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검열, 지식인에 대한 탄압, 티그레(Tigre)에 있는 내 집에 대한 습격, 내가 친애하는 친구들의 살해, 그리고 당신들과 투쟁하다가 목숨을 잃은 내 딸.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나는 거의 지난 30년간 작가이자 언론인으로서 자유롭게 내 의견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이같이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내 의견을 표현하게 되었다.
 군사평의회 집권 1주년, 여러 공문서와 연설의 형태로 1년간의 정부의 업적에 대한 논평이 있었다: 당신들이 좋은 결정이라고 한 것들은 실수들이고, 당신들이 실수라고 인정한 것들은 범죄이며, 당신들이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던 행위들은 재앙이었다…

 로돌포 왈쉬[Rodolfo Walsh(1927~1977)]는 아르헨티나의 작가이자 언론인이었지만, 왈쉬 자신은 작가 또는 언론인이라는 호칭보다는 전사 혹은 게릴라라는 호칭을 선호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펜으로 먹고사는 지식인의 삶, 그리고 총을 들고 폭압적인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전사의 삶의 경계선에 있었으며, 그 두 정체성 사이에서 번민했고 긴장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옳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집단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으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걸었다. 그는 글로는 아르헨티나 사회의 부조리를 비난했고, 총으로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군부에 저항했다. 왈쉬의 삶과 글은 혼란과 격변 속에서 부침을 거듭한 현대 아르헨티나와 함께했다.

 왈쉬는 1927년 1월 9일, 아르헨티나 중부의 리오네그로 주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아들로 태어났다. 왈쉬는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집안이 몰락하는 불운한 유년기를 겪었으며, 잠시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대학을 중퇴한 후 18세에 한 신문사에서 교정 작업을 맡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한평생 언론에 헌신하게 된다.

 왈쉬는 20대까지는 정치에 대해서 대체로 무관심했으나, 자주 들른 카페에서 우연히 들은 소문을 계기로 1957년 『학살 작전(Operación Masacre)』을 출간하면서 그의 글은 정치성을 띠게 된다. 후안 페론(Juan Perón)은 1946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되어 노동자의 지위를 개선하고 빈민층의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쳐 인기를 누렸으나, 점차 독재자의 면모를 보이고 보수적인 가톨릭교회와 충돌하면서 군부의 지지를 잃는다. 결국 군부는 1955년 9월 쿠데타를 일으켜 페론 정부를 전복시키고 군사독재정권을 세웠는데, 페론을 지지한 후안 호세 바예(Juan José Valle) 장군은 1956년 6월 9일 군사독재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총살당한다. 『학살 작전』은 이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페론 지지자들로 몰아 총살시킨 사건을 생생하고 실감 나는 문체로 기록하고 있다.

 왈쉬는 자신의 책으로 인해 학살의 주범들이 처벌받기를 기대했으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학살의 주범들은 처벌받기는커녕 승승장구하고 학살사건은 군부정권하에서 서서히 잊혀 갔다.

