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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서초동 숨은 맛집


 신림동 고시촌과 서초동 법원촌은 어딘가 닮아 있다.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들, 두꺼운 가방 그리고 고정된 식당. 매일 가는 식당이 정해져 있거나 그 스펙트럼이 넓지 않아, 몇 군데 식당을 순회하는 데에 그쳐 머지않아 질리게 된다. 고시생과 변호사는 하루 중 쉴 수 있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닮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찾아가는 식당이 몇 군데 없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일정 부분 메말라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고시촌에서도 법원촌에서도 밥 먹는 일에 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필사적이었다. ‘오늘 뭐 먹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는데, 성격상 여럿이서 우르르 다니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편이 많아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점심 무렵의 복작복작한 시간대를 피해 한적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다니거나, 저녁에 술을 한잔 할 때에도 군데군데 테이블이 겨우 채워져 있는 곳에 자연히 발을 붙이게 되었다.

 오늘은 나에게 소중한,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숨은 맛집과 선술집을 몇 군데 소개하고자 한다. 회원분들께서는 매일 가는 곳 말고 한 번씩 찾아가 보아도 좋을 것 같다.
 

1. 이심전심 양선지해장국

 교대역 5번출구 인근. 건너편의 ‘이심전심 언양불고기’ 집과 쌍둥이로 영업 중인 해장국집이 있다. 건너편의 언양불고기집은 큼지막하게 차려 놓아 점심 무렵에 북적북적한데, 이곳은 비교적 작고 한산한 편이라 좋다. 대표메뉴는 양선지해장국과 뼈해장국. 양평해장국 스타일의 양선지해장국은 고추기름을 뚝배기에 한바퀴 두르면 특유의 매콤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선지의 신선도도 뛰어나 탱탱한 식감을 자랑하고, 양(소내장)은 테이블에 마련된 겨자소스에 찍어 먹으면 새콤하게 즐길 수 있다. 식사나 해장으로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수준. 또 하나의 대표메뉴인 뼈해장국은 하루에 정해진 수량만큼만 팔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지나면 없을 수 있다. 육수는 시골 잔칫집 큰 솥에 시래기와 뼈를 한가득 삶아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구수한 맛이다. 고기는 부드럽고, 양도 어마어마해서 가성비가 뛰어난 곳.
 

2. 고래똥

 대법원에서 사랑의 교회 쪽으로 내려와 예술의 전당 방면으로 느적느적 걷기를 10여 분,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해산물 음식점이 있다. 음식점이라기엔 저녁에만 열고 새벽에 문을 닫으니(코로나 전), 선술집 내지 포장마차가 더 어울리겠다. 이 집은 여러 가지 면에서 탁월한데, 먼저 해산물의 신선도가 그렇고 그다음으로는 분위기다. 주로 주문하는 메뉴는 해산물 모둠. 석화, 전복, 소라, 멍게, 돌멍게, 비단멍게, 가리비, 광어, 연어, 새우, 개불 등등 제철 해산물이 한상 가득 나온다. 손님들이 많지도 않아 하루에 그렇게 많은 재료를 준비하지도 않고, 신선한 녀석들로만 잡아 즉시 썰어내기 때문에 음식들이 모두 살아있다. 한데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이런 후미진 곳을 찾아가는 것은 음식 맛 때문만은 아니다. 최소화한 인테리어에 나무의자, 이보다 더 진솔해질 수 있을까 하는 약간 어두운 조명들이 어우러져 최적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이곳은 주방장이 1명이고, 여러 가지 해산물을 써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급적 예약을 하고 찾아가시기를 추천한다.
 

3. 수작

 서초동 놀이터 옆이라고 하면 알아채실까. 매번 갈 때마다 ‘놀이터 옆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더라’ 하고 지도를 찾아보게 만드는, 교대역 상권의 중심가에 위치함에도 길을 헤매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곳이다. 입구 간판에는 ‘문어, 낙지, 육회, 재즈’라고 써놓았다. 낙지와 육회는 메뉴에도 없고 재즈도 흘러나오지 않지만, 맛은 보장한다. 이곳에는 참으로 다양한 메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문어삼합과 톳쌈, 고등어초회 그리고 엉뚱하게도 토마토 파스타이다. 구운 식빵을 토마토 파스타에 빙 둘러서 메뉴 이름은 돌림빵. 의외의 조합이지만 소주와도 잘 어울린다는 것이 손님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더불어 몇 가지의 와인과 세계맥주가 있고, 이 집을 찾아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음악이 있다. 이 집엔 유재하와 김광석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LP 판으로 80, 90년대 음악을 틀어 주셔서 그 시절 감성에 흠뻑 취하기에 좋다. 다만 이곳은 다 좋은데, 내부가 약간 좁고 의자가 불편하다는 점은 감안해야겠다.
 

4. 신남원추어탕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곳이 이제 막 영업을 종료한 곳이라 애석하다. 주인장님의 은퇴로 최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추어탕집. 여기는 숨은 맛집이라기보다는 등잔 밑의 맛집이랄까. 자주 지나다니는 길인데, 잘 안 들어가게 되는 곳이다. 큰 뚝배기에 한 그릇 담긴 추어탕을 보글보글 끓이다가 조금 덜어서 제피가루를 잔뜩 넣어 얼얼하게 즐기면 최고의 식사가 완성. 거기에 더하여 추어튀김까지 함께하는 경우에는 금상첨화. 영업의 마지막 날 찾아가서 추어숙회, 추어튀김, 추어탕을 먹고 결국에는 추어탕 2인분을 포장해 와 집에서까지 여운을 즐기던, 참으로 아끼던 곳인데 아쉬움이 많다.
 

식당을 나오며

식당을 나오면서 한번 뒤돌아보게 되는 집. 그런 식당이 참 좋다. 그런 곳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없던 힘도 나는 듯하고, 좋은 기분으로 일을 마주할 수도 있다. 오늘도 법원촌에서 숨은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아가 본다.

 

임다훈 변호사
● 법무법인 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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