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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 역사적 인물에 대한 파괴적 해석의 한계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스토리에 재미를 더하고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최근에는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어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문화예술의 한 기법인 소위 팩션(faction : 사실을 뜻하는 fact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n의 합성어) 기법이 예술의 각 분야에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에 사실적 요소가 가미될 경우 특히 실존 인물의 인격권과 제작자 측의 예술표현의 자유가 충돌하게 되고, 이러한 기본권 충돌상황은 형사상 명예훼손죄 고소나 민사상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로 이어지게 된다. 실존하고 있는 인물의 인격권뿐만 아니라 실존했던 인물의 인격권이 문제된 경우, 死者 당사자의 인격권은 물론 그 자손의 경애·추모의 정이 침해되었는지도 문제가 된다. (박진애, “드라마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의 인격권과 예술표현의 자유? 소위 ‘팩션’ 드라마 관련 판례 분석을 중심으로-“, 『언론중재』, 2010년 봄.)
 
위와 같은 기법이 사용된 드라마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허위사실의 적시로 인해 그 인격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법원은 『① 드라마의 근본적인 제작목적이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정면으로 재조명하는 것인지 여부, ② 드라마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 중심인물인지 배경인물인지 여부, ③ 실존 인물에 의한 역사적 사실과 가상인물에 의한 허구적 이야기가 드라마 내에서 각 차지하는 비중, ④ 실존 인물과 가상인물이 결합된 구조와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드라마에 허구적 요소가 가미된 정도에 따라 차별적으로 판단하고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5. 9. 선고 2006가합66611, 2006가합73756병합 판결(서울 1945 사건).)  즉 허구적 요소보다 사실적 요소가 강조된 소위 논픽션(nonfiction) 역사드라마의 경우에는 허위사실의 적시 여부에 대하여 비교적 엄격하게 판단하나, 반대로 사실적 요소보다 허구적인 요소가 더 많은 드라마의 경우에는 시청자들이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 사이의 긴장관계를 강하게 인식하면서 드라마를 시청하므로 드라마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인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여 그 판단기준을 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 인물들은 자신에 대한 파괴적 해석을 어느 정도까지 수인해야 하는가?
 
예술작품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소재가 된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피해자는 그 예술작품의 창작자를 상대로 그로 인한 침해의 금지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만일 그 인물이 사망하였다면(현행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2(사망자의 인격권 보호)는 “사망한 사람의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이에 따른 구제절차를 유족이 수행할 수 있으나,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사망 후 30년이 경과한 때에는 구제절차를 수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망한 인물의 인격권이 침해되더라도 사망 후 30년 내에는 유족이 ‘망인의’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한 소송상의 청구를 대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유족이 망인의 인격권 침해로 인해 ‘자신들의’ 명예·명예감정 또는 망인에 대한 경애·추모의 정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동일한 청구를 할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예술작품이 그 소재가 된 역사적 인물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는 ‘예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이라는 모순·충돌하는 두 법익을 비교·형량하여 결정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시간이 경과할수록 객관적인 자료의 한계로 인하여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음에 불구하고 그 역사적 사실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 일반대중의 욕구는 증대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소재가 된 망인에 대한 유족의 추모감정은 점차 약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는 점, 균형있는 역사인식을 도출하기 위한 여론형성을 위해서도 역사적·공적인 인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서의 평가와 비판은 더욱 장려되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예술활동의 자유는 역사적 인물인 망인의 인격권 보호보다 우선하여 보호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앞의 서울 1945 사건에 관한 판결.)  이러한 판례의 기준에 따라 근현대 인물을 묘사한 드라마에 대해 후손들이 제기한 손배해상청구 소송은 대부분 원고 측의 패소로 끝났지만, 이러한 판례의 기준을 따르더라도 이번 <명량> 사건에 있어서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비대위의 주장에 힘이 실릴 것 같다. 
 
비대위가 허위사실이라 주장한 부분은 칠전량 해전 장면, 왜군과의 내통 및 이순신 장군 암살 기도, 거북선 방화, 안위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 등 4곳인데, 이 부분은 역사적 관점에서도 명백한 허위사실의 적시이다. 따라서, 판례와 같이 판단기준을 완화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거나 시청자들로 하여금 단순히 약간의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신숙주의 후손들이 제기했던 <공주의 남자> 소송에서처럼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허구라는 점을 방영 전 자막을 통해 고지하였던 것에 반해, 영화 <명량>에서는 그러한 고지 자체가 없었다. 
 
제작사로서는 시청자들의 역사적 진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공익성으로 인한 위법성 조각을 주장할 수 있겠으나, 배설 장군에 대해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자료 또는 정황이 없고, 그러한 근거자료 또는 정황에 기초하여 허용될 수 있는 상당한 추측·풍자 내지 과장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적시된 사실은 중대한 허위로서 후손들의 고인에 대한 경애·추모의 정을 수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침해하였다는 주장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등장인물의 세부묘사는 모두 픽션’이라는 자막을 삽입했음에도 실제와 혼동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하라고 결론이 났던 영화 <그때 그 사람> 판결을 생각해 볼 때,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 <명량>의 내용을 실제 사실로 인식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어째서 대기업인 배급사가 자막으로라도 각색 사실을 분명하게 명시하여 관객들의 혼동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가운데, 이 사건 고소의 처리결과 및 향후 민사소송의 진행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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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중혁 변호사
변호사시험 제1회
TV조선 사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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