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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변호사의조언] 박병무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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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무 변호사 약력

1980 서울대학교 전체 수석입학
1982 사법시험 제24회(연수원 15기)
1984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수석졸업
1985 대법원장상 수상
1989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석사
1988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1994 Harvard Law School, LL.M.
1985 ~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
1995 ~ 현재 미국뉴욕주변호사
1989. 1. ~ 2000. 9. 김 & 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00. 10. ~ 2003. 4.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 ㈜ 대표이사
2003. 6. ~ 2006. 3. Newbridge Capital 한국 대표 및 Managing Director
2005. 11 ~ 2006. 3 ㈜하나로텔레콤 경영위원회 의장
2006. 1. ~ 2008. 3. ㈜하나로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2005. 5. ~ 2008. 5. ㈜메트라이프생명 사외이사
2007. 3. ~ 2013. 3. ㈜NC Soft 사외이사
2013. 3. ~ 현재 ㈜NC Soft 이사 및 감사위원
2011. 3. ~ 2012. 12. ㈜코오롱생명과학 사외이사
2008. 9. ~ 2010. 10. 김 & 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10. 11. ~ 2014. 6. 보고 캐피탈어드바이저 대표
2012. 7. ~ 현재 보고 인베스트먼트그룹 대표
2013. 10. ~ 현재 동양생명 경영위원회 의장


글/인터뷰 : 박형연 본보 편집위원

매번 편집회의에서 다음달 “선배변호사의 조언” 코너의 변호사를 결정한다. 지난번 회의에서 현재 보고펀드의 공동대표로 있는 박병무 변호사를 인터뷰하기로 결정되었을 때 내가 자원하였다. 나도 그를 한번 만나보 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83학번이고, 사법원수원 19기이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사법시험을 보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세대이다. 그런 우리 시대의 “인물”들이 있었다. 박병무, 김선수, 서동우, 원희룡 변호사와 같은 사람들이다. 서울대 전체 수석을 하거나, 사법시험 전체 수석을 하고도 판사와 검사를 하지 않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 박병무 변호사는 작년에 인터뷰를 한 법률신문의 기사를 그대로 옮기면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신하는 사람, 열혈남아”이다. 그런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배를 만나서 변호사의 직함 하나만으로는 생계도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후배변호사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인터뷰를 자청한 나로서도, 막 지천명해야 한다는 나이를 넘긴 나 자신도 그의 변신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그의 변신의 끝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그는 지금도 주목받는 인물이라서 그런지 인터넷에 그의 이름만 쳐도 많은 자료가 나왔다. 특히 법률신문 법조라운지에서 2013년 1월 상세한 근황 소개와 인터뷰를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인터뷰를 통해서는 겹치고 진부한 질문은 피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그가 현재 공동대표로 있는 보고펀드의 종로 순화동 사무실을 찾았다. 


서울대 전체 수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3학년 때 사법시험에 붙은 이후 주변으로부터 관심과 주목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목받는 삶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서울대 전체 수석을 하면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도처에서 인터뷰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소심한 성격을 타고 나지는 않아서 부담보다는 자극과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목을 받다 보니, 더욱 잘 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게 되고, 더 노력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정말 판사와 검사 즉, 현직으로 갈 마음이 없었던 것인가요 아니면 그 당시 스타플레이어들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적극적으로 영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한 유혹에 넘어간 것인가요. 

아버지가 경상도 분이십니다.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법대를 가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법대를 갔습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삼성물산 등 종합상사가 잘 나가던 시절이었고, 일본 책 『대망』이나 재벌들의 성공담을 그린 책을 읽으면서 기업에서 일하면 멋있겠다고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고교시절에 나중에 훌륭한 판사, 검사가 되겠다는 꿈이 나에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아들이 판사가 되었으면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법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꼈었습니다. 
3학년 때 시험에 붙다 보니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 1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습니다. 남들은 행정고시를 봐서 양시(兩試)패스를 하거나 공인회계사 시험을 보라고 권하였는데 저는 그때 교수님에게 부탁하여 김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아직 김앤장이 10명 정도 규모로 조그마할 때였습니다. 정계성, 신희택 변호사 님과 같은 똑똑한 분들이 들어간 사무실이라 그쪽이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연수원과 군법무관을 마치고, 제가 스스로 김앤장을 찾아가서 일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김앤장에서는 그 당시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마 이놈은 당연히 우리와 일할 놈이라고 생각했는지 술 한 번 사 주면서 꼬시지 않았습니다. 제발로 걸어가서 입사를 하였습니다.(웃음) 


