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수료 전, 한 특강에서 ‘마케팅 서적을 읽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변호사 역시 지식서비스를 파는 사람으로서 고객과 마케팅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아마도 ‘변호사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약 7년 가까이 흘러, 이제는 마케팅과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해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험한 세상이 온 것도 같다. 그때의 조언을 흘려들은 데 대한 뒤늦은 후회와 함께 이미 고인이 된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변화 리더의 조건』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떠오르는 수십 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 중에서도 핵심으로, 『프로페셔널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과 더불어 그의 60여 년간의 작업을 3부작으로 정리한 대표작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경영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경영과 법률사무는 그리 친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사내변호사나 고용변호사가 아니라면 경영을 ‘당하는’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피터 드러커의 첫 대답은 경영은 대학의 경영학과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은 분석 도구들의 묶음이나 기교의 묶음이 아닌 ‘인간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즉 경영은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각자의 약점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조직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비단 조직이 아니더라도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도 시너지를 조합하여 승소라는 공동의 성과로 나아가는 경영의 한 측면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경영의 목표는 무엇인가. 으레 나올 법한 답인 ‘이윤추구’가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익은 기업경영의 목적이 아니라 제약 조건’이라고까지 한다. 이윤 동기 개념이 이익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의 단 하나의 목적은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객이 구입하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그것이 제공하는 효용(utility)이며 따라서 진정한 마케팅은 ‘우리가 팔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고객이 구입하려는 것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법률 서비스 자체가 맞춤형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윤이 아닌 효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은 보편타당한 조언이다.
‘5년 전 우리가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도 유망해 보이던 것이 왜 지금에 와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가’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이 질문에 대한 경영학적 대답은 ‘3년마다 제품과 서비스를 검토해서 필요 없는 것들은 폐기했어야’라는 것이다. 이 해법이 법조 분야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더라도 인구 구조를 면밀히 관찰해 변화를 감지하거나 시장에서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고객이 아닌 비고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은 유의미하다. 인구 구조는 결국 법률 서비스의 수요?공급과, 비고객의 문제는 새로운 시장창출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잘나갈 때’ 미래를 고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제5부 ‘기업가 정신의 경영’은 ‘미래를 위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은 단 두 가지,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기대와 다르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이 농부들을 TV 구매층으로 생각조차 않던 때에 저소득층일수록 TV에 매달리는 서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여 성공한 일본의 한 기업처럼, 인구통계학적 변화 및 다른 산업의 동향을 주시해 ‘이미 일어난 미래’를 분석하는 것은 불투명한 미래를 내다볼 유일한 방법이다.
어찌 보면 미래를 창조하는 데는 창조적 상상력보다는 자료분석 같은 고된 작업, 그리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낯설음과 고단함을 감내할지, 아니면 현실에 안주할지는 결국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과 매우 다른 어떤 것이 미래에 일어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가’
양은경 변호사
사법시험 제48회(연수원 39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