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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피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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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5일, ‘경기남부경찰청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이 한 가정집 앞에서 잠복근무 중이었습니다. 핵심 피의자, 유동규 씨의 휴대전화를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순간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나 그 집으로 먼저 들어갑니다. ‘중앙지방검찰청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장동 의혹 수사는 ‘전담 수사팀’이 두 개였습니다. 두 전담 수사팀이 휴대전화 한 대를 놓고 현장에서 마주친 겁니다. “서로 협력해서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검·경이 핫라인을 구축했다고 발표한 직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 같은 촌극은 수사 전부터 예견됐습니다. 대장동 의혹이 연일 눈덩이처럼 커져도 수사는 당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검찰·경찰·공수처 세 수사기관끼리 눈치싸움만 치열했습니다. 온갖 고발장이 접수돼도 세 곳 모두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때 경찰이 대장동 관련 FIU 정보를 진작 넘겨받고도 수사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옵니다. 경찰은 부랴부랴 수사 대신 내사를 시작합니다. 포토라인까지 세운 보여주기 내사였습니다. 공수처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며 줄곧 선 긋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흐르다 정영학 회계사가 녹취록을 검찰에 건네준 뒤에야 중앙지검이 수사팀을 꾸렸습니다. 언론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한 달만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내사만 하던 경찰이었습니다. 경찰은 뒤따라 수십명 규모로 전담수사팀을 꾸립니다. 검찰과 경찰이 각자 대규모 수사팀을 만들어 같은 수사를 따로 하기 시작합니다. 검찰이 화천대유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경찰이 뒤늦게 찾아와 임의제출을 요구하고, 유동규 씨가 검찰 압수수색 때 휴대전화를 창문 밖으로 던지자 경찰이 이를 확보하는 기이한 수사 경쟁이 벌어집니다. 검찰에 다녀온 사람들이 며칠 뒤 경찰에 불려가고, 경찰에 다녀온 사람들이 며칠 뒤 검찰에 불려갔습니다. 결국 수사를 받던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릅니다. 숨진 김문기 씨 유족은 “검찰과 경찰이 한 개인을 놓고 몇 번씩 조사를 했다. 그 중압감을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지난해는 수사권 조정 첫해였습니다. 검찰·경찰·공수처가 대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책임을 다하길 기대했습니다. 수사 범위도 구체적으로 나눴습니다. ‘누구’를 수사할지, ‘어떤 범죄’를 수사할지 입력하면 ‘어느 수사기관’이 수사를 맡을지 알려 주는 알고리즘을 만든 겁니다. 하지만 수사를 해 보기도 전에 누구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수사할지 단박에 알 수 있는 사건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 대장동사건과 같은 대형 수사는 여러 의혹들이 중첩돼 있고 수사 대상은 광범위합니다. 제일 먼저 인지한 경찰이 수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부는 검찰의 수사 범위 같고, 일부는 공수처의 수사 범위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사건을 셋으로 쪼개서 나눠서 수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었습니다. 책임 공백이 생겨도 교통정리를 해 줄 조정장치는 없었습니다. 관련법과 준칙에 중복수사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을 넣어뒀지만 현실에선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협력하여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조항과 대통령의 훈시만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습니다. 수사기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절제된 수사권을 행사하길 기대했지만, 오히려 수사 경쟁을 부추겨 중복수사와 과잉수사로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사기관끼리 눈치만 보는 ‘책임 공백기’를 당연하게 여겨야 할까요? 어느 한 곳이 수사를 맡으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중복수사’도 패턴처럼 굳어지진 않을까요?

 온 사회가 주목하는 대형사건은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편일지 모릅니다. 한 변호사님은 “사건이 뫼비우스 띠에 갇혀있다”고 표현하더군요. 검찰과 경찰이 돌리고 묵히며 처리하지 않는 사건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입니다. 검사는 무제한으로 보완수사를 요청할 수 있고, 경찰은 무기한으로 보완수사를 할 수 있지요. 검찰은 이제 손쉽게 미제사건 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보완수사 요청만 하면 됩니다. 미제사건에 대해 보완수사 요청을 하면 경찰로 사건이 넘어갑니다. 더 이상 검찰 사건으로 집계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경찰 1인당 사건 수는 전년 대비 20% 가까이 늘었고 사건 처리 기간은 평균 8.6일 늘었습니다. 사건에 파묻힌 경찰은 새로 접수된 사건도 처리하기 바쁩니다. 보완수사 요청이 온 사건은 보통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뫼비우스의 띠가 시작되는 겁니다. 경찰이 고소 · 고발을 반려하려고만 하고 취하를 종용하려 한다는 뒷말도 무성합니다. 일선 검사와 경찰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바뀐 제도를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면피’를 부추기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는 2018년 권력기관 개혁의 기본 방침 3가지를 발표했습니다. ▲철저한 적폐청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상호 견제로 권력남용 통제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2019년을 거치며 3번째 방침 ‘상호 견제와 권력남용 통제’만을 강조했습니다. 국가의 강제력은 통제받고 견제 받아야 마땅합니다. 권력기관 간 상호 견제도 필요합니다. 특히 검찰개혁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수사기관의 본질이 흔들려선 안 됩니다. 견제가 경쟁이 되고 절제가 면피가 돼서는 안 됩니다. 수사기관들이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서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국민을 위한 수사기관은 부패와 범죄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이서준 J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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