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EBS

Q___안녕하세요, PD님. 회원분들이 PD님과 PD님께서 연출하신 프로그램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들에게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한국교육방송공사 최평순 PD입니다. 환경 · 생태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특집 다큐멘터리로 다큐프라임 <여섯 번째 대멸종> 5부작, <인류세> 3부작, <긴팔인간> 2부작, 정규 프로그램으로 <이것이 야생이다> 12부작, <이것이 야생이다2 - 시련의 계절> 12부작, <하나뿐인 지구> 등을 연출했습니다.

Q___환경·생태 전문 PD로서 <긴팔인간>, <인류세>, 최근 방영한 <여섯 번째 대멸종>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에 대해 큰 울림을 주는 작품들을 연출해 오셨습니다. 특별히 환경·생태에 초점을 맞춰 연출을 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환경 · 생태 이슈는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개인적으로 TV든 영화든 콘텐츠를 보면서 나와 동떨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흥미가 떨어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픽션보다는 논픽션 다큐멘터리가 재밌게 느껴지는데, 그중에서도 환경 · 생태 장르는 나를 둘러싼 문제를 다루고 있죠. 예를 들어, 50분 동안 스릴러 한 편을 보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다시 화면에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환경 다큐멘터리(50분 동안 보기 쉽지는 않지만 50분 볼 정도로 재밌는 다큐멘터리라면)를 감상하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조금 달라요. 저는 그 부분을 좋아하고, 많은 분들이 재밌게 볼만한 환경· 생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___PD님의 대표 연출작인 <인류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작품을 기획하신 의도는 무엇인가요?

 인류세, 人類世, Anthropocene. 이 개념은 사실 해외에서 굉장히 유명한 과학 키워드였어요. 파울 크뤼천이라는 대기화학자가 2000년 처음 세상에 내놓은 단어인데,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파급력이 강해져 2016 ~ 2017년경에는 ‘4차 산업혁명’보다 구글에서 많이 검색될 정도였어요.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낮았죠. 다행히 그 단어가 가진 힘을 국내에서 제가 남들보다 조금 빨리 알아차렸다고나 할까요. 인류의 환경 파괴를 과학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류세’에 꽂혀 2017년 기획안을 냈고 2018년부터 제작해 2019년 3부작을 방송했습니다.
 

2020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수상(본인 제공)

Q___<인류세>가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2021년 휴스턴 국제영화제 필름 부문 대상 수상 등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호응을 넘어 작품성까지 인정받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류세’ 세 글자가 가진 힘이 컸고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터지면서 환경과 인류 문명에 대한 자성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2019년 방송 때보다 2020년, 2021년에 더 후한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았던 거죠. 그렇지만 확실한 건 ‘인류세’는 그만한 힘을 가진 마법의 단어라는 거예요. 파울 크뤼천이 처음 주창한 2000년보다 지금 2022년에 더 유명한 것처럼요. 대기학자가 만든 말인데, 지질학, 생물학, 철학, 사회학 등 학문의 장벽을 넘고, 과학계뿐 아니라 시민사회, 나아가 국제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인류의 환경 파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실하게 과학으로 드러나고 있죠. 그럴수록 인류세 담론은 더 힘을 받습니다.

Q___세계 10여 개국의 현장 취재, 2 ~ 3년의 제작 기간에서 알 수 있듯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 모두 제작진의 상당한 노고가 깃든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제작 과정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현장에 가는 건 항상 가슴 뛰어요. 거기엔 우리가 모르던 진실 혹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있으니까요. 제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모르던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인류세>를 제작할 때는 ‘총, 균, 쇠’로 유명한 UCLA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자택에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그런 분을 방송 아니면 어떻게 만나 두 시간을 보내겠어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만들 때는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을 타고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해 남대서양 공해(公海)에서 남획을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다면 갖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죠.

Q___최근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이 작년 12월 방송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대멸종 현장,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물음 등 깊이 있는 내용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요?

