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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인과의 잘못된 만남에 관하여


 소송을 고민 중인 의뢰인과 상담할 때에 자주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이거 소송하면 얼마나 걸려요?’입니다. 자주 받아 온 질문인 탓에, 저는 기계적으로, “일반적인 경우에는 1심은 8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고요, 항소심은 4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리는데, 사건마다 다르다고 보시면 돼요.”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 답변이 민망해질 만큼, 제가 담당하였던 사건 중에는 1심만 4년 진행한 뒤 항소심까지 했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저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이 사건은, 공사업체가 공사를 완료하고도 발주업체로부터 변경공사에 관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여 소 제기한 사건으로서, 공사업체가 완료한 변경공사의 공사비 산정과 공사에 따라 설치된 설비의 하자 여부가 쟁점이 된 소송입니다. 공사비와 하자 여부 모두 그 입증을 위해 감정이 필수였기에, 저는 원고 소송대리인으로서 그 감정인의 선정단계부터 많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법원이 선정한 감정인은 서류상으로는 해당 분야에 적합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로서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으므로, 아무런 이의 없이 선정되어 감정이 진행되었는데, 감정의 초기단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충분한 전문가였던 감정인은 감정인 신문기일에서, 감정할 부분에 관한 원고 당사자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공사비 산정과 하자 여부에 관한 감정에 있어서 현장감정을 꼭 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일단 충분한 자료부터 제공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원고 소송대리인인 저로서는 공사비 산정과 하자 여부의 입증 모두를 위하여 공사현장감정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자료 확인이 되었으면 현장감정 일정을 잡자고 요청하였으나, 감정인은 이에 대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감정절차 시작 후 1년 이상이 지난 뒤에야 현장감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감정인 사이에서는 수차례 의견충돌이 있었고, 이미 의뢰인인 원고 당사자와 저 모두 감정인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 상태였으나, 감정인의 감정 진행에 대한 이의제기나 부정적인 의견제시가 감정 결과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적극적으로 의견개진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민사소송법 제336조(감정인의 기피) 규정에 따른 기피 신청 등도 고려한 바 있으나, 이미 감정이 시작된 지 오래이고, 서류상으로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었던 감정인에 대한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고, 역시 기피 신청을 하였다가 기각될 경우에 감정 결과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이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감정 신청 후 1년 6개월 이상이 지난 뒤에야 감정 결과가 나왔고,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 따른, 원고에게 불리한 감정 결과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감정 보완 취지의 사실조회 신청을 하여, 조금이라도 그 감정 결과를 만회해 보려 했으나, 감정인은 이러한 사실조회 신청에 대해서도 제대로 답변을 주지 않았고, 이미 소송절차가 4년이나 계속된 소송이어서 재판부 또한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고 판결선고를 하였습니다.

 판결 결과 역시 감정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의뢰인과 저는 그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여 항소하였습니다. 저는 항소를 하면서, 1심에서의 감정에서 누락된 중요 감정사항이 있다는 주장을 하며, 새로운 감정인을 통하여 누락된 사항에 대한 감정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에 관하여 항소심 재판부를 설득시키고자 노력하였으나, 사후심으로서의 성격이 점차 강화되던 당시 항소심에서는 이러한 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기존 감정인에 대해 다시 감정 보완 취지의 사실조회 신청을 하는 것으로 재판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굳이 언급하지 않고 생략하고자 합니다.

 위 재판을 떠올릴 때마다, 제가 변호사로서 미숙했던 부분들을 반성하게 됩니다.

 일단 감정인의 선정단계에서 이의 없이 감정인이 선정되었으면, 그 감정 진행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먼저 감정인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면서 의뢰인의 감정 요구사항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되지 않을까, 만일 감정인의 감정 진행에 이의가 있었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이의를 제기하여 이에 대한 감정인의 조치 여부에 따라 계속 감정을 진행할지 아니면 과감히 기피 신청을 할지 결정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이미 사후심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는 항소심에서 뭘 어찌해 보려는 안일한 생각으로 1심의 감정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소송대리인으로서, 담당 사건의 감정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감정인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에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글을 읽으시는 동료변호사님들에게 위와 같이 미숙했던 저의 경험이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지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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