용과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입법 목적 등을 종합하여 보면, 전자문서에 의한 거래에서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한 공인인증서에 의하여 본인임이 확인된 자에 의하여 송신된 전자문서는, 설령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작성 · 송신되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 규정된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러한 경우 전자문서의 수신자는 전화통화나 면담 등의 추가적인 본인확인절차 없이도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를 작성자의 것으로 보아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이와 결론을 달리한 원심 판결을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서 정한 ‘정당한 이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 환송하였다.

03 판례 평석

보이스피싱을 통한 전자금융사기범행은, 성명불상자가 피해자에게 대출이나 취업 알선을 명목으로 접근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공인인증서 (재)발급에 필요한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 등의 각종 금융정보를 획득한 다음,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아 피해자 명의로 금융기관과 전자대출 약정을 체결한 후, 피해자의 은행계좌로 입금된 대출금을 제3의 계좌로 전전 이체하여 임의 출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이다.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보이스피싱 범행의 특성상 피해자가 사기범들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이 극히 어렵기 때문에 범인들이 수사기관에 검거된 후 진행되는 수사 및 공판 절차에서 처벌 불원(합의)의 대가로 변제를 받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피해자들이 개별 민사소송을 통해 사기범을 상대로 대출금 상당의 손해를 배상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사적 측면에서 보면 피해자들로서는 대출약정의 상대방인 금융기관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데, 대개는 1) 대여금소송이나 채무부존재확인소송에서 당해 대출약정이 무효이므로 대출금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거나, 2) 피해자의 계좌에서 제3의 계좌로의 대출금 ‘이체’가 무효임을 이유로 그 예금의 반환을 구하는 것, 혹은 3)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를 근거로 한 손해배상의 청구, 이렇게 세 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제3자에 의한 예금 이체는 피해자의 요구불예금 계좌 개설 당시 은행의 본인확인절차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이상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의 법리에 따라 반환청구권의 인정이 쉽지 않고(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4다41194 등), 전자금융거래법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 역시 성명불상자에게 공인인증서 (재)발급에 필요한 개인정보 일체를 누설한 피해자의 중과실로 인해 인용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대법원 2014. 1. 29. 선고 2013다86489 판결).

대상 판결 이전 하급심 판결들을 살펴보면, 명의인과 금융회사 간에 인터넷뱅킹에서의 본인확인 방법에 대한 선행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권한 없는 제3자에 의해 대출약정이 체결된 점을 근거로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의 ‘정당한 이유’를 부정하는 전제에서,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 조항의 유추적용이 가능한지에 따라 피해자에게 채무를 귀속시킬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만약 선행 합의가 있는 경우라면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1호에 따라 대출금채무는 당연히 명의인에게 귀속됨).

그런데 대상 판결에서 대법원은, 위와 같은 선행 합의가 없는 때에도 성명불상자가 피해자의 공인인증서를 통해 체결한 전자대출약정은 수신자(대출실행기관) 입장에서 수신된 문서(대출약정서)가 작성자(명의인인 피해자)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대출 약정의 효력을 부인한 원심을 파기하였다. 따라서 전자대출약정의 차주는 비록 보이스피싱이라는 형사상 범죄의 피해자라 할지라도, 당해 대출약정이 본인 명의의 공인인증서를 통해 체결되었고, 이에 기초해 대출금이 실행된 이상 그 효력을 부인하고 대출금채무의 귀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법리상 매우 어려워졌다.

04 대상 판결의 의의

대상 판결에 대해서는, 전자문서법은 계약법의 대원칙이나 민법상 표현대리 법리를 변경하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래의 일방인 금융기관에 편파적으로 유리한 결론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상당한 부정의를 낳을 수 있고, 2020. 6. 9. 전자서명법 전면 개정을 통해 공인인증서 제도가 폐지된 만큼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는 비판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그러나 접근매체로서 공인인증서가 가지는 기능, 공인인증서는 은행의 대면(혹은 이에 준하는 비대면)에 의한 본인확인절차를 거친 후 비로소 발급되고, 이렇게 발급된 공인인증서에 대한 사용· 보관상 관리책임은 이용자 스스로 부담하는 점, 나아가 비대면을 특징으로 하는 전자금융거래는 신속하게 대량의 금융거래를 정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금융기관의 이익과 아울러, 이용자의 이익과 편의 역시 함께 고려하여 고안된 시스템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대상 판결은 법리적으로도 타당하다고 본다.

나아가, 개정 전자서명법 부칙에 따라 이 법 시행 이전에 발급된 유효한 공인인증서에 의한 전자서명은 여전히 ‘공인전자서명’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하며, 공인인증서 외 다른 본인확인수단이나 접근매체를 수단으로 하여 권한 없는 제3자에 의해 체결된 전자대출약정에 따른 채무귀속이 문제 된 경우에도 유용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상 판결은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고 할 것이다.
 

문동주 변호사
● 법무법인 에이치스

문동주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