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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통해 살펴보는 미얀마 사태의 전망


미얀마 사태의 발발

 우리에게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전두환 前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으로 잘 알려진 미얀마(당시 국명 ‘버마’)가 최근 군부 쿠데타에 따른 민간 학살로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 속에 조명되고 있다.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미얀마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인 동시에 군부 탄압의 대상이 되어 과거 우리나라의 민주화 시절 모습을 연상시킨다.
 

미얀마의 군부독재 체제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서남아와 동남아를 잇는 중요한 관문으로 지정학적 요충지이나, 내부적으로는 소수종족들의 독립운동과 이에 대한 무력진압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사회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개혁 · 개방을 표방하고 있는 군부가 여전히 통치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미얀마는 1948년 아웅산 장군의 주도로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을 이루었으나, 정권을 이양받은 민간정부(1948 ~ 1962)의 무능과 대내외적 혼란에 따라 군사정부가 수립되었고, 군부는 사유재산을 국유화하는 등 민간에 대한 철저한 우위를 잠식했다.

 더욱이 아시아권 국가로 유 · 불교의 도덕관념이 민족성에 내재되어 있고,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군부와 민간이 지속 충돌하고 있는 모습에서 분단국가인 우리로서는 미얀마의 과거-현재-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 작금의 사태 진전이 미얀마가 장차 북한 혹은 남한의 길을 걷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전망도 그와 일맥상통하는 터이다.
 

미얀마 사태의 향후 전망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먼저 거친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을 통해 미얀마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자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은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 운동처럼 결국 군에 의해 학살 · 진압되어 군의 권력이 다시금 확인되고, 미얀마의 군부독재는 잠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군의 축적된 정치 · 경제적 기득권을 민간이 따라잡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상황1)이고, 민주화 세력의 체계적 결집과 군부 대응 역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탓으로 안타깝지만 불가피하다.

 하지만 점차 안착되고 있는 민주주의,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통한 우회적 개혁 · 개방 촉구,2) 끊임없이 저항하는 반군세력의 무력반발 등 지금과 같은 군부독재가 결코 영원할 수는 없으며, 우리나라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미얀마의 개혁 · 개방을 통한 민주화 및 경제발전의 선진화 공식은 차츰 완성될 것이다.
 

미얀마의 종국적 과제

 사실 우리나라의 6.10 민주항쟁에 굴복한 6.29 민주화선언처럼, 미얀마 민주화의 모멘텀도 전 국토와 전 국민에 걸쳐 민주화 운동이 봉기 수준으로 거세게 일어나고 이에 따른 집권층의 변화 의지가 결합되어야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비교정치사적 관점에서도, 거듭되는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의 대립은 군부독재의 과도기를 거쳐 민간정부가 구성되기 위한 일련의 필연적 진통이라는 점에서 미얀마는 군부와 민간의 줄타기를 넘어 국민화해와 국가통합을 이뤄야 하는 보다 근원적인 숙제를 안고 있다. 민주화와 사회통합의 여정은 동서고금을 막론, 가혹하고 지난하지 아니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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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국의 군부와 같이 미얀마의 군부정권도 이미 자신의 이익 추구를 극대화하는 배타적 직능전문집단이 된 지 이미 오래이고, 실제로 국가 경제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2) 미얀마는 서방세계의 압박을 탈피하고 군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대외전략의 일환으로 중국과의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 정권의 최고권력자인 민 아웅 훌라잉이 러시아를 매년 순방하는 등 군사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신성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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