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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200의 명장면을 고른 책이다. 거장의 작품에서 다시 명장면을 추린 책이니, 어디 하나 허투루 볼 글이 있겠는가. 한 장면을 골랐다. 장면 하나를 읽는 순간만이라도 잠시나마 업무를 잊었으면 좋겠다. 혹시나 책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머지 199의 장면을 읽었으면 더없이 좋겠다.

“ 마침내 관을 덮고 못을 박고 마차에 싫었다. 노인은 그 뒤를 따라 달려가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뛰어가느라 울음소리가 떨렸고 간간이 끊어졌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걸 주우려고 멈추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가 비에 흠뻑 젖었다. 바람이 일고, 차가운 공기가 그의 얼굴을 때리고 찔렀다. 노인은 악천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고, 엉엉 울면서 마차의 이쪽저쪽을 뛰어다녔다. 낡은 프록코트 자락이 날개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모든 주머니에서 책들이 비죽이 기어 나오고, 두 손으로 어떤 커다란 책을 꽉 부둥켜 잡고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이 가련한 노인을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책들이 그의 주머니에서 끊임없이 진창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멈춰 세우고 책이 떨어졌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는 책을 주워 들고 다시 관을 뒤따라 달려갔다(가난한 사람들 6월 1일 편지, 책 173쪽).”
 

아들의 관을 쫓아가는 포크롭스키 노인, 니콜라이 카라진, 1893, 책 174쪽


 이 짧은 몇 문장만으로도 극한의 슬픔이 전해진다. 관이 실린 마차를 노인이 홀로 따른다. 가난한 아버지. 대학생이었던 자랑스러운 아들. 아들의 죽음. 아들에게 선물했던 값비싼 푸쉬킨 전집. 아들의 분신과 같은 책들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마차를 쫓아간다. 비바람마저 분다. 모자는 날아가고, 책은 비에 젖고, 진탕에 떨어져 버린다. 마차는 묘지를 향해 무심히 간다. 모든 게 허망함을 향해 간다. 허망함에 어쩌지 못하는 아버지는 꺼이꺼이 운다. 어쩔 줄 모르며 마차의 이쪽저쪽을 동동거리며 통곡한다.

 관 속의 청년은 어떤 심정일까. 진창에 떨어져 버린 소중한 자신의 책과 비에 젖은 채 통곡하며 뛰어오는 아버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버지를 타박할까. 가난을 증오할까. 세상을 원망할까.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아버지 울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러다 잠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겠지. 마지막으로 하늘의 빛과 구름의 움직임과 비바람의 촉감을 느껴 볼 것이다. ‘그래도 행복한 삶’이었다고,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하며 떠나지 않을까.

 우리는 어떻게 삶을 떠날까. 도스토옙스키는 『백치』에서 처형 직전 5분이 남았다면 2분은 작별하고, 2분은 삶을 돌아보고, 1분은 주위를 둘러보겠다고 했다. 죽기 5분 전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해 봐도 도스토옙스키 방식만한 게 없다. 2분은 가족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2분은 내 삶을 돌아보고, 1분은 주변의 물건과 색과 빛을 느껴 볼 것이다. 마지막 5분이지만 풍요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 아쉽겠지만 행복할 것 같다.

 

이광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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