 15,000명의 실종자들, 10,000명의 수용자들, 4,000명의 사망자들, 그리고 수만 명의 망명자들: 이는 이 국가 테러의 생생한 수치들이다.
 일반 교도소들이 가득 찼으므로, 당신들은 나라의 주요 막사에 사실상의 수용소들을 세웠고, 판사들, 변호사들, 언론인들, 그리고 국제 단체의 참관인들의 출입을 막았다. 당신들이 수사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곳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군사 기밀성은, 즉 대부분의 체포는 제한 없는 고문과 재판 없는 사형을 허용하는 납치로 변질됐다는 뜻이다.
 작년에는 총 7,000건의 인신보호영장이 기각되었다. 그리고 수천 건의 다른 실종 사례의 경우 아예 인신보호영장이 청구되지도 않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이를 신청해 봤자 헛수고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이미 50명에서 60명 사이의 변호사들이 실종된 점을 감안하면, 감히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할 용기를 가진 변호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왈쉬는 1959년 쿠바로 이주하여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정부를 도왔으며, 1961년 4월에 있을 피그즈만 침공을 암시하는 암호정보를 해독하여 쿠바 정부로 하여금 침공에 대비하는 데 기여하였다. 1961년에 아르헨티나로 귀국한 그는 언론인으로서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계속되는 군부의 탄압과 검열로 인해 언론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쿠바에서 돌아온 직후에도 왈쉬는 좌파적인 면모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좌익으로 기울고, 청년 시절에는 페론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는 스페인에 망명 중이었던 페론이 다시 집권해야 한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1970년에 그는 페론주의 극좌파 게릴라 조직인 몬토네로스(Montoneros)에 가입하였고, 첩보활동을 담당하며 핵심 지휘관의 위치에 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화된 세계의 양심을 뒤흔든 이들 사건들은, 당신들이 아르헨티나 민중에 가한 최악의 고통이 아니며, 당신들이 저지른 최악의 인권 침해가 아니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이야말로 당신들의 범죄를 설명할 수 있는 원인뿐 아니라, 수백만의 인간을 계획된 고난으로 빠트리는 더욱 큰 재난이다.
 지난 1년간 당신들은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40% 감축하고, 그들의 국내 총생산에 대한 기여도를 30%나 줄였으며,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하여 일하여야 하는 시간을 1일 6시간에서 18시간으로 올려, 식민주의의 마지막 잔재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의 강제노동을 부활시켰다.
 임금을 당신들의 소총 개머리판으로 동결시킴으로써, 가격은 총검 끝으로 올림으로써, 모든 형태의 단체행동을 금지시킴으로써, 내부 위원회와 집회를 금지시킴으로써, 근로 일수를 늘림으로써, 실업률을 기록적인 9%로 올리고 게다가 300,000명을 추가로 해고하기로 약속함으로써, 당신들은 노사관계를 산업혁명의 시작 시점으로 되돌려놓았다.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려고 시도하면, 당신들은 그들을 체제 전복자라고 부르고 노조 대표자 전원을 납치하였으며, 이들 중 일부는 죽은 채로 돌아왔고, 일부는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페론은 1956년 쿠데타 이후 무려 17년 만에 열린 민주적 총선에서 중도좌파 페론주의 정치인인 엑토르 캄포라(Héctor Cámpora)가 승리하자 그해 6월에 18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해 7월 이뤄진 대통령 선거에서 77세의 페론은 승리하여 10월에 다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는 좌파 페론주의자들의 희망과 달리 군부, 가톨릭 교회, 그리고 자본가들의 편에 서며 좌파 페론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페론이 1974년 향년 78세로 사망한 이후 부통령이자 두 번째 부인 이사벨 페론(Isabel Martínez de Perón)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데, 이사벨 페론은 극우파 민병대와 군대를 동원하여 좌파 페론주의자들을 처형했다.

 페론이 복귀했음에도 사회 변혁은 좌절된 것에 대한 불만, 아르헨티나 경제의 저성장과 이로 인한 빈부격차의 확대로 인해 아르헨티나 사회의 분열은 1970년대 들어 심화되었고, 1970년대 중반에서는 내전의 양상을 보인다. 극우파와 극좌파 모두 반대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납치하고 처형하였으며, 특히 몬토네로스는 아르헨티나의 혁명을 위해서는 계급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군인과 경찰, 정부 관료뿐 아니라 기업인들과 자본가들까지 납치, 살해하였다.

