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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운수 나쁜 날
일이 도무지 풀리지 않습니다. 마음은 급한데, 전화는 계속 걸려오고, 뭔가 일정은 꼬입니다. 도저히 머리는 돌아가지 않고 글은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 날이 있습니다. 운수가 나쁜 날이랄까요, 재수가 없는 날이랄까요.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스쳐 지나갑니다. 오늘도 그런 날인가 봅니다.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과민한 탓인지 기분이 나쁩니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 그러다가 재수가 없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과거에 좋아하던 가수가 최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 노래도 많지만, 동성동본결혼 문제라거나 삶과 죽음, 노년에 관한 노래도 만들어서 사춘기 시절에 정말로 멋져 보였습니다. 낮은 음성이 남성적인 매력도 있어서, 자주 흉내 내어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SNS에서 곧 다시 음악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신문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순히 재수가 나빠서 벌어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냥 운이 없거나 재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객선이 침몰하고 탈출명령이나 제대로 된 구조가 없었던 경우나, 서 있던 환풍구가 갑자기 꺼져 버린 경우나, 그 일에 휘말린 사람 개인의 운으로 돌리는 것은 뭔가 어색합니다. 무언가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데, 사회 전체적으로 주의하였으면 피할 수 있는 것인데, 자꾸 그게 개인이 운이 없는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합니다. 

죽음이 항상 코앞에 서 있습니다. 그 사실이 두렵고, 또 그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서글픕니다. 고등학교 시절 한강 다리를 건널 때 또 다리가 꺼져 강물에 빠지면 헤엄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대학시절 백화점이 다시 무너져 내리면 기둥 옆으로 뛰어가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분명히 쓰여 있었습니다. 한때는 한 줄로 서라고 했다가 귀찮게도 다시 바뀐 모양입니다만, 그래도 매일, 항상 볼 수 있는 장소에 쓰여 있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말라고. 두 줄로 서서 안전하게 이용하라고. 하지만 길을 비키라고 하면서 성큼성큼 올라가는 사람들, 타닥타닥 뛰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오늘 아침 불쾌했던 것은 운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오늘 운수가 나빴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바빴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빠서, 저 문구에도 불구하고 마구 걸어 올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출근이 급했을 것입니다. 시간을 절약하는 게 돈을 절약하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실은, 다 그런 이유였습니다. 떠들썩했지만,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남들의 불운이라고만 생각하고, 피해갔다고 안도하고, 마음은 그대로인 모양입니다. 

단지 사소한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들이 쌓여 이렇듯 무서운 일들이 계속하여 생겨난다면, 언제까지 피해를 입은 불운 탓을 할 수 있을지, 언제까지 ‘행운아’로 남아 그 일들을 비껴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한승수 변호사
사법시험 제43회(연수원 33기)
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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