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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 중앙선거관리위원 인터뷰


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990년에 사법시험에 32회로 합격해서 1993년에 연수원 22기로 수료했습니다. 공군법무관 3년을 마치고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에서 초임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재판연구관, 제천지원장,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행정법원을 거치고, 진주지원장을 마지막으로 2017년에 법원을 퇴직하였습니다. 그해 대륙아주에 합류해서 지금까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1996년 판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디셨는데, 법원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연수원 시절 교수님이 검찰 교수님이시기도 했고, 법원은 다소 정적인 것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 검찰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 시보 생활을 해 보니 제가 생각하던 검사의 모습과 실제 검사의 모습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로펌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가장 큰 로펌의 변호사 수가 60명 정도였습니다. 아내가 변호사는 사업가처럼 직업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는지,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고, 주변에서도 결국에 변호사를 할 것이니 법원을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고 해서 법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속마음은, ‘한 2 ~ 3년 동안만 위장 취업(?)을 했다가 나와서 변호사를 하자’였습니다. 그런데 법원에 가 보니 너무 좋은 점들이 많아서 예상보다 오래 있게 되었습니다(웃음).

Q. 법원에서는 어떤 점들이 좋으셨나요?

 수평적인 관계와 가족 같은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운동을 좋아하는데, 법원 직원들과 축구, 테니스, 등산을 함께 하는 것들도 좋았고, 함께 근무했던 판사님들 간 상호 존중의 문화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법원이야말로 이상적인 조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운 좋게 너무 좋은 분들만 만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Q. 약 20년의 법원 생활 동안 자평하면 법관으로서 어떤 법관이셨나요?

 32살에 판사가 됐습니다. 당시 저도 그렇고 저희 동기들이랑 이야기를 해 보면, 사법시험 합격 당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덕적 우월성 비슷한 것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어리석고 치기어린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판사로 임관하고 다음 해인 1997년에 의정부에서 이른바 법조비리 사태가 터졌습니다. 당시 40여 명의 소속 판사 전원이 인사 조치가 되어서 전국 법원으로 흩어졌어요. ‘판사가 처신을 굉장히 잘 해야 한다. 스스로 수양하는 판사가 되어야겠다. 언행일치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남들보다 도덕적이라거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웃음). 그런데 법원에 있을 동안은 스스로 채찍질하고 공정한 법관이 되려는 나름의 노력을 많이 했다고 자평합니다.

Q. 2017년 법복을 벗고 대륙아주에 합류하셨는데, 재야로 나오신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정신적으로 조금 문란(?)한 삶을 살기 위해서?(웃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도덕적이거나 인격적인 사람이 아닌데, 법원에 있을 때에는 스스로에 대해 나름 인격적으로 채찍질을 많이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퇴임사에서 ‘앞으로 정신적으로 좀 문란한 삶을 살겠다’고 했어요(웃음).

Q. 법원을 나오니 어떠셨나요?

 변호사로서 법정에 가 보니, 내가 판사로서 재판을 진행했을 때 나는 과연 어땠을까 하는 반성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판사가 그냥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편하게 얘기하는 것들을 당사자들이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판사들은 예정된 선고기일까지 판결문을 못쓰면 쉽게 선고를 연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의뢰인 입장에서는 변호사가 그렇게 설명을 해 주어도, 연기한 데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심지어 상대방이 로비를 한 것 아닌지 의심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내가 법원의 판사로서 재판할 때 당사자들이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경솔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법정에 들어가서 판사들이 재판 진행하는 것을 보게 되니, 평소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던 분이 인상을 찌푸리고 짜증 섞인 어투로 재판을 진행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법원에 있을 때 법정언행개선위원회 활동도 하고, 관련 발표도 했습니다. 판사 스스로 자기 재판을 녹화해서 보기도 했는데, 이런 때는 사실 연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저 또한 법정에서의 제 모습이 앞서 말씀드린 분과 비슷하지 않았었나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Q. 만약 다시 법대에 서신다면, 다른 법관이 되실 것 같으신가요?

 온화한 표정으로 재판하고, 작은 부분에서 좀 더 당사자를 배려하는 법관이 될 것 같습니다. 변론 재개나 선고 연기를 하면 석명준비명령을 해 주거나 선고 연기 사유를 설명해 주면 재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집니다. 미리 석명준비명령을 못하는 사정이 있다면, 기일에라도 석명 사항을 적어서 당사자에게 줄 수 있고요. 판사가 기일에 구두로 석명 사항을 길게 이야기하면, 변호사들이 속기사처럼 받아 적는데, 이런 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변론기일에서의 구술주의와 관련해서는 법관이 서면을 미리 잘 읽고, 쟁점을 파악해서 쟁점을 정리해 주면 변론기일도 충실해질 것 같습니다.

Q. 2020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셨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은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지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선거 관리 업무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회의를 통해서 선거나 선거법에 관한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논의하고, 필요한 경우 의결을 하기로 합니다. 상임위원이 한 분 계시고 나머지 분들은 회의가 있으면 참석합니다.

Q. 테니스, 축구 같은 운동과 등산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도 즐기고 계신 것이 있으신지요?

 집이 북한산 쪽이라 토요일에는 주로 등산을 하고, 일요일마다 소속 클럽에서 테니스를 칩니다. 재판이 없는 평일에는 가끔 골프를 치고요. 변호사가 되니 그린피가 싼 평일에 골프를 칠 수 있는 메리트가 있더라고요(웃음). 축구는 이제는 다치면 뼈가 잘 안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K리그나 해외 축구 등을 보는 쪽으로 치중하고 있습니다. FC서울의 오랜 광팬입니다.

Q. 존경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얼마 전 돌아가신 이홍훈 대법관님입니다. 공정거래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할 때 제가 주임 연구관을 맡으면서 가르침을 많이 받았습니다. 강자의 힘을 막기 위해 만들어 둔 것이 법이니까, 법률의 해석은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법률지식 면이나 후배법관들에 대한 배려 등 여러면에서 정말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Q. 지금까지 어떠한 좌우명 혹은 가치관으로 살아오셨나요?

 언행일치.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것인가요?

 안 할 것 같습니다(웃음). 법조인은 과거에 일어났던 분쟁을 현재에서 바라보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과거 일을 아무리 정확하게 파악하려 해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미래 지향적인 일을 하고 싶습니다. 머리
쓰는 일보다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물론 운동 재능을 타고나야겠지요.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1996년의 예비 판사 이승택을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인가요?

 “법원에 너무 오래 있지 말아라. 여행도 좀 많이 가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좀 더 자유롭게 살아라.”라고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1년의 후배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회보 ‘선배법조인의 조언’ 코너를 볼 때면 ‘벌써 우리가 이런 나이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옛말에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 하는데, 지혜로웠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지혜로워지는 것이지, 애초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고집만 느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제가 조언을 한다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예전과 달리 변호사 자격이 하나의 라이선스가 된 세상입니다. 법학전공자가 대부분이었던 저희 세대와는 달리 요즘 후배변호사님들은 다양한 전공자라는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법률적 지식이라는 토대 위에 자신들의 전공을 접목시킨 융복합 4차산업형 인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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