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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애라 교수 인터뷰


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애라입니다. 서울법대 90학번, 사법연수원을 27기로 수료하고, 하버드로스쿨에서 LL.M.을 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민사소송법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는데, 논문을 아직 쓰지 못해서 가방끈 길이가 애매한 상태입니다(웃음). 1998년에 임관하여 2016년까지 18년간 판사 생활을 하다가, 2016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2년간 변호사를 했습니다. 이후 학교로 옮겨서 딱 3년 반이 되었네요.

Q. 판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디셨는데, 법원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판사와 로펌 사이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이라 변호사 일이 더 어울리지 않겠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당시 모 교수님께서 변호사를 하면 일 년에 최대 30 ~ 40건을 처리하지만, 판사가 되면 일주일에 3 ~ 4건 판결을 쓰니 훨씬 많은 사건을 다룰 수 있고, 공직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에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 법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10년의 법원 생활 동안 한마디로 자평하면 어떤 법관이셨나요?

 ‘자존심이 있는데, 내 이름 걸고 하는 건데 재판 엉터리로 해서 되겠는가’라는 유형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또당사자와 사건에 미안해서라도 끝까지 심리하고, 끝까지 기록을 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달리 말해서, 의문이 다 해소되어서 만족할 만한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 보고 또 보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Q. 서울고등법원에서 국제거래 전담 재판부에 재직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유학을 다녀오자마자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법원행정처 기조실 산하 국제심의관실에 배치되었습니다. 국제심의관실에서 각종 국제행사 업무, 단기 해외연수 업무 외에도 사법공조 업무(외국송달, 국제 증거조사 연구 등) 등 국제사법 쪽 실무와 연구를 할 기회가 있었고, 국제심의관실을 떠난 후에도 국제사법학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관련 논문도 꾸준히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고등법원에 갈 때, 희망하던 국제거래 전담부에 배치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국제사법, 국제민사소송법 분야의 논문을 매년 한 편 정도씩은 쓰고 있습니다.

Q. 법원 내에서 전담 재판부나 전문분야는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판사 시작할 때만 해도 경력법관은 소수였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처음 판사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커리어 초반에 어떠한 사무분담을 맡는가에 따라 우연히 전문분야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에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이제는 100% 경력법관제라, 판사 이전에 어떤 경력을 쌓았는지, 변호사 시절 어떤 사건을 많이 다루었는지에 따라 초반에 그와 관련된 전담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전문 경력이 없더라도 본인의 희망 피력이 있다면 그쪽 전담으로 배치되기도 합니다. 또 희망하는 전문재판부에 배치되지 못하더라도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한다거나, 연구논문도 쓰고 대학원에 가기도 하면서 추가적인 노력을 하면 어느 순간 그 분야 전문가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전문성을 인정받는 데에는 우연적 요소도 개입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Q. 법원을 나오게 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올 당시 어떤 느낌이셨나요?

 법원에서 비교적 선호되는 보직을 많이 거친 편인데, 주변에서 잘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 경계심이 들었습니다. 저보다 연구도 열심히 하시고 기록도 열심히 보시고, 사건에 몸을 던져서 더 헌신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만한 실력과 헌신 없이 운만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판사 생활을 20년 가까이하고 40대 중반이 되니, 과연 정년까지 법원에 남아 있는 게 좋을지, 다른 일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하면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고, 한 번 고민을 하게 되니, 이렇게 다른 길을 갈지 말지 고민할 시간에 그냥 다른 길을 가 보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사로서 법대 위에서 했던 판단이 정확한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현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요컨대 한 번 사는 인생, 여러 경험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법원을 나오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사표를 낼 때에는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비장함이 있었습니다. 당시까지 알고 있는 사회생활이 전부 법원 생활뿐이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익숙한 안온함에 안주하다가 정년이 되면 왜 다른 것을 해 보지 않았는지 후회가 될 것 같아 결심했습니다.

Q. 법원을 나오기로 한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하시나요?

 결과적으로는 나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법원에 있을 때, 기록 보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딸깍’하면서 심증이 형성되고, ‘이게 결론이야’라고 맞아 들어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심증을 바탕으로 판결을 썼고요.

