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러니까 접견을 가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짧은 머리에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주인공 윤수처럼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왜 죽였니?”라고 물을 수 없었던 이유는 “네가 죽였니?”라는 질문에 그가 고개를 떨군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잠자코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기록을 통해 본 현장의 모습은 참담 그 자체였다. 내무반 침상과 바닥, 벽에 흩뿌려진 피와 그 피에 엉기어 있는 살점들, 사지가 잘리거나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내장이 흘러나온 시신들 사진을 보는 건 정말이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사진이 비록 흑백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건을 진행하면서 상관살해죄의 형으로 오로지 사형만을 규정하고 있는 군형법 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받기는 했지만, 형량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피해자가 다수이고, 범행 수법 또한 중했기 때문에 1심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했다. 전피수갑을 끼지 않았음에도 총기에서 그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고, 수류탄 파편이 우리 군이 사용하는 세열수류탄과 성분이 다르다는 주장은 기각되었다.
사실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변호인인 나도, 검찰도, 재판부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변호하는 자로서, 기소한 자로서, 판단하는 자로서 자기의 역할을 다 했을 뿐. 1심 판결 후 항소를 제기했지만 항소심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의 기록을 다시 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까닭이다.
<그녀의 이야기>
“여기는 변호사 사무실이니 저에게 오빠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녀는 몇 번인가를 계속 ”오빠“라고 불렀다. 그녀가 출근하는 업소에 내 나이 또래의 손님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법조인인 손님들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그 이유를 물어 볼 필요는 없었다. 사건과는 무관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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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후반인 그녀는 경제적 사정이 썩 좋지 못했고, 쉽게 돈을 벌어 보려고 유훙업소에 출근을 했다가 일수업자로부터 빌려 쓴 まえきん(前金)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8,000만 원 가량이 되자 도저히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일수업자는 그녀 또래의 자식을 둔 중년의 여자였는데, 거의 매일 가게에 찾아와 이자를 갚으라고 닦달을 했는가 하면, 그녀가 생리 중이어서 속칭 이차(성매매)를 나가지 못할 것 같으면, “찬물로 샤워를 하면 생리가 멎으니 찬물 샤워를 하고라도 이차를 나가 돈을 벌라”고 윽박을 지르기도 했고,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하자 그녀의 집 근처로 찾아와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까지 했었다.
그녀는 소송 도중 업자와 합의가 되었다며 소를 취하해 달라는 말을 전화로 하고는 그 이후로는 소식이 없었다. 아마도 고향으로 내려가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거나, 다른 가게에서 또 다른 일수업자로부터 선불금을 당겨쓰고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거나, 또는 그렇게 빌려 쓴 선불금에 대해 다른 변호사를 찾아가 채무부존재소송을 제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와 그녀를 떠올리면...>
그의 사건에 대해, 언론은 그가 입대 전 게임을 했다는 이유로 그의 범행 동기 중 하나가 Reset 증후군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러나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학생일 뿐이었고, 그녀는 속된 말로 쭉쭉빵빵 베이글녀가 아니라, 자기 나이보다 서너 살쯤 어려 보이는, 대학 마크가 찍힌 파일을 두 손으로 안고 있으면 딱 어울릴 그냥 청순한 스타일일 뿐이었다.
두 사건을 진행했던 게 초년병 시절이었으니 세월이 십년은 지난 듯싶다. 여전히 두 사건이 잊혀지지 않는 건 사건의 내용에 비해 그와 그녀가 너무나 평범했었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평범한 그와 그녀를 그 지경으로 몰아넣었던 건 누구였을까? 혹은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모르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마찬가지이다.
김학웅 변호사
사법시험 제42회(연수원 32기)
법무법인 시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