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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권영준 교수 인터뷰


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민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권영준입니다. 사법연수원을 25기로 수료하고 해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후에, 1999년부터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각급 법원의 판사로 근무하다가 2006년에 서울대학교로 옮겨서 현재까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Q. 1999년 판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디셨는데, 법원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학부 재학 시절에 교수가 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구체적으로 교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유학을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요. 제일 학구적이라고 느껴진 곳이 법원이라 자연스럽게 법관을 지원하게 됐습니다.

Q. 약 7년 반 법원 생활 동안 한마디로 자평하면 법관으로서 어떤 법관이셨나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열심히 배우는 법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법원에 들어가서는 모르는 것도 굉장히 많았고, 감도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동료법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고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느끼고 축적한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Q. 제35회 사법시험 수석합격자로 수석 임관하시고, 2006년에 행정처 기조실 판사로 계시다가 모교로 오셨는데, 이유나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좀 뒤늦게 석사,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판사 시절인 2000년에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법원에서 유학을 보내 줘서 2004년에 하버드에서 LL.M 학위도 취득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2006년 2월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4월 경 우리 서울대 교수님 몇 분께서 교수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적극적으로 권유를 해 주셨습니다. 교수의 기회라고 하는 것이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기도 했고, 결국 고민 끝에 기회를 잡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 한 결정인 것 같습니다.

 법원에서의 삶도 굉장히 보람이 있고, 행복했습니다. 법원에 평생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제가 느낀 바로는, 재판은 참 보람 있는 일이지만 끝나면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시작할 때보다 끝나면 ‘아휴 이제 재판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는 제 모습을 생각해 보니,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설레고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강의가 내 삶을 더 행복하게 해 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Q. 법원을 나오니 어떠셨나요? 얻게 된 것, 잃게 된 것을 한 가지씩 꼽자면?

 교수가 되면서 훨씬 큰 자유를 얻었습니다.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요. 저는 그런 자유와 창의성이란 가치에 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법원 내 ‘밥조’를 잃게 된 것은 굉장히 아쉽습니다. 제가 법원에서 제일 좋았던 것이 거의 일상적으로 다른 판사들과 함께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식사시간 ‘밥조’ 역시 그렇지만 심지어는 단독 판사를 할 때도 다른 단독 판사들과 계속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일상적으로 주어졌습니다. 학교는 교수님들마다 개인적인 삶의 모습이 다 달라서, 법원의 ‘밥조’처럼 언제나 같이 밥을 먹으면서 토론할 수 있는 고정된 집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료, 선, 후배법관들과의 일상적인 만남과 토론, 가르침이 가장 그립습니다.

Q. 혹시 법원을 나와 학교로 오신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라던가, 생각이 달라지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법원에 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각 법률 개념이나 법적인 쟁점마다 드넓은 바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다소 기계적으로 외우고 적용하던 것들이, 지금 보니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또는 문화적으로 굉장히 드넓은 배경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훨씬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법학이 굉장히 역동적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계속 변하다 보니, 사회를 규율하는 법이나 법체계도 조금씩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개별 사건이나 판례에 함몰되어 있다 보면 그런 역동성을 간과하기가 쉽습니다. 학자로서 법학을 대하게 되면, 더 큰 그림을 전문적으로 보면서, 역동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가 과거에 알던 법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의 법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만약 다시 법대에 선다면, 다른 법관이 되실 것 같으신가요?