 그런데 법원을 나와서 보니, 판사의 확신과 당사자, 변호사가 아는 사실 간에는 백만 광년 정도의 거리가 있더라고요(웃음). ‘판사는 확신을 갖고 판결을 썼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실제 사실관계랑 다른 판단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의외로 제법 있었습니다. 법원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점을 절감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Q. 변호사 생활은 법대에 계실 때와 어떻게 다르셨나요?

 변호사를 해 보니 완전 자영업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반(半) 자영업자로서의 비애가 있더라고요. 재판의 승패, 사건의 수임, 의뢰인과의 관계 등에 있어서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또 법원 내에서 인정받던 것이 변호사로서의 경쟁력으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스스로 어떻게 변호사로서의 경쟁력을 키울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업무적으로는, 판사가 확신하게 된 사실이 진짜 사실이 아닌 경우들도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판사님들은 사실 ‘내가 이게 사실이라고 확신하는 이상 실제로도 이런 사실이 있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판사가 실체적 진실 발견과 사실인정에 대한 확신을 많이 가질수록, 소송법상 보장된 절차적 권리를 생략하게 되죠. 법원에 오래 있다가 나온 제가 이렇게 느낄 정도라면, 실제 재판실무에서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가 판사의 확신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소송절차에서는 당사자권 보호가 미흡합니다. 법문에는 절차권이 다 보장되어 있는데도, 변호사가 증인신청이나 감정, 검증신청을 한 번 하려면 판사에게 읍소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재판부별로 편차가 크고요.

 재판은 증거자료가 있어야 사실을 인정하고 확신을 얻는 것일 텐데, 증거자료에 구멍이 듬성듬성 뚫린 상황에서 한두 개 증거의 조각을 갖고 고민을 한다 한들 어찌 결론이 정확히 나올까요? 또 항소심의 사후심화가 방향성은 옳더라도, 1심에서 증거조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항소심의 사후심화를 너무 강하게 추진하는 것은 우리 소송 현실에서 신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Q. 소송에서 절차적 권리의 보장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증거신청을 받아줄지 말지에 관하여 재판부별, 사건별로 편차가 크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결론이 어찌 되든 일단 절차에 관해 말발이 먹힐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판사를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설문조사를 해 보면 판사보다 변호사들의 경우에 전관예우가 있다는 답이 많은데, 당사자가 판사를 아는 변호사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재판부마다 절차적 권리 보장의 편차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문혁 교수님이 사법정책연구원장 임기를 마치시면서 ‘우리나라 판사들이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을 제대로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공감합니다.


Q. 2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시면서 변호사 비밀유지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변호사 비밀유지권에 대하여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소송에서 변호사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변호사를 하면서 절감했습니다. 만약 소송이라는 것이 땅속에 묻혀 있는 실체적 진실을 판사가 발견하는 것이고 변호사는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니,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변호사의 역할은 한정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변호사로서 사건을 맡아 하면서, 사건의 실체는 실제로는 변호인 내지 소송대리인을 통해 형성이 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결국 재판에서의 주역은 누군인가가 문제되는데, 당사자주의에서 재판의 주인은 쌍방 당사자와 이를 대리하는 소송대리인이어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당사자 본인이 주역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각종 법리적 검토와 주장을 비법률가가 할 수 없기에, 변호사의 역할이 더 강조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오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호사가 옥석을 가려 변론 방향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한 내용은 누구도 볼 수 없게 해야 합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찾아가서 한 이야기를 나중에 누군가 볼 수 있다고 한다면, 환자가 부끄러운 내용은 다 빼고 말하겠죠. 마찬가지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이야기를 언젠가 털어볼 수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호사를 믿고 모든 이야기를 할까요? 대한민국에는 헌법을 비롯해 수많은 법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당사자 혼자서는 그 법을 다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법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있어야 하는데, 법률지식이 있는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면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수사나 행정조사 과정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하고, 의뢰인이 갖고 있는 변호사와의 상담자료를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또 회사를 압수수색하면 법무팀부터 턴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법무팀에 가 보면 변호사가 보내 준 의견서라든지, 사건 관련 상담 메모라든지, 수사절차에서 예상 대응방안을 정리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으니, 수사기관이나 행정청에서 이것부터 들여다본다는 것이죠. 증거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나중 문제고, 그러한 내용이 노출될 수 있다면 누가 변호사와 안심하고 상담을 할까 싶습니다. 변호사를 멀리하게 되면 사회 전체의 준법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치주의의 첫 단계는 변호사 비밀유지권의 보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변호사 비밀유지권 보호를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와 관련하여 바람직한 판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판사 입장에서는 변호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사건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싫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귀를 닫거나, 변호사의 역할을 경시할 우려가 있습니다.