 ‘이러다 다 죽어!’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배우가 외친 말이죠. 취재하고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인류 또한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섯 번째 대멸종>은 46억 년 지구 역사에 있었던 다섯 번의 대멸종(가장 최근의 다섯 번째 대멸종은 소행성 충돌로 인한 공룡 멸종 사건이었습니다)에 비견될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지금 화석 연료 사용, 서식지 파괴, 남획 등 인류 활동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이에요. 5부작 중 1 ~ 4부는 돌고래, 오랑우탄, 캥거루, 눈 표범 등 야생동물의 멸종을 다뤘는데, 마지막 편인 5부는 ‘멸종위기종 인류’에 대해 취재했어요. 침팬지, 오랑우탄처럼 인류, 호모사피엔스도 멸종위기종이 되는 날이 올까? 과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해요. 확실한 것은 지금의 기후 위기를 유발한 인류의 활동이 그대로 계속된다면, 코로나19 같은 신종 인수공통감염병 확산 또는 지구시스템 붕괴로 인해 인류의 미래가 어둡다는 점입니다. 티핑포인트는 가깝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얀슬랫과의인터뷰_샌프란시스코(좌) / 플라스틱 암석 촬영장에서_네덜란드헤이그(우)

Q___이번 <여섯 번째 대멸종> 제작 과정에서 특히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제작 상의 제약이었죠. 석탄 광산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된 곳에서 사는 오랑우탄을 인도네시아에서 촬영했는데, 계획된 촬영이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두 번 취소되기도 했어요. 회사에 이야기해 방송을 일 년 늦추면서 나름대로 대응하며 찍긴 했습니다. 어떤 아이템은 아무리 기다려도 촬영이 불가능해 국내에서 촬영할 수 있는 다른 동물로 대체되기도 했고요. 방송이 일 년 연기되니 예상치 못한 일도 발생했는데요. 안타깝게도 1부의 프리젠터로 나선 에드워드 윌슨 자문교수가 별세했습니다. 5부작이 방송되는 중 4부가 방송되던 날에 그 부고를 접했어요. 1부 내용이 ‘93세의 생물학자가 인류에게 쓰는 편지’였는데,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더 뭉클하더라고요. 그래서 5부 마지막에 ‘현대의 다윈’이라 불리던 위대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께 바치는 추모 글을 넣었습니다. 그분의 갈급한 메시지가 시청자들 가슴에도 닿기를 바랍니다.

Q___<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이번 세기 안에 절반의 종을 잃을 수 있다”라는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경고가 충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인간도 그 절반의 종에 들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가슴에 와닿았는데요. PD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가치 소비가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과 정부(정책)는 결국 시민, 소비자의 인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비슷한 가치를 가진 제품을 소비한다든가, 비슷한 가치를 가진 정치인을 지지한다든가, 많은 방식이 있을 텐데 그중 자신에게 맞는 걸 골라 일상의 행동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좇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___환경·생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시면서 법과 관련된 지점에서 특별히 느끼신 부분이 있을까요?

 비인간의 권리를 점차 인정하는 추세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 뿐인 지구>를 제작하며 동물권을 취재할 때 놀란 적이 있어요. ‘논휴먼라이츠’라는 단체를 만났는데, 미국의 실험용으로 쓰이던 침팬지의 법적 권리를 주장해 당시로서 유의미한 판결을 끌어내 화제가 됐었어요. 아르헨티나에서는 다른 유인원 종인 오랑우탄의 권리를 인정하기도 했죠. 다른 나라에서는 고등동물인 유인원뿐 아니라 호수, 산 등 자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인류도 지구의 한 생물종인데, 우리가 다른 종을 배제한 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죠.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비인간의 권리는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Q___현재 제작을 생각하고 계시거나 앞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프로그램의 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다큐멘터리든 TV 교양 프로그램이든 지속가능성을 말하고자 합니다. 사실 78억에 달하는 세계 인구가 마음껏 먹고 쓰고 버리는데, 지구가 탈이 안 난다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인류세가 열리고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된 거니까요. 우리가 변하거나 인구가 줄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그 점을 계속 파고들고 싶어요.

Q___최평순 PD의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환경 · 생태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장르 특성, 제작 여건 등 여러 이유로 시청자들에게 소구될 만한 재밌는 환경 · 생태 콘텐츠를 만들기는 어려워요. 그것들을 극복하며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PD가 되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신상진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