 기본적으로는 사람이 잘 안 바뀌니까 비슷할 것 같긴 합니다(웃음). 그래도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조금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사건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판례를 그대로 맹종하기보다는, 그 사정이나 판례에 숨어 있는 가치나 의미 같은 것들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판례를 적용하거나, 판례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조금 더 편하게 개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2009년과 2010년에 각 미국 Duke Law School과 독일 -Hamburg-Max Planck Institute 방문교수로 계셨습니다. 2018년에는 하버드에서, 2020년에는 동경대학교에서 각 강의를 하셨고요. 방문교수 생활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편하고 좋았지요(웃음). 아무래도 한국에 있는 것만큼 바쁘지 않았고요. 그런데 외국에 나가는 주된 이유는 한국과의 연락을 끊기 위함입니다. 한국에서는 너무 여러 사람들과 얽혀있다 보니 때로는 연구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 있으면 연락 또는 모임의 빈도가 확실히 줄어듭니다. 그리고 다른 언어를 쓰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다른 환경에서 공부를 하면, 확실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외국 학자들을 만나거나, 외국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한국법상 개념과 원리들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고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Q. 학교에서 우수강의상을 여러 번 수상하시고, 변호사단체에서 민사판례 강의도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단에 서시거나 강의를 하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개인적인 비결이 있으시다면?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만, 학생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 보는 스타일입니다. 가령 약관규제법의 취지를 고려하여 수업약관을 만들어서 학생들로부터 서명을 받은 적도 있고, 인형들을 사용하여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비대면 강의 또는 채팅 기능이 굉장히 활성화되고 익숙해졌지만, 제법 오래전에 실시간 채팅을 통한 질문 시스템을 실험해 본 적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질문은 안 하는데, 채팅은 너무 잘 해서요. 그래서 채팅으로 질문을 하면 교실 앞 스크린에 질문내용이 바로 뜨는 기능을 활용해 본 적이 있습니다(웃음).

 그리고 공동작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번 학기 일반대학원 강의에서는 미국법의 중요한 개념들을 해설하는 단행본을 만드는 작업을 수업 시간에 하고 있습니다. 수강생 모두가 참여하여 공동 집필자가 되는 것이지요.
 


Q. 민법학자로서 비교사법, 저작권법, 엔터법, 불법행위법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하셨는데, 최근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민법학의 사상적 기초입니다. 그래서 계약법이나 불법행위법, 소유권법처럼 기본적인 민법 영역의 배후에 존재하는 이론 체계나 가치 체계, 사상 체계, 역사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요. 작년에 이런 것들을 모아 민법학의 기본 원리라는 단행본을 내기도 했습니다.

 최근 관심사의 경우, 세상이 계속 변하니 관심사도 계속 변합니다(웃음). 금년을 예로 들자면, 데이터 보호에 관한 논문, 코로나와 계약법에 대한 논문도 썼고, 2020년 민법 판례 동향이라는 논문도 썼습니다. 계속적 계약에 대한 논문도 두 편 쓴 상태입니다. 9월 현재 쓰고 있는 논문은 두 개인데, 하나는 ‘펀드 불완전 판매’에 관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좀 황당한 주제이긴 하지만, ‘법의 개인화’에 관한 글입니다. 법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내용으로 적용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상식인데, 그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서 맞춤형 법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차원의 논의입니다. 사실 위자료를 산정하거나 양형을 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법의 개인화나 개별화가 이미 많이 진행되어 있습니다.

Q. 강의, 연구, 대외활동, 기타 보직 활동을 겸하시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어떻게 안분하시나요?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절대적인 시간은 연구 분야에 가장 많이 쓰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분야들도 당연히 중요하고, 모두 균형 있게 잘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구에만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강의를 소홀히 한다거나, 학교 일은 전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다 해야 하는데, 다 하기가 쉽지는 않지요. 접시 돌리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러 개의 접시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으니, 계속 떨어지지 않게 돌려야 합니다.

 저 나름대로는 교집합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강의에도 도움이 되고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주제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지요. 특히, 대학원 수업의 경우 연구 주제와 관련한 과목을 개설할 수 있어 연구와 강의가 결합이 될 수 있습니다. 대외활동의 경우도 교수님들마다 취향이 다르시지만, 저는 연구와 관련된 대외활동은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Q. 직접 경험하신 법관과 교수 중 어떤 자리가 더 잘 맞으셨나요?

 법원에 있을 때 정말 좋았고, 굉장히 많이 배우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둘 중 하나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교수가 제 적성에는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간섭받는 걸 조금 싫어하는데, 법원 역시 다른 직장에 비하면 굉장히 독립성이 강화되어 있지만, 법원도 조직이니까요.