 무차별적인 무장 투쟁과 테러로 인해 몬토네로스는 민간인 희생자들을 낳았고 아르헨티나의 중산층으로부터 소외받기 시작한다. 이러한 몬토네로스의 만행에 거부감을 느낀 왈쉬는 몬토네로스가 무력으로 군부와 싸워 이길 수 없으며,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몬토네로스 지휘부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도리어 게릴라 투쟁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민선 정부의 게릴라 진압이 미진하다는 불만을 품은 군부는 1976년 3월 쿠데타를 일으켜 이사벨 페론을 실각시키고 권좌에 오른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군사독재정권, “국가재건과정(Proceso de Reorganización Nacional)”의 시작이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국가’라고 부르는 경제의 추상적인 목표 측면에서도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다. GDP는 약 3% 감소했고, 우리의 외채는 1인당 600달러에 육박하며,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400%이고, 통화공급은 12월 한주에 9% 올랐으며, 외국인투자는 13% 감소했다 - 이것은 또한 세계적인 기록이며, 냉철한 계산과 심각한 무능이 빚어낸 이상한 결실이다.
 국가의 모든 생산적이고 보호적인 기능이 서서히 붕괴되고 빈사 상태로 빠지는 와중에도, 한 가지 산업만은 명백히 번창하고 있다. 10억 800달러 - 아르헨티나 수출액의 약 절반 정도 - 가 1977년 안보 국방 예산으로 책정되었다. 연방경찰청은 4,000명의 경관을 충원하고 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주 경찰은 12,000명의 자리를 마련했고, 산업노동자의 2배 및 학교 교장의 3배에 달하는 임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군인들의 임금은 2월부터 비밀리에 120% 증액되었다. 이는 고문과 죽음의 왕국에서는 임금이 동결되지 않고 실업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군부는 게릴라들뿐 아니라 게릴라로 의심되는 사람들, 게릴라들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차별적으로 체포하였을 뿐 아니라,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납치하고 고문했다. 희생자들은 약에 취한 채로 헬리콥터에서 던져져 라플라타 강으로 수장되었다. 군부 자신이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고 부른 게릴라 진압 과정에서 약 30,000명이 실종되었고 9,0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며, 희생자들 대부분은 게릴라들이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들이었다. 군부의 무차별적 탄압 아래 몬토네로스 조직은 와해되었고, 1976년 9월에는 왈쉬의 딸이자 게릴라였던 빅토리아가 군경과의 대치 끝에 26세에 사망한다. 이제 군부는 왈쉬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고, 그는 외국으로 망명할지 혹은 아르헨티나에서 남아 목숨을 건 투쟁을 계속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은행을 민영화함으로써 당신들은 나라의 예금과 신용을 외국 은행의 손에 넘기고 있다. ITT와 지멘스(Siemens)에 손해배상을 함으로써, 당신들은 국가로부터 돈을 편취한 기업들에 보상하고 있다. 주유소를 다시 설치함으로써, 당신들은 셸(Shell)과 에소(Esso)의 이윤을 높이고 있다. 관세율을 낮춤으로써, 당신들은 홍콩과 싱가포르에 고용을 창출하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실업을 창출하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공보 자료에서 언급되는 배신자들은 누구인가? 외국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용병들은 누구인가? 어느 이데올로기가 이 나라를 위협하는 것인가?

 1977년 3월 25일, 왈쉬는 자신의 마지막 글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인 『군사평의회 앞으로 한 작가가 보내는 공개서한(Carta Abierta de un Escritor a la Junta Militar)』을 군부 및 외국 언론사들 앞으로 부친다. 이 서한은 군부의 쿠데타 후 1년간의 인권침해뿐 아니라, 국민을 도탄에 빠트리는 군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수려한 문장과 날카로운 통계를 이용하여 낱낱이 비판하는 글이었다. 그는 노인으로 변장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우체국에서 이 서한을 보냈는데, 서한을 보낸 직후에 그를 감시하고 있던 군인들에게 포위되었다.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듯한 왈쉬는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저항하였으나 자동소총 총알 세례를 받고 쓰러졌고, 군인들의 손에 피투성이로 끌려갔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본 왈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설령 최후의 게릴라가 사살되더라도, 이 소위 전쟁은 새로운 다른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지난 20년간 아르헨티나 민중의 저항을 유발시킨 원인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끔찍한 재난의 기억들과 당신들이 저지른 만행의 발견으로 인해 도리어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내가 군사평의회의 구성원들에게 그들의 불운한 정부의 1주년을 맞아 전하고 싶었던 생각들이었다. 내 말이 경청되리라는 희망은 없고 내가 처벌받을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오래전에 결의한, 고된 순간에도 증인이 되겠다는 내 신념에 충실하다.

로돌포 왈쉬
- C.I. 2845022 부에노스아이레스, 1977년 3월 24일.

 로돌포 왈쉬는 지성인과 게릴라의 경계선에서 긴장하고 번민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 일관되었다거나, 항상 정의로웠다고 하긴 어렵다. 그는 청년기에는 페론을 반대했고 극우 정당에도 가입했으나, 중년에 들어서는 좌파 페론주의 게릴라가 되었다. 그러나 집단에 소속되면서도 왈쉬는 끊임없이 집단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항상 스스로가, 사회가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 성찰하였으며, 지속적인 성찰을 통하여 도달한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글로 사회를 비판하는 지성인과, 총으로 부조리에 저항하는 게릴라라는 두 정체성 사이의 긴장감은 도리어 그를 유지하는 삶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윤태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