김앤장에서 유학을 보내 주었을 때 하버드에 가서 놀지 않고 2년간 죽도록 공부만 해서 미국인들도 혀를 찼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나요? (웃음) 놀 때는 열심히 놀았습니다. 공부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형님이 국비유학으로 MI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그런 형님을 보고 자라면서 공부를 하면 멋있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집이 그렇게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라서 집에서 학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입장도 아니었고, 법대에 가서 고시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제가 로펌에서 보내 주어 하버드에 갔을 때 옛날에 못 한 공부를 원 없이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하버드는 미국에서 잘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인데 한국인들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또 제가 박사학위를 따러 유학을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가 공부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한 것은 사실입니다. 
보통은 L.L.M.(석사) 1년을 하고, 현지 로펌에서 월급 받으면서 1년을 일하다가 귀국하는데, 저는 금융법의 대가인 스캇 교수를 만나 저개발국 금융지원프로그램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1년 더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연구하였습니다. 로펌에 가면 월급을 받는데 공부를 한 해 더 하는 것은 제 생돈을 그대로 투자하는 것인데 재미있었습니다. 하버드에서는 매주 대통령이나 기업의 CEO 등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로펌에 근무하면 그런 기회는 전혀 못가질 것 아닙니까. 집사람도 함께 미국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그때 번 돈은 거의 까먹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김앤장의 엘리트 변호사가 갑작스럽게 로커스홀딩스라는 벤처회사의 CEO가 되어 변신을 하였습니다. 로커스의 김형순 대표의 계속되고 집요한 영입제안에 넘어갔다는 설명은 좀 부족합니다. 숨어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유학을 마치고 김앤장에 돌아와 큰 회사 M&A 거래에 많이 관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직접 결정을 하는 CEO의 역할이 아니라 그 결정을 보조하는 변호사의 역할이다 보니 ‘나 같으면 이렇게 결정할 텐데...’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외국계 투자은행이나 대기업으로부터 영입제안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대기업이나 외국계 투자은행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매력을 못 느꼈습니다. 그럴 바에 김앤장에 있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벤처붐이 불던 시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벤처를 직접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기던 시절이었습니다. 벤처로 간다는 것은 창업을 하는 것과 유사하니 말이다. 그런 때에 로커스의 김형순 대표가 집요하게 설득을 하여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웃음) 김앤장을 나오면서 제가 제 회사를 창업하는 기분으로, 모험 속으로 저를 집어 던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안정된 직장보다는 계속 모험을 하고 계십니다. 그 모험하는 성격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요.

솔직히 정말로 하는 모험은 아닙니다. 변신을 했다가 망하더라도 다시 변호사는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물론 안정적인 대기업의 CEO가 아닌 벤처기업을 선호하였던 것을 보면 제가 모험을 선택한 것은 사실입니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제가 모험을 하는 만큼 성공하면 그 과실이 크지 않겠습니까. (웃음) 저희 집안이 모험을 즐기거나 사업가를 배출한 집안은 아니고 평범한 집입니다. 꼭 찾으라면 제가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에게서 사업가의 DNA를 받은 것 같기는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 옛날 술도가를 4개나 운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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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에 복귀하였다가 다시 보고펀드의 공동대표가 되셨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지금의 보고펀드는 사모펀드로서 초기벤처회사(Starts-up)는 아니고 어느 정도 성장한 회사 즉, 중견기업에 투자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펀드이다. 여기서 돈을 많이 벌면 저는 최종적으로 Angel 투자자 즉, 초기의 벤처사업가에게 초기자금을 투자하는 그런 투자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김앤장에 근무하면서, 그 후 경영일선에 뛰어들어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의 대기업 중심의 기업구조에 대하여 많은 의문과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빈부의 차이가 크지만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 상실감은 한국이 더 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대기업, 재벌의 독식구조가 너무 견고합니다. 우리 재벌들은 부뿐만 아니라 경영권도 아들에게 모두 물려주려고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당대에서 번 돈의 재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건강한 투자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젊고 유능한 벤처사업가가 맨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의 선순환 구조가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비난하고, 미국을 마냥 부러워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 재력이 생긴다면 우리나라에 미국과 같은 생태계가 가능하도록 젊은 벤처사업가를 지원하고, 초기 투자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벤처의 속성이 100개 중에 한두 개가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야 제가 꿈꾸는 엔젤 투자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웃음)


변호사님은 국제적인 법률전문가이십니다. 요즘 변호사 숫자가 늘고, 해외시장에 관심이 많은 젊은 변호사들이 많습니다. 국제시장에 관심 많은 젊은 후배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법률가로서 해외진출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지만 저는 한국변호사일 뿐입니다. 그게 냉험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젊은 후배들에게 한국의 법률전문가로 해외진출을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해외로 나가고 싶다면 자신이 변호사인 것을 잊고 해외의, 현지의 전문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현지의 하나뿐인 전문가가 되면 거기에 더하여 한국변호사라는 자격이 빛날 수는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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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년변호사들이 어렵습니다. 그 청년변호사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지금 한국변호사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갑작스럽게 너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가능하면 숫자를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숫자가 많아서 청년변호사들이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하는 말입니다만, 변호사는 자격일 뿐 더 이상 기대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과거에 변호사는 이랬는데, 이런 대우를 받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억울하다면 그런 인식은 청년변호사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마음만 상할 뿐입니다. 
법률교육을 배우고, 변호사가 되었다는 것은 다른 과목을 공부한 사람들과 비교하여 공정함(fairness)에 대한 철학을 전수받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빈손이라고 생각하고 새출발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보는 젊은 친구들이 ‘너는 많이 가졌으니 그런 소리를 하지’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명심하십시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버리기 힘들지 모릅니다. 저는 나름대로 변호사란 자격이 자격 이상의 가치를 지닌 시절을 보냈지만, 그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저벅 저벅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후배들도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의 최종목적지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혹시 정치가 아닐까, 학계일까, 아니면 보고펀드와 같은 토종펀드를 국제적인 펀드로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생태계의 최초의 양육자, 앤젤 투자자가 되고 싶어 하였다. 실제 그는 보고펀드의 대표로 있으면서 3년째 자신만의 투자자문회사를 만들어 그 씨를 뿌리고 있었다. 모험의 DNA가 아직도 건재하였다. 우리 후배 청년변호사들이 박병무 변호사로부터 그 담대한 모험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희망이라는 모험정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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