 물론 조직이라서 좋은 점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는, 그야말로 자유, 그 자체입니다. 자유는 한 번 맛보면 비가역적입니다.

Q. 2006년 학교에 오실 때와 지금 마음가짐에 변함이 없으신지요?

 제가 2006년에 학교에 올 때, 그때 마음가짐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절대로 서울 법대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우리 법대의 연구, 강의 역량에 플러스가 되는 교수가 되고 싶다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입니다.

 다만, 처음 학교에 올 때와 달리 한 가지 더 드는 생각은, 이제 저도 어느덧 나이가 좀 들어서 다음 세대에 학문을 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실제로 제가 지금 ‘학문 후속세대 양성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Q. 바이올린 연주가 수준급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애정하는 작곡가나 연주자가 있으신가요?

 연령에 따라 계속 달라졌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음악을 전공하셔서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음악가로 키우려고 계속 교육을 시키셨고,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전공을 전제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실 어릴 때는 나가서 놀고 싶은데, 콩쿠르 연습을 해야 하니 굉장히 괴로워서 좋아하는 작곡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공부로 진로를 틀고 나니 오히려 음악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작곡가 중에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도 그렇고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피아노 협주곡에 녹아 있는 정서나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정경화의 연주를 들어 보면 굉장히 감성적인데, 저는 그런 부분이 참 좋습니다. 조금은 거칠고, 기술적으로는 실수라고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부분이 훨씬 인간적이고 좋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조슈아 벨의 연주를 듣고 굉장히 좋아하게 됐습니다.

Q. 2남 2녀를 두셨는데, 법조인을 권하셨나요?

 권하지도 않고, 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둘은 컴퓨터 사이언스를 하고 있고, 막내는 서울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셋은 진로가 어느 정도 정해진 것이지요. 남은 딸이 경영학을 하고 있어서 유일한 문과입니다. 딸과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데, 법학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해서, 바로 ‘오케이’ 하였습니다.

Q. 교수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일단 그분의 유전자를 제가 많이 이어받았습니다. 또 아버지가 교수셨기 때문에, 제가 교수가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교수가 되어 행복하고, 아버지께도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때로 돌아가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내 나이 때 어떤 모습이셨을까’, ‘무슨 말씀을 하셨었나’ 이런 것들을 자꾸 돌이켜 보게 됩니다.

Q. 지금까지 어떠한 좌우명 혹은 가치관으로 살아오셨나요?

 두 단어로 요약하고 싶은데, 첫째는 배움이고, 둘째는 봉사입니다. 저는 배우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하고, 그게 기쁨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냥 배우는 것에서만 끝나면 허무한 것 같고, 배운 것을 좋은 데 써야 합니다. 이것을 거창하게 봉사라고 표현한 건데, 결국 봉사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배움에 치중을 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될 것 같습니다.

Q. 인생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하나를 이야기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영화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태평양 전쟁 중 이오지마 전투라는 소재를 갖고 공격하는 미 해병대의 시각과, 방어하는 일본군의 시각에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하나의 현상을 놓고 이렇게 시각과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재판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법관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정말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현상을 달리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늘어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자기 도그마에 빠지면 진실의 한쪽 면만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것인가요?

 예, 좀 더 정확히는 법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1999년의 예비판사 권영준을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인가요?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살뜰하게 대하라.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1년의 후배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 눈앞에 있는 우리 로스쿨 학생들이 곧 변호사가 될 텐데,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말 똑똑하고 성실하고, 달리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볼 땐 인성도 대체로 훌륭합니다. 참 다양한 사고와 시각을 가지고 있고요. 정말 훌륭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하고, 현실의 벽이 높다 보니 좌절도 하고, 자존감도 낮아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공허한 말이 아니고, 우리 후배들 정말 똑똑하고 자존감을 충분히 가질 만한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잘 돌보라는 이야기를 꼭 해 주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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