 실력 있는 변호사가 제대로 된 주장과 증명을 하여 순수하게 논리와 노력을 통해 판사를 설득하면 이길 사건도 지고, 질 사건도 이길 수 있습니다. 판사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게 아니므로, 판사는 다양한 주장이 펼쳐질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주고, 당사자가 주장과 입증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후에 이를 바탕으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

 판사 중에서는 절차보다는 실체에 방점을 찍고, 직권주의적으로 사건을 파헤쳐 결론을 내리는 법관이 훌륭한 법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처분권주의, 변론주의 측면에서 위험한 발상입니다.

Q. 2018년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기신 이유가 있을까요?

 2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재미있고 보람차게 했습니다. 많지 않은 사건이지만 전심전력 열심히 수행했고, 결과도 대체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굉장히 많고요.

 그런데 이렇게 몰입해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중적으로 특정 시기에 몰두해서 일하다 보면 실력도 확 늘고 배우는 것도 많아 좋은데,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또 한편으로, 판사나 대형 로펌 변호사나, 아무래도 주어지는 일을 할 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로펌의 시니어 변호사급에서는 직접 페이퍼 워크를 하는 비중보다 주니어 변호사의 초안을 고치고 지휘하는 관리감독 업무의 비중이 높은데, 그러다 보니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더라도 직접 연구하기는 어렵고, 공부를 충전하지 못한 채 조금씩 소진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철같은 의지와 지력, 체력이 뒷받침되는 아주 훌륭한 분들은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도 학교에 나가고, 책도 쓰면서 일과 연구를 병행하지만, 부족한 저로서는 너무 늦기 전, 연구 쪽으로 선회하기로 했습니다.

Q. 직접 경험하신 교수는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매우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업무 시간은 판사 시절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지만, 교수의 경우 언제 강의를 할지,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할지, 학생지도와 연구 대외활동의 비율을 어떻게 할지 같은 것들을 모두 스스로 정할 수 있어 자유도가 정말 높습니다. 방학이 있다는 장점도 있네요.

Q. 작년부터 SK하이닉스 사외이사를 맡고 계시는데, 사외 이사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사회에서 주총 결의사항을 제외한 회사 주요사항을 결의합니다. 이사회가 전부 사내이사로만 구성되면 오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일정 비율 이상으로 사외이사를 두어 독립적으로 각종 내부통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매월 사외이사회 1회, 이사회 1회를 하고, 지속경영위원회, 감사위원회 등 소위원회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Q. 법조인이 아닌 ‘인간 한애라’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명랑소녀

Q. 독서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으신지요?

 최근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의 신간, 『노이즈(Noise)』를 읽고 있습니다. 각종 판단에서 왜 노이즈가 생기는가를 분석한 책인데, 판사의 판결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어슐러 르귄이라는 작가도 좋아하는데, 다채로운 관점에서 재밌는 이야기들로 세상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작가입니다.

Q. 지금까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오셨나요?

 진인사대천명.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서 하얗게 불태웠다면 일이 잘 되든 못되든 후회가 없더라고요. 모든 지점에서 그럴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 보자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있다면?

 변호사 비밀유지권, 변호사의 역할과 책임, 법원의 증거조사 같은 이슈와 관련하여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해서 우리나라 소송에서의 절차권 보장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것인가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웹툰 작가를 하거나 이과로 진학하여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개발해 보고 싶습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1998년의 예비판사 한애라’를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인가요?

 새롬기술은 사지 말고 삼성전자를 사라(웃음). 농담이고, 법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해 줄 것 같습니다.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1년의 후배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직역 중에 법조인은 자격이 있고 안전망이 있어 전직이 비교적 용이한 직업입니다. 처음에 만족스럽지 못하게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커리어는 키워 나가기 나름입니다. 초반 여건이 조금 안 좋더라도,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경력을 쌓고 능력을 발휘하면 2 ~3년 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는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 기대한 만큼 풀리지 않았다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전문분야를 정해 역량을 끊임없이 키워가면, 어느 순간 빛을 발하면서 결국 그 역량에 맞는 자리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과감한 커리어 선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바닥은 결국 공부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곳이니, 항상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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