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도산절차개시신청부터 견련파산절차의 종료 시까지 상계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를 소개한다. 상계는 간이한 결제의 역할과 담보적 기능을 하는데, 도산절차에서는 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채권자가 신용을 제공함에 있어 타인의 재산을 담보로 삼거나 제3자를 보증인으로 세우더라도, 담보물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보증인의 자력이 없으면 담보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부담하는 채무를 담보로 삼아 타인에게 신용을 공여하면 수동채권의 액수만큼 채권을 회수할 수 있으므로 상계가 가장 확실한 담보권이다. 따라서 채무자가 도산한 경우 채무자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는 채권자가 자동채권으로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도산절차에서 중요하다. 판례는 반대채권을 자동채권이라는 뜻으로 혼용한다(대법원 2015. 3. 20. 선고 2012다107662 판결).
 

상계와 공제

 상계의 요건에 관하여는 상계적상에 있어야 하고 상계금지에 해당하지 아니하여야 하는 제한이 있으나 공제는 제한이 없다. 따라서 채권자가 도산절차에서 상계 대신 공제를 주장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판례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대차보증금에서 밀린 차임을 공제할 수 있고(대법원 2019. 4. 3. 선고 2015다247745, 247752 판결), 공동수급체의 구성원 간에 출자의무와 이익분배청구권 간에 공제약정이 있는 경우라면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공제의 효과가 발생하고(대법원 2018. 1. 24. 선고 2015다69990 판결), 선급금을 지급한 후 공사도급계약이 해제되어 중도에 선급금을 반환하게 된 경우, 그때까지의 기성고에 해당하는 공사대금에 당연 충당된다(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8다223139 판결).
 

도산절차와 상계 - 공통적용

 채권자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채무자를 상대로 상계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원칙으로 부인권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대법원 1993. 9. 14. 선고 92다12728 판결). 도산절차가 개시되면 채권자는 도산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강제집행을 할 수 없지만 상계권은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민법상의 상계금지 사유 외에 채무자회생법이 정한 상계금지 사유가 있다(이하 조문만 기재함 제145조, 제422조). 임대사업자의 파산선고 후에 임차인이 분양전환을 마치고 아파트 매매대금에서 임대차보증금을 공제하기로 합의하는 것은 제422조 제1호에 반하여 효력이 없다(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5다44274 판결). 관리인이 부인권을 행사한 결과 부활하는 수익자의 회생채권은 급부가 반환되어야 비로소 부활하므로 상계적상을 흠결하여 상계가 허용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07. 7. 13. 선고 2005다71710 판결).

 그러나 도산절차 신청 후 채권자가 채권을 취득하거나 채무를 부담하게 되어 상계하는 것은 원칙으로 금지되지만 법은 예외적으로 상계를 허용한다. 중요한 예외 사유가 도산채권이 지급의 정지 등이 있은 것을 알기 전에 생긴 원인에 의하여 채권을 취득하거나 채무를 부담한 때에는 상계가 가능하다. ‘전에 생긴 원인’의 기준에 관하여 확립된 판례는 추상론으로 “채권자에게 상계의 기대를 발생시킬 정도로 직접적인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상계의 담보적 작용에 대한 회생채권자의 신뢰를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고 판시하고 있으며, 판시는 파산절차에도 적용된다(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5다240041 판결). 예를 들어, 예탁금골프장의 입회계약은 입회금반환채권을 취득한 직접적인 원인이므로 회생신청 후에 취득하더라도 회원인 회생채권자의 상계기대는 정당하므로 상계를 허용한 판례(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5다252501 판결)가 있는 반면, 회생채무자가 회생신청 전에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회생신청 후 해외송금은행으로부터 회생채무자의 구좌로 입금된 경우 은행(채권자)에게 구체적인 상계기대를 발생시킬 정도로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 회생신청 후에 채무를 부담한 것을 이유로 상계를 불허한 판례(대법원 2016. 4. 12. 선고 2015다1802 판결)도 있다.

 한편, 민법상 보증인은 상계할 수 있지만 도산절차에서는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민법 제434조는, 보증인은 주채무자의 채권에 의한 상계로 채권자에게 상계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보증인이 채권자에 대하여 갖는 자신의 채권이 아니라 주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갖는 채권으로 보증인이 상계할 수 있음을 특별히 허용하고 있다. 주채무자에 대하여 도산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도 동조가 적용되는가에 관하여 학설의 논의가 있다. 판례에 의하면, 회생절차에서 채무자회생법 제131조를 근거로 회생절차개시 후 회생채무자 또는 관리인에 의한 상계가 금지되는 법리는 보증인 등 제3자에 의한 상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보증인의 상계를 허용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다209347 판결).
 

회생절차의 특칙

 채무자에 대하여 변제금지가처분이 있어도 채권자는 상계할 수 있다(위 대법원 92다12728 판결). 단, 회생절차에서는 법원이 정한 채권신고기간 만료 전까지만 상계할 수 있다(제144조). 채권신고기간은 회생절차개시결정에 기재된 날짜를 말하고 추완신고가 가능한 제2회 관계인집회기일이 아니다. 따라서 채권신고기간이 도과한 후에는 회생채권자는 상계권을 행사할 수 없다. 채권신고를 하는 것이 상계권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므로 채권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채권신고가 필요한 것처럼 판시한 판결 이유는 잘못되었다(대법원 1998. 6. 26. 선고 98다3603 판결 중 “피고가 회사정리법이 정하는 소정 기간 내에 위 채권에 관하여 정리채권 신고를 한 바 없음은 이를 자인하고 있으므로, 피고는 위 채권이 있음을 내세워 위 상계 주장 등을 할 수 없다.”부분).
 

파산절차의 특칙

 파산채권자는 파산채권신고기간이 도과하더라도 파산절차가 종료되기까지 상계할 수 있다. 파산선고 시 아직 기한부 채권이라도 상계할 수 있다(제417조 제1 문장). 또한 파산채권자가 부담하는 채무가 조건부 채무인 경우에도(동조 제2 문장) 상계할 수 있다. 구상권에 대한 농협의 지급보증은 파산선고 전에 이루어졌으나 구상권자(파산자 동서증권)의 파산선고 후에 채무변제라는 조건이 성취되었으므로, 이는 파산선고 후에 채무를 부담한 때에 해당하므로 농협이 구상채무를 수동채권으로 한 상계가 불허되어야 한다고 파산관재인이 다툰 사안에서, 판례는 구상권에 대한 보증은 장래의 채무에 대한 보증으로서 일종의 조건부 채무로 보아야 할 것인데, 파산절차에서는 조건이 파산선고 후에 성취되었다고 하더라도 상계는 적법하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1다833 판결).

 견련파산절차에서 제422조 제2호 본문이 규정한 상계금지의 기준이 되는 지급정지의 시점은 회생절차폐지결정 시가 아니라 회생절차개시신청 시이고(대법원 2016. 8. 17. 선고 2016다216670 판결), 제422조 소정의 상계금지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한 채권자는 파산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상계할 수 있고, 이러한 상계권의 행사는 상계권 남용에 해당하거나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다34253 판결).

임치용 변호사 ● 김·장 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