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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항소심의 풍경


 변호사로서 일한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동안 수행했던 사건들을 쭉 떠올려 보니 비슷한 연차의 변호사들보다 형사 항소심사건 수행 경험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수행했던 형사 항소심사건들의 경우 법리오해 혹은 양형부당보다는 ‘사실오인’을 주된 항소이유로 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스쿨 재학 당시 ‘사실인정론’ 첫 수업 시간에 ‘로스쿨의 색은 무엇이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대하여 ‘회색’이라고 답하고 반장이 되었던 것이 나비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변호사 실무수습 기간 중 처음으로 접했던 기록도 사실오인을 주된 항소이유로 주장하는 형사 항소심사건에 관한 것이었고, 나름대로 주수행 역할을 처음 수행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사건도 사실오인을 주된 항소이유로 하는 형사 항소심사건이었으니, 적어도 ‘사실오인’, ‘형사 항소심사건’과의 남다른 인연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실오인을 주된 항소이유로 하는 형사 항소심사건을 여러 차례 수행하다 보면, 형사 항소심사건을 수행하는 일이 형사 1심사건을 수행하는 일보다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한 느낌을 받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형사 항소심이 속심을 기반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사후심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판례는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형사 1심의 사실 인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7. 3. 22. 선고 2016도18031 판결). 또한 형사소송규칙 제156조의5(항소심과 증거조사) 제2항은 “항소심 법원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하여 증인을 신문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각호의 사유로 ‘1. 제1심에서 조사되지 아니한 데에 대하여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고, 그 신청으로 인하여 소송을 현저하게 지연시키지 아니하는 경우’, ‘2. 제1심에서 증인으로 신문하였으나 새로운 중요한 증거의 발견 등으로 항소심에서 다시 신문하는 것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3. 그 밖에 항소의 당부에 관한 판단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사 항소심의 사후심적 성격 때문에 형사 항소심사건의 수행에 있어 애로가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과거 어떤 형사 항소심사건을 수행했을 때의 일입니다. 1심 법정에 무려 3번이나 출석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A를 다시 항소심 법정의 증인으로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A의 1심 법정에서의 증언이 1심 유죄 판결의 주요 증거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A의 1심 증언의 신빙성을 탄핵하지 않으면 항소기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1심 법정에 무려 3번이나 출석했던 A에 대한 증인신청을 항소심 재판부가 쉽게 채택해 주지 않을 것임을 당연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A가 지인 B에게 ‘1심에서 증언을 할 때 거짓말을 했다’는 취지로 말하는 통화녹음의 녹취록을 피고인 측 증거로 제출하면서 A에 대하여 증인신청을 하였습니다. 형사소송규칙 제156조의5 제2항 제2호와 제3호의 사유가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주장하였습니다. 녹취록을 확보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A가 1심 법정에서 3번이나 증언을 하였다는 이유로 A에 대한 증인신청 채부를 보류하였습니다. 그 후 공판이 계속되는 동안, 변호인이 구술변론 PT와 B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A에 대한 증인신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야, 비로소 A에 대한 증인신청이 채택되었습니다. 다만, ‘1심에서 물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물어봐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A의 1심 증언의 신빙성을 탄핵해야 하는 변호인 입장에서 ‘1심에서 물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만 물을 수는 없었으나, 재판장님의 소송지휘를 따라야 했기 때문에 다소 제한적인 신문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A의 1심 증언의 대부분은 여전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고, 대신 A의 일부 증언 번복으로 피고인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져 피고인이 1심보다는 경한 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결과는 별론으로 절차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비슷한 일들을 수차례 반복하여 경험하다 보니 일천한 경험이지만 자연스럽게 형사 항소심의 성격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형사 1심의 사실인정존중’과 ‘형사 항소심에서의 제한적 증거조사’가 결합하는 경우 형사 항소심은 사후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사후심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렇게 되면 현행 3심제가 사실상 2심제로 운영되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는 않은지, 인신구속과 관련된 형사 문제에 사법자원의 효율적 활용 등과 같은 경제적 논리를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등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더 많은 경험과 학식을 쌓아 나름의 명확한 입장을 세우게 되는 날을 그리며 글을 마칩니다.
 

신민식 변호사
● 법무법인 케이에스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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