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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클래식
스코틀랜드 환상곡 - 막스브루흐(좌)  /  첼로 협주곡 - 드보르자크(우)


“○○과 사랑은 정신의 두 날개이다” -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
“○○은 인간이 알고 있는 최고의 것, 그리고 천국” - 조지프 애디슨

 위의 두 사람이 말한 ‘○○’은 무엇일까? 독자들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음악이다. 필자는 음악전문가가 아니다. 하이엔드 턴테이블이나 스피커도 없고 따로 음악감상실도 없다. 그러나, 트로트뿐만 아니라 클래식도 많이 좋아한다. 오늘은 지난날들의 추억 속에서 함께했던 클래식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가을날의 브람스

 천진무구한 삶을 살았던 천상병 시인은 말년에 막걸리와 브람스의 교향곡에 흠뻑 취해 살았다. 그는 왜 그렇게 브람스에 깊이 빠졌을까. 필자는 젊은 시절에 영월지원 판사로 근무했었다. 틈날 때마다 낡은 차를 몰고 관할구역 내의 풍광 좋은 곳들을 찾아다녔다. 그중 정선에서 하진부로 가는 길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도 호젓하고 낭만적인 드라이브웨이가 또 있을까! 어느 낙엽 지던 가을날 가리왕산 연봉과 오대천 물줄기 사이에 아련히 한 줄기 흰색 띠처럼 펼쳐진 길 위에서 듣던 브람스의 4번은 젊은 판사의 가슴에 절절한 감흥을 안겨 주었다. 브람스는 평생 클라라슈만을 연모하면서도 한 마디 고백조차 못하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 애틋한 사랑의 슬픔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하다. 아마도 천상병 시인은 브람스의 이런 순수함을 깊이 흠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가을에 브람스를 들어 보자. 그 투명하고 고결한 고독의 우물 속에 두레박을 던져 넣어 보자.
 

이별의 선물, 스코틀랜드 환상곡

 필자는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었다. 첫 임지인 한국은행 전주지점에서 한 일 중 제일 기억나는 것은 무주, 진안, 장수 등의 오지 마을을 다니면서 저축계몽영화를 상영하던 것이다. 마을에 들어서서 촌장 어르신에게 큰절을 올려 상영 허가를 받고 해가 기울면 정자나무 가지에 스크린을 걸고 주민들과 동네 강아지들을 상대로 필름을 돌렸다. 시골에서 무작정 가출하여 구로공단에서 고생하는 순이가 보내 준 돈으로 닭을 키우고 그 닭들이 돼지가 되고 하는 등의 진부한 스토리를 보면서도 촌로들은 도시로 떠나간 자식들 생각에 어깨를 들썩이며 울곤 했다. 사실 돈 한 푼 없는 화전민들에게 저축을 강권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서울로 전근 가게 되었다. 함께 영사기를 돌리던 동료들이 이별의 음악회를 열어 주었다. 그때 턴테이블에 얹힌 것은 막스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이었다. 산골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나누면서 서로 잡은 손을 차마 놓지 못하던 그 이별의 밤에 흐르던 애절한 선율. 지금도 다시 들으면 까마득한 수십 년 전의 그리운 눈빛들, 따뜻했던 포옹이 떠오른다. 음악이 되살리는 추억의 힘은 웅장하다.
 

불면의 밤에 듣는 드보르자크

 은행을 다니면서 야간대학에 입학했고 고시공부를 하게 되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자리에 누워도 쉽사리 잠들기 어려웠다. 온갖 법률용어들이 천정에서 난무하는 바람에 꺼지지 않은 연탄불처럼 머리가 뜨거웠다. 대책을 세웠다. 잠자리에서 조그만 카세트 플레이어로 드보르자크를 들었다. 그의 첼로 협주곡은 마치 다정한 어머니의 음성처럼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었다. 신세계 교향곡을 들을 때면 정신의 때가 씻겨나가는 것 같은 신선한 감동과 희열을 느꼈다. 그러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숙면을 했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그의 음악을 수백 번 들은 후 고시에 합격했다. 필자는 드보르자크 선생께 엄청난 빚을 졌다.
 

아들들에게 들려준 음악의 열매

 결혼하여 아내가 임신했을 때 모차르트와 하이든, 비발디를 많이 들려 주었다. 아이들이 태중에 있을 때는 은은한 실내악곡, 피아노소나타, 교향곡들을 듣게 했다. 아들들이 태어난 후에는 바흐와 베토벤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때때로 밤늦게 퇴근했을 때는 쇼팽의 피아노곡을 작게 틀어놓은 채 곤히 잠든 가족들의 평화로운 얼굴들을 오래오래 내려다보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성장해서 모두 음악을 좋아한다.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기타를 치더니 작곡도 많이 했다. 급기야 잘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우고 에릭 클랩튼 같은 기타 명인이 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속을 썩이기도 했다. 막내는 노래가 수준급이다. 음악은 인간의 내면을 밝게 성장시키는 힘이 있다.
 

깊은 명상으로 이끄는 라흐마니노프

 기도에 사는 필자는 과거 퇴근길에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가면서 자주 졸았다. 그러다가 문득 불쾌하고 음험한 느낌이 들 때 눈을 떠 보면 과천 경마공원역이다. 전문적 경마꾼들이 떼를 지어 타는 순간 눈을 감은 채로도 소름이 돋았다. 살아오면서 그런 종류의 외부 영향에 흔들리지 않도록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럴 때 듣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깊고 깊은 명상의 세계로 마음을 이끈다. 러시아 특유의 비장미와 서정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선율에 귀 기울이면 온몸에 감동의 전율이 인다. 세속이 사라진다. 라흐마니노프는 속삭인다.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마라. 욕심에 휘둘리지 마라. 아름다운 것, 영원한 것들을 동경하라!

 요즘 필자가 좋아하는 노래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다. 클래식은 진정 빛나는 별이다. 가을이 오면 베토벤, 브람스, 말러,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슈베르트 같은 옛 친구들이 새삼 그립다. 클래식도 트로트 못지않은 다정한 벗이 될 수 있다. 독자들 삶의 여러 장면 속에 클래식이 훌륭한 BGM이 되길 바란다.

 

황적화 변호사
● 법